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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2-링에 처음 올라가다

때리는 것만 집중하세요

< 나와의 스파링을 마치고 뒤이어 다른 관원을 상대해주는 관원, 20161012, 이인기>

복싱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링에 올라가 본다.

"링에 한 번 올라가서 스파링 해 보실래요?"라는 사범님의 말에 "네~"라고 대답한다. 


경험해보는 시간이니 함께 링에 올라서 가르쳐 줄 수 있는 경력 있는 관원이 상대를 해준다.

정확히 말하면 서로 대등하게 하는 스파링이 아니라 초보자는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경력자는 방어만 하는 방식이다. 그동안은 미트와 샌드백을 치는 것 정도였는데 링에 오르려니 몸에 긴장감과 피로감이 밀려온다.


실제로 스파링용 글러브는 샌드백용보다 훨씬 크고 무겁다. 얼굴에 쓰는 헤드기어는 그 무게도 있지만 앞에 시야를 좁게 만들어서 심리적으로 중압감이 크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입에 무는 마우스피스는 얼굴을 불편하게 하고 침도 고이다 보니 당황스럽다.     


링에 오른 첫날 2라운드를 뛴다.


공이 울리기 전에 스파링 해주는 상대방이 한 마디 한다. " 때리는 것만 집중하세요".  훗날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말이기도 하다. 맥없이 뻗는 주먹은 물론이고 링 아래에서 샌드백만 치던 체력으로 링에 오르니 무거워서 힘을 좀처럼 줄 수가 없다. 


제자리에 매달린 샌드백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도 어려운 때인데, 쉬지 않고 움직이는 상대의 머리를 느리고 무거운 주먹을 뻗어서 가격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미칠 지경이다. 


더군다나 무작정 방어만 하는 상대방이 "자~ 찬스입니다!" 하면서 자신을 마음 놓고 때리라고 몸을 내어 주면서 다가오는데, 이미 힘이 쭉 빠진 주먹은 물론이고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은데 자꾸 다가오는 상대의 모습을 보면서 받는 압박감이 더 힘들다. 샌드백처럼 편한 상황에만 익숙해진 체력으로는 이렇게 가벼운 수준의 스파링을 1라운드도 버틸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다른 시간이다. 


링에서의 첫 스파링을 마치고 나를 상대해준 관원은 정중하게 기본 규칙도 가르쳐 주고, 링에 처음 오르는 사람의 심리와 몸상태를 고려하면서 낯선 상황에 익숙해질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링에서 내려와서는 그대로 누워서 숨을 고르면서 내 상황 자체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마음 놓고 공격하라는 '기회'가 있어도 멍하니 지켜보거나 뒤로 물러나야 하는 내 상황이 정말 초라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이 행운을 만날 때 얻는다"라는 말을 지독한 끈기와 지루한 훈련이 필요한 건축가로서의 길을 가는 학생들에게 알려준 적이 있다. 오늘 첫 스파링을 경험하면서 무기력하게 링에 서서 팔을 올리지도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는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던 나한테 필요한 말이 아니었을까?


복싱이 좋아지고 건축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오늘 링에 처음 오르며 가져간다. 


2020년 2월 8일

(주)포럼디앤피 대표 건축가 이인기

facebook : leeinki1


건축가 이인기 | (주)포럼디앤피 공동설립자로서, 한국과 프랑스에서 수학하며 건축가의 언어를 실현하는 설계방법 및 건축환경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실행하고 있다. 특히 합리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시대적인 변화속에서 건축가가 어떠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실무프로젝트와 더불어 대학원 수업 및 외부강연을 통해 발주자-설계자-시공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건축을 바라보는 건강한 관점과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주)포럼디앤피 | 2008년 세 명의 건축가가 설립한 (주)포럼디앤피는, 아키테라피라는 건축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현대사회에 필요한 건축의 혜택을 탐구하고 실천했으며, 양질의 건축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역량을 갖추고 있다. 마스터플랜, 주거, 종교, 의료, 복지, 상업, 문화시설 분야에서 작업했고, 현재는 건축건설사업의 전과정인 기획-설계-건설-운영이라는 프로세스의 리더로서 건축가를 정의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접목한 디지털건축과 스마트시티라는 분야에서 특화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 연구 및 상업용도 활용시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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