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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룡 Oct 30. 2022

이장님의 비밀상점

시골에서 땅 구매하기

삼시세끼의 로망

2014년의 어느 날. tvN에서 방영을 시작한 프로그램, <삼시세끼>.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하루 밥 세끼를 챙겨 먹는 일상이 전부인 이 프로그램은 인기가 매우 좋았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인기가 높아졌고, 나와 부모님은 시골생활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도 했다.


아침에 해 뜨면 일어나 아침밥을 지어먹고, 점심엔 뭘 해먹을지 고민하고, 요리 중에는 밭에서 작물을 바로 채취하고, 일해서 얻은 돈으로 시내에서 고기를 사 오고, 뜨거운 가마솥에서 요리하며 맛있게 세 끼니를 챙겨 먹는다. 오로지 세 끼니를 해 먹는 일로 하루가 다 지나간다. 


<삼시세끼>는 귀촌생활의 로망을 보여준다. 아주 아름다운 부분만 보여준다. 실제로 귀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도 화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평화로울까? 텃밭 가꾸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고, 벌어둔 돈이 없는데 무슨 돈으로 생활을 할 것이며, 벌레와의 전쟁은 자신이 없고, 화장실은 괜찮을지 걱정되고... 나는 그저 시청하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느꼈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달랐다. '이제는 시골에서 저런 생활을 해보며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해 사회생활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기 바쁜 젊은이였고, 부모님은 인생의 한 회차를 돌아 새로운 회차를 시작하는 연세였기 때문이다. 자식들을 모두 성인이 되어 독립했고, 갑갑한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삼시세끼 챙겨 드시는 하루. 그것과 대비된 자연 속에서 할 일이 많은 <삼시세끼>는 부모님의 마음에 작게 피어난 불씨를 크게 지펴주었다. 


시골집 투어

부모님께선 <삼시세끼>의 영향(?)으로 2017-2018년 동안 잘 알지도 못하는 시골마을을 찾아다니며 땅 구경을 다니셨다. 온라인에 게시된 부동산 매물을 확인해 일부러 찾아간 적도 있었고, 지방 내려갈 일이 있으면 부동산에 들려보기도 했었다. 호기심 많은 나도 부모님과 동행해 구경을 다녔다. 


서울과 다르게 지방에서 그것도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매물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온라인에 정보가 잘 없기도 했고, 어떤 정보를 주의 깊게 봐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시골에 집이 나온 경우는 대부분 홀로 사시는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오랫동안 비워진 집이 나오는 경우였다. 폐가로 남겨진 집을 보면서 수리하는데 돈이 더 들어갈 것 같아 차라리 농사짓던 땅을 구매해서 집을 짓는 게 낫겠다고 판단되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들 땅값이 얼마나 하는지 알고 있는지요?

집이 지어진, 아주 예쁘게 정비가 되어있는 토지는 '대지'라고 불린다. 이것의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다. 때문에 우리는 '전/답' 상태의 토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농사짓는 땅은 '전'으로 되어 있는데, 위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당 10~40만 원 정도의 가격이었다. 서울 집값을 생각하면 무척 저렴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시골에서 토지를 알아볼 때 평단가보다는 평수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값이 저렴하다는 이유는 그만큼 덩어리가 크다는 말씀! 위치나 가격이 나쁘지 않아서 구매하려고 알아보면 최소 1,000평 이상은 되어서 구매할 수가 없었다. 집을 크게 지을 생각이 아니라 1-200평만 되어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1,000평도 땡큐인 상황인 것이었다(후덜덜).


이장님의 비밀상점

처음엔 신나게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땅 보러 다녔는데, 덩어리가 워낙 크고 가격이 비싸거나 사람은 찾아볼 수 없는 외딴곳에 있다는 이유들로 물건을 찾지 못해 지쳐가던 어느 날. 춘천에 살고 계신 아버지의 사촌 어르신과 연락이 닿아 이장님을 소개받았다. 춘천 시내도 아닌 산촌마을의 이장님. 이장님은 마을 곳곳 모르는 소식이 없는 분이셨다. 


아무래도 마을에 들어올 사람인 듯 싶어서인지 이장님은 마을회관 근처에 자리한 아주 좋은 토지를 소개해주셨다.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시야를 가릴 것이 없었고, 땅 모양도 반듯하니 예뻤다. 뒤로는 산이 있고, 옹기종기 이웃집이 모여서 <삼시세끼> 로망을 실현할 수 있을 법한 곳이었다. 도시 사람들이 들어와 적응하기에 무척 좋아 보였다. 가까이에 마을 슈퍼도 있어서 필요한 물건을 바로 구매하기도 용이했다. 그런데 평당 가격이 조금 비쌌다. 토지 주인과 비용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아 거래가 무산되었는데, 이장님이 그 땅 주변에 돈사가 있어 냄새가 심하게 날 수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시며 다른 땅을 소개해주셨다. 응? 그럼 처음부터 이 땅을 소개해 주지 않으셨으면 되지 않았나? 의심스러운 마음을 살짝 품은 상태로 이장님의 다음 추천지를 방문했다. 


매주 춘천을 방문하며 이장님의 추천 매물을 둘러보고 마음에 들면 땅주인을 소개받았다. 금액 협의도 이장님을 통해 이뤄졌는데, 잘 되지 않으면 갑자기 그 땅의 단점을 이야기해주시면서 또 다른 땅을 알려주는 식이었다. 이장님과 교류가 많아지고 우리가 진짜 이 마을로 이주할 생각이 확고해지자 이장님은 평수도 가격도 적절한 토지를 소개해주셨다. 그리고 거래가 성사되었다. 나는 마치 이 상황이 게임 속 상점을 운영하는 NPC의 비밀상점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감도가 쌓여야 구매할 수 있는 상점과 같달까? 마을 사람들은 부동산에 매물을 잘 올리지 않았다. 귀찮아했고, 열심히 팔 생각이 없으셨다. 그래서 마을 소식을 알고 있는 이장님이 중매 역할을 해주시는 것이었다. 때문에 서울에서 아무리 인터넷 뒤져 부동산 통해 알아봐도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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