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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현 Jun 16. 2020

여름날,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무기력과 그림자

<우리는 선처럼 누워>  by 요조 & 이상순 앨범 재킷

1.


작열하는 햇살 아래,

뜨겁게 달궈지는 돌마냥

이번 여름은 유난히 몸이 무겁다.


어딘가로 떠날 수도 없이.


가만히 누워, 그저 먼 곳에서 찾아온 바람만을 느끼고 싶어진다.

햇살에 눈부시게 흔들리는 청록의 무성한 잎사귀들만 조용히 응시하고 싶어진다.


엄마에겐 여전히 철부지 딸이지만

세월도 무상하지, 나도 이제 곧 마흔이 되실 몸이다.


나의 신체가 ‘너도 이제 엊그제의 젊음이 아니다’라고

시도 때도 없이, 삐걱 삐거덕대며 타박을 한다.


-

2.


그렇게 파릇파릇함과는 다소 어긋나있는 신체를 이끌며,

요즘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지나온 삶과 앞으로 다가올 삶.

그중 더 많이 남은 시간은 어느 쪽일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


아마도 후자가 더 적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앞날은 모르는 거니까.

결국, 생은 주어지는 거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하면 잘 살았다고, 후회가 적으려나....


고민 많은 나는 더운 여름날, 이런 생각에 골몰하다 제풀에 꺾여 지쳐버리곤 한다.  소셜네트워크에 무얼 쓸까 고민하다가 아예 쓸 의욕이 사그라지는 것처럼.


그래서 차라리 이런 생각일랑 집어치우고, 그저 뭐라도 좀 하지?

그냥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닥치고) 그냥 하지 않으련? 하고 채근하고 있다.


그런데 MBTI의 INFJ 성향이 그런 것인지,

무얼 하더라도 그 의미가 스스로 납득되지 않으면, 머뭇거리게 된다.


아무 의미도 없는 헛수고를 하며 나의 청춘이, 젊음이 다소간은 가버렸다는 생각도 든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돈 잘 번다고 해서, 사회적 위신이 세워진다고 해서 등

그 모든 삶의 애씀이 ‘전도서’의 메인 테마처럼 결국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귀결될 것 같다.



-

3.


그런 여름날의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곳에 좀 더 자주 데려가 보라’는 누군가의 조언을 들었다. 정여울 작가의 강연에서.


그녀는 ‘그림자’라는 말을 했다. 자신의 ‘그림자’는 지울 수도 없고, 감출 수도 없는 것이라고. 감추려 하면 할수록 새어 나와 발각되고 마는 어떤 것.


그림자는 나의 치부이자, 두려움이다. 인간적 허점이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를 감싸고 부대끼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게 하는 빈틈.


우리의 결핍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어쩌면 가혹한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신이 우리에게 ‘겸손함’을 가르치기 위한 강력한 묘수일지도.


그래서 다소간 지친 몸을 누이고 쉬면서 너무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 사람들이 너무 가혹할 정도로 열심히 산다고 투정도 하면서. 나의 ‘그림자’와 이렇게 다정하게 대화해보기로 했다.


버림받기 두려워하는 철없이 여린 나의 그림자.

끝내 단단해지지 않아도 된다.

그저 곁에 있어라.

 

-

4.


6월이 되니, 남은 하반기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 대략적인 스케치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많이 헤매고 있을 것 같아서다. 타고난 길치인 나는 같은 자리를 무한궤도로 돌며 영원히 길을 잃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기에….



누군가 내 삶을 이끌어주었으면, 하고도 바라게 된다.

삶을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도 없이 ‘주어진 것’, 일종의 ‘운명’이라고 믿는 나는 언제나 그 주어진 의미를 찾아 헤멘다.


아마도 어렴풋이 느끼는 것은, 그것의 확실한 답을 완전히 획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좋은 삶’이면 좋겠다.

타인을 너무 아프지 않게 하는 삶이면 좋겠다.

조금이나마 덜 외로운 세상이 되도록, 보탬이 되는 삶이면 좋겠다.

가족들의 무탈함에 감사하면서,

그 무탈함이 동심원을 그리며 점점 더 멀리 퍼져나가기를


감히 늘,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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