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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현 May 11. 2020

강화길 <음복(飮福)>,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스릴러 그 자체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발간되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이제 매해 사보는 책이 되었다. 2020년 대상작인 강화길의 ‘음복(飮福)’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묵직한 메시지와 읽는 쾌락을 동시에 선물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드러나길 바라는 정체, 비밀을 글 곳곳에 숨겨놓았다.




c. 지이현


1. 두 가지 부탁


숨이 막힌다. 턱까지 한숨이 차올라 뱉어내게 된다.


이러한 서사를 세상의 또 다른 ‘정우’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지, 받아들일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다가, 아 이거 올해 메이저 출판사의 젊은작가상 대상수상작이지 하는 깨달음에 세상이 변하고 있긴 하구나, 그 도중 어딘가에는 있겠구나 싶었다.



‘정우는 다 모르게 해줘.’ (33p.)
"네가 나를 이해해줘야지.
네가 아니면 누가 나를 이해해줘." (25p.)




남편인 정우는 무언가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모르기 위해서는 주변인의 조력, 어떤 침묵, 침묵을 덮기 위한 어떤 거짓말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그는 영원히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반면, 그의 무지를 위하여 ‘너’는 ‘나를 이해해줘야’ 한다.


‘너’는 쉽게 모진 말을 듣거나 지쳐 쓰러질 때까지 감정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기어코 내뱉는 사람 곁에서, 그 사람을 닮아가며 오래도록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것을 대물림한 사람의 손등마저 굳건히 잡고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어야 한다. 대물림했다는 기억조차 부재한 사람의 손등을.



2. 매듭


지난 2019년 대상작인 박상영의 작품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는 성 소수자의 정체성과 사랑을 다뤘다.


그리고 올해 2020년 대상작에서는 짧은 하룻밤동안 행해지는 ‘제사’를 통해 가부장제의 법도 아래 여전히 불평등한 ‘성’을 이야기한다.


이 시대가 들여다봐야 하는 곪은 부분, 여전히 풀리지 않은 매듭이 어디에 있는지 계속해서 알려주는 듯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라고, 이제는 그 선이 매끈해질 때도 되었다고, 함께 이 매듭을 풀자고 권하며 우리 앞에 ‘음복’의 음식을 내놓고 있다.



3. 결혼 후 첫 제사, 시가에 온 '손님'이 본 것


결혼 후 첫 제사를 위해 시댁에 온 ‘나’.


다른 날 같았으면 퇴근길에 사 온 저녁거리를 먹으며, 남편의 무릎을 베고 후궁들의 암투를 그린 76부작 중국드라마를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는 ‘고모가 건넨 말의 저의를 파악하느라 애쓰고 있었다’.


“오늘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
조카며느리가 이해 좀 해줘?” (10p.)

 

순간 살짝 날이 선 ‘나’는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 끝도 없이 불안해하며 한 세계를 탐색한다.


‘나’와 달리 그 세계의 적자(嫡子)인 ‘남편’은 속이 편해 보인다.


자신이 자라온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특별히 고민하지 않은 채, 꼭대기의 중심에서 계단을 위아래로 자유로이 오르내린다. 몇 계단을 내려가면 자신을 위해 적당한 웃음과 모욕이 두려워 고개 숙인 자의 이마를 볼 뿐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는 질서정연하고 평화롭고 안온하다고, 안심한다.


중국드라마의 사극처럼 그 계단에서는 암투와 계략이 조용히 판을 친다. 때로는 그 정체가 밝혀질 때쯤 ‘적자’는 당황하며, 이것은 장난 같은 ‘연극’이었다고 믿는다. 또는 정체가 드러난 대담한 ‘악역’을 골방에 가두라고 말한다.


4.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 음복(飮福).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제사에 쓴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


그리하여 모든 것을 알게 된 ‘나’는 마지막 ‘음복’을 한다.


또 다른 ‘나’를 위하여. ‘정우’는 모르는 세계에, 곧 ‘정우’의 세계에, ‘너’ 역시 안착하길 바라며. 그것이 너의 이름을 단 세계가 되길 바라며.


결국 자신 앞에 놓인 매듭을 조용히 풀어내면서. 남은 매듭은 음복으로 마시고, 먹으며 해치워버리는 것.


흔적이 남지 않게. ‘서서히, 고요하게, 모든 그늘이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이 되도록.



덧 : 나의 '음복'


명절이나 제사 때, 부산 시가에 가면 나는 총 6가지 과일을 준비해 가고 주로 탕수국을 요리하고 설거지를 담당한다. 끝도 없는 그릇들과 제기들, 음식 뒤처리들….


서울 사는 셋째 막내아들인 남편인지라, 그나마 일 년에 3번 정도 간다.


반면 첫째 아들의 아내, 즉 ‘형님’은 자신을 ‘칼 맞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저 남편이 좋아서 결혼한 것인데, 생전 보지도 못한 남편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의 제사상까지 준비해야 한다. 명절과 달리 조촐히 하는 편이라고 말해도, 한 집안의 모든 부역과 감정노동까지 감당하니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을까, 싶은 것이다. 장남인 남편은 정육점 가게사업으로 1년 360일 정도를 일한다. 고로 집안 대소사는 형님의 진두지휘로 이뤄지고, 시아버지의 결재와 고문으로 이뤄진다.


시어머니는 생전에 돕는 동서 없이, 그 모든 부역을 홀로 맡았었고 암으로 8년 전 돌아가셨다.


가끔 부산시가에서 부엌데기로 서 있는 내 뒷모습을 내 딸이 익숙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길까 봐 두려워지곤 한다.


가끔은 수치스럽다.


이렇게 가부장제 안에서 적당히 착한 며느리로 욕먹지 않게 악습을 이어나가는 내 꼴이. 새로운 캐릭터의 ‘악역’이 필요하지만, 그럴 자신도 지혜도 없으니…. 아마 다음번 제사 때도 똑같이, 나는 설거지를 하며 뒷모습으로 서 있을 것이다.


그래도 조용히 다짐해보긴 한다.

‘제사’는 ‘나의 세대’에서 ‘끝’이라고.

그리고 나의 아들과 딸은 그 ‘끝’의 의미를 알기 바란다.



문학동네 2020젊은작가상 강화길 <음복> 합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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