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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상 Sep 28. 2023

웹툰 같은 공론장 : 공론장을 플랫폼화 하기

공론장 혁신을 위한 실천적 제언

본 발제문은 2023년 9월 21일 <솔라시 포럼>의 세션인  [공론장 복원의 조건 : 공공지식인과 디지털 시민광장]에서 진행한 발제문입니다. 공론장 복원에 대한 개인의 의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이오트의 주된 전략을 기술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내용을 함께 공유합니다.


안녕하세요. 솔라시포럼 첫째날 저녁 세션 [공론장 복원의 조건 : 공공지식인과 디지털 시민광장]에서 발제를 맡게 된 (주) 나이오트의 공동대표 하윤상입니다.


저는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를 양성하는 실습형 연구훈련플랫폼 <연구탐사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기존 대학원의 학과중심 시스템을 보완하면서 연구자들의 ‘진심’과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고 있구요. 현재 기후위기, 공공문제, 교육문제 영역의 연구자들을 양성하면서 문제해결형 연구자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발제는 저희 회사 홍보를 하기 위함은 아니구요. 저는 스타트업 대표인 동시에 사회문제해결에 있어 플랫폼 방식을 접목하는 ‘플랫폼 거버넌스’에 대해 연구해 온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운영하고 있는 스타트업 또한 사회문제해결을 플랫폼 방식으로 풀어내기 위한 저희의 실험이자 연구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저희 서비스와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지면을 통해 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세션에 오신 분들이 모두 동의하시듯이, 사회 한가운데에 공론장이 붕괴되고 그로 인해 사회문제들이 사회 속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재발 및 변이되고 있습니다. 그 원인과 현상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저는 오늘 그 중에서도 공론장을 ‘혁신’하는 한 가지 방안에 대해 제안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속칭 ‘플랫폼화(Platformization)’라고 불리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I. 서론 : 공론장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웹툰이라고?


플랫폼화(Platformization) : 기업의 성장을 넘어 산업을 혁신하는 현상


아시다시피 배달의민족, 넷플릭스, 유튜브부터 쿠팡, 야놀자 등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일상에 플랫폼 서비스는 굉장히 깊숙히 들어왔습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해당 기업들이 단순히 ‘유명해졌다’거나 ‘돈을 많이 벌었다’를 넘어서, 기존의 산업 자체를 바꾸어놓는 상황들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영화산업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를 비롯한 OTT 산업에 의해 재편되고 있는 이야기나 쿠팡이 이마트의 매출을 앞질렀다는 이야기들은 심심치 않게 듣고 있으실 거에요.


이러한 현상을 보통 플랫폼화(Platformization)라고 부르게 되는데요. 디지털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기존 산업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들이 생겨나게 되고, 그 방법들을 채택한 신생기업들이 기존 산업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산업을 혁신하는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마치 쿠팡이 당일배송을 만들어내고, 배달의민족이 배달이 불가능하던 음식점들의 배달을 가능하게 하고, 유튜브가 수많은 채널들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처럼요. 이렇게 산업 자체가 혁신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플랫폼(Platform)’이 생겨나게 되고 그 플랫폼을 기반으로 신생산업이 형성되는 특징이 나타나고 있어요.


저는 이러한 디지털 기술로 인한 산업의 변화가 처음에는 비즈니스 영역에서 일어났지만 곧이어 시민사회를 비롯한 공공영역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미 그러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속도와 방식이 갈수록 가속화될 것이라 생각해요. 이것은 마치 신대륙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골드러시(Gold Rush)라고 불리는 상인들의 진출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이후 메이플라워호를 비롯한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면서 사회 전체의 판이 바뀌었던 때와 흡사하다 생각합니다.


공공영역의 플랫폼화에 있어 그 내용을 대비하고 또 대안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할 때에 저는 ‘만화산업’에 있어 ‘웹툰 플랫폼’의 등장을 살펴보는 것이 그 양상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에 가장 유용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웹툰이 가지는 ‘스토리텔링’과 웹툰이 ‘콘텐츠’로서 보이는 양상들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공론장’의 형태와 가장 흡사하다고 보였거든요. 공론장의 복원에 대해 고민하는 이 때에, 어쩌면 사양산업에 가까웠던 만화시장이 전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면서 수많은 웹툰 작가들과 웹툰 작품들, 그리고 웹툰을 보는 것이 보편화된 문화를 만들어낸 과정들을 톺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 글은 이번 솔라시 포럼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발제문이기 때문에 정제되어 있는 글이라기보다는 어떤 주장들의 묶음에 가깝습니다. 시일 내에 근거와 자료들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들을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면과 시간의 제약상 논리가 정교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공론장의 복원에 필요한 일종의 인사이트로서 바라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II. 웹툰과 공론장


1. 웹툰 플랫폼 : 포털이 만화를 한다고?


2006년에서 2023년 : 만화책에서 웹툰으로


위 기사는 2006년 4월 14일에 쓰여진 기사인데요. 만화시장이 대원씨아이, 학산문화사, 서울문화사 등 3개사에 의해 63% 이상 점유되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해당 기사에서는 2005년 기준 출판만화 시장 규모가 아동, 학습만화시장을 제외하고도 1242억원, 만화대여시장은 3251억원이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하지만 반면 온라인 만화서비스시장은 142억원에 불과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면 15년여가 지난 지금 웹툰시장은 연매출 1.5조원에 육박하는 시장으로 변모했습니다. 특히나 기사에 따르면 2017년 3799억원이던 매출이 4년새에 4.1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 의미는 사실 웹툰시장이 지금 보여주는 1.5조원 규모가 이제 시작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반면 만화출판업의 경우 2021년 기준 5710억원으로 웹툰시장의 3분의 1 수준이 되었습니다. 만화대여시장은 290억으로 더욱 쪼그라들게 되었구요.


분명 15년 사이에 만화시장은 만화책에서 웹툰으로 옮겨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시기를 비슷하게 관통한 30대 분들의 경우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책방에서 만화책을 대여해서 교실에서 돌려보던 것이 익숙했던 기억이 있지만 현재는 모두가 핸드폰을 통해 웹툰을 보는 데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거에요.


다음 ‘만화속세상’의 시작 : 포털이 만화를 한다고?


이 모든 것의 시작에 2003년 포털사이트 다음의 ‘만화속세상’이 있습니다. 사실 그 전부터 ‘인터넷만화’라는 형태의 연재물들이 존재했고 또한 여러 포털사이트에서도 만화책을 서비스하고 있었지만, 다음의 만화속세상은 최초의 웹툰 연재시스템을 도입한 ‘웹툰 플랫폼’이었습니다. 다음이라는 포털 사이트가 직접 작가를 수급하면서 본격적으로 만화시장이 뛰어든 때이기도 했죠. 뒤이어 2004년 네이버 웹툰이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당시에 포털에서 만화를 본다는 것은 기존 만화시장의 만화책을 온라인화해서 판매하지 않는 이상 일종의 ‘부가서비스’에 가까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만화책시장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었고 사람들 또한 만화책을 보는 것에 익숙해 있었지 컴퓨터 화면을 통해 만화를 본다는 것은 굉장히 생소한 일이었거든요.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당시 PC의 보급률이 높아지고 포털 사이트의 이용률이 급증하면서 많은 부분들이 인터넷으로 인해 바뀌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고 그 맥락에서 웹툰 또한 같은 방식으로 시도되는 형태였다고 할 수 있어요.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른 기존 산업의 전환


사실 이 이야기는 비단 만화시장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것은 잘 아실 거에요. 영화산업은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산업에 의해 흔들리고 있구요. 더 이상 우리는 TV에 나오는 KBS, SBS, MBC만을 보지 않고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채널들을 시청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TV에서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볼 수 있는 방법 또한 역으로 나오는 상황이기도 하죠.


이 산업들의 전환은 모두 ‘기존의 상식’을 깨뜨리는 도전들이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만화를 책으로만 봐야 해?”라는 질문, “영화를 영화관에서만 봐야 해?”라는 질문, 더 나아가 “방송을 방송사에서만 만들어야 해?”라는 질문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기술의 전환에 따라 기존의 채널이 아닌, 새롭게 우리의 손에 쥐어진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접근하는 채널들이 주어졌고. 그 채널들을 일종의 ‘플랫폼’들이 만들어내기 시작했어요. 거기에서 기존의 산업보다 나은 콘텐츠들이 제공될 때에 자연스럽게 기존의 상식은 새로운 상식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죠.


공론장에서 우리의 질문 : 사회문제는 꼭 정부만 해결해야 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비즈니스 영역의 혁신이 사회의 혁신보다 반 보 빠르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에. 우리는 사실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요. “사회문제는 꼭 정부만 해결해야 해?”라고 말이죠.


만화책시장이 거대했을 당시에 인터넷만화시장이 없던 것이 아닌 것처럼, 지금도 사회문제의 해결을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여러 활동들이 존재해요. 사회적기업이 그러하고 협동조합이 그러하죠.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저 질문이 “꼭 그런건 아니지”를 넘어 “사회문제의 대부분은 정부가 해결하지 않아”라는 이야기로까지 넘어갈 정도의 변화 앞에 서 있는 맥락에서 던져지는 질문이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사실 많은 부분에 있어 시민사회에서는 “법제도의 변화” 혹은 “예산 및 정책의 확보”가 굉장히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 정말로 맞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치 포털사이트가 ‘기존 만화책시장이 아닌, 우리가 직접 만화가를 수급해서 우리 웹툰을 보는 별도의 플랫폼을 구축할거야’라는 마인드로 웹툰 플랫폼을 시작했던 것처럼, ‘기존 정부의 예산과 정책이 아닌, 우리가 직접 혁신가를 통해 우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별도의 플랫폼을 구축할거야’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거죠.


정부 예산에 비해 민간의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구요? 우리나라는 민간기부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요?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웹툰시장 또한 기존 만화책시장의 30분의 1에 불과했다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됩니다. 동시에 그 포털사이트조차 두세명이서 시작했던 아주 작은 소기업에 불과했다는 점 또한요.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모바일의 발달은 점과 같은 조직이 산업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전환을 만들어내고 있구요. 아직 공공과 시민사회영역에는 그 변화가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2. 만화책이 아닌, 웹툰 : 소비자를 향한 지난한 역사


 “초기 작가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 (…) 우리가 이 정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내면 그 때 1등 작가는 얼마를 벌고 있을거야. 나는 네이버 웹툰에서 연 1억 버는 작가 만드는 게 목표야. 그 다음에는 연 5억 버는 작가를 만드는게 목표야. 연 10억 버는 작가를 만들거야. 이걸 계속해서 이야기해왔어요.

이제 1등 작가는 1년에 124억을 벌어요.”  

- 네이버 웹툰 김준구 대표


몇달 하다가 때려치는 것 아니냐

2000년대 당시 만화시장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만화단행본의 발행종수도 2008년 기준 3755종으로 이 중 한국만화는 1,190종이었고 번역만화는 2,565종이었습니다.(한국 만화산업의 카투노믹스 전략) 만화단행본의 종류 자체가 적을 뿐더러 많은 부분 해외의 만화를 번역 제공하는 경향이 있었죠.


당시에 네이버 만화에서 일을 시작한 김준구 현 네이버웹툰 대표는 ‘몇 달 하다가 이 일 때려치는 것이 아니냐’, ‘네이버도 하다가 잘 안된 사업 접은거 많던데’하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 이야기는 너무도 당연할 수 있는 이야기였죠. 안 그래도 영세하고 해외의존율이 높은 만화시장을 심지어 한번도 해보지 않은 포털에서 제공하기로 한다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큰 일이었을테니깐요.


사실 우리가 듣고 있는 이야기이지 않을까요. ‘뉴미디어 산업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다’, ‘몇 달 하다가 디지털 공론장도 때려치는 것 아니냐’하는 이야기들을 듣는 것. 이제는 더 이상 신문과 뉴스를 보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마치 영세한 만화시장을 바라보던 당시의 시선과 닮아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만화는 여전히 재미있고, 그 재미만 제대로 전달할 채널을 확보한다면 반드시 성공한다


앞서 조금 이야기했지만 2003년 다음 만화속세상부터 2004년 네이버웹툰에 이르기까지 등장한 ‘웹툰 연재 플랫폼’들은 기존 만화시장을 디지털화 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화’라는 본질 자체를 디지털 상에 직접 구현하기로 마음 먹고 생겨난 플랫폼들이었습니다.


여기에 도전하게 된 이들이 갖게 되었던 확신은 결국 ‘콘텐츠에 대한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확신이었을 것입니다. 만화는 여전히 너무 재미있고, 그 재미를 제대로 소비자들에게 전달만 해줄 수 있다면 이것은 분명히 확장되고 확산될 수 있는 산업일텐데 다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을테니깐요. 디지털 기술의 발달을 통해 보다 나은 방식으로 만화를 대중들에게 제공해줄 수 있다면 만화시장이 가능성이 있는 콘텐츠시장이라 믿었고 그것을 위한 전혀 새로운 환경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2023년 1분기 기준으로 웹툰만 5,034작품이 국내에서 연재되고 있고 실제 1조 5천억원 규모의 웹툰시장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저희는 함께 보고 있습니다. (2023년 1분기 만화 웹툰 유통 통계 자료)


아직 답을 모를 뿐, 반드시 답은 존재한다고 믿는 것


제가 직접 웹툰 서비스 산업에 종사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만화시장에서 웹툰이 주도권을 가져가고 더 나아가 시장 자체의 급격한 성장을 만들어 냈는가에 대한 사업적 비결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는 ‘만화’라는 가장 본질적인 재미를 가진 요소를 기반으로 20년여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만화콘텐츠의 포맷을 시도해 온, 그리고 실제로 산업 자체를 변화시킨 사례를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재미에 초점을 맞추는 만화를 플랫폼화해서 소비자들의 수요를 맞추는 데에도 20년의 시간이 걸렸다면, 공론장의 복원과 혁신을 이야기하는 우리 또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20년을 관통하는 하나의 명제 ‘만화는 재미있다’라는 명제는 변함이 없이 사업의 방향성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보다 더 강한 ‘공론의 가치’라는 명제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지긋지긋한 일’을 ‘10년 이상’ 할 각오로 뛰어드는 것


동시에 중요한 것은 이 20년의 시간동안, 이들이 초점을 맞춘 것은 ‘만화의 디지털화에 대한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성명서를 내고 인터뷰를 하고 주장을 정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만화는 재미있다’라는 명제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만화작가들을 섭외하고 수천편의 만화를 연재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토대로 실험하면서 소비자들의 반응에 최적화된 포맷을 찾아내었고 해당 포맷과 콘텐츠가 만나게 되었을 때에 소비자들은 점차 만화책에서 웹툰으로 옮겨오게 되었다는 것이죠.


우리가 공론장을 복원하고 혁신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론장 복원의 ‘당위성’이 아니라,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공론의 가치’를 다시금 경험할 수 있도록, 보다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환경과 채널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웹툰시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공급자의 수급과 사이트의 구성, 콘텐츠 구성 포맷의 형태, 댓글 방식과 전달 방식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정말이지 ‘지난한’ 과정들이 필요하고 그 과정이 정말 10년 이상 소요되는 아주 ‘지긋지긋한’ 활동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활동만이 오롯이 시민들에게 ‘공론의 가치’를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주고, 그것만이 시민들이 다시 공론장으로 돌아와 공론장을 복원하고 혁신하여, 기존의 공론장 이상의 공론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주는 왕도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만 공론장을 혁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이렇게 해서라도 공론장을 복원하고 혁신할 수 있다면, 그 일은 10년이든 20년이든 충분히 삶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3. 기다무(기다리면 무료) : 가치는 존재한다. 그것을 동력으로 바꿔낼 방법


‘사업화’라는 웹툰업계의 난제


웹툰 업계에 있어서 사실 가장 큰 난관은 ‘사업화’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실제 웹툰 생태계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결국 웹툰을 그리는 작가들이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했지만, 여전히 인터넷 환경에서 웹툰은 무료로 소비하는 콘텐츠에 가까웠고 일부 웹툰에 달리는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는 정도에 불과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2014년 웹툰시장은 이전에 비해 많이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1718억원 규모로 2000년대 만화책시장의 절반 규모를 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3년 콘텐츠 오픈마켓 형식으로 콘텐츠를 유료화해서 판매하는 시장을 형성하겠다는 목적으로 ‘카카오 페이지’가 런칭하면서 본격적으로 만화를 비롯한 콘텐츠의 유료화에 대한 시도가 시작됩니다. 모바일 기기의 등장에 따라 보다 최적화된 형태로 소비자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그에 대한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존재했고, 이에 대한 시도를 해보기에 이르게 되죠.


하지만 800여개의 CP(Contents Provider)가 참여한 대규모 런칭에도 불구하고 일 100만원대의 결제액에 불과한 처참한 성적표를 가지고 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유료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고 그러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여는 것은 아무리 카카오라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죠.


변하지 않는 명제 : 만화는 재미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만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재미를 얻고 있다’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다만 내가 느끼는 재미와 내가 그 재미에 대해 금액을 지불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미스매치가 존재했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재미가 돈을 낼 정도는 아닌 것인가’와 ‘돈을 낼 정도의 재미이지만, 아직 느낀 가치가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방법을 확보하지 못한 것인가’ 사이에서 판단을 해야 했습니다. 카카오페이지는 후자라고 믿었기 때문에 유료 콘텐츠 플랫폼에 뛰어들었고 하지만 그 방법을 찾지 못해 그 자리에서 고전을 하고 있었던 셈이죠.


기다무 : 이용자의 시간을 사는 유료모델

그러던 중 2014년, 속칭 ‘기다무(기다리면 무료)’라는 유료 결제 모델이 도입되면서 카카오페이지의 매출이 반전되기 시작합니다. 기다무의 경우, 고객이 보유한 이용권이 소진된 상황에서 일정한 주기, 예를 들면 1주일이 지나면 1회차 이용권을 자동 충전해주는 모델입니다. 사실 시간만 기다린다면 얼마든지 돈을 내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이용권인 셈이죠. 하지만 여기에서 카카오페이지는 ‘이용권을 유료로 구매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합니다. 만화의 다음 화를 보다 빨리 보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사람들의 지갑을 열 방도를 찾아낸 것이었죠.


기다무 모델이 도입된 이후 구매전환율은 25%까지 올라가면서 작품을 클릭한 사람 100명 중 25명이 결제를 하게 되었고 일거래액은 도입 기준 한달 만에 2배 이상 급등하면서 카카오페이지의 수익모델이 비로소 안착하게 됩니다.

기다무 모델은 플랫폼 자체의 수익 뿐만 아니라 웹툰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기존 만화책시장(9:1) 대비 높은 수준의 수익배분율(7:3)과 함께 만화에 대한 지불의사가 높아지면서 그로 인해 높은 수익을 얻는 웹툰 작가들이 등장하게 되고 이는 새로운 웹툰 작가들의 유입을 불러일으키면서 웹툰 생태계의 질과 양 또한 개선하게 됩니다. 콘텐츠에 대해 가치를 지불하고 그 가치에 작가들이 반응하게 되면서 하나의 시장이 형성되었고 이를 통해 생태계의 역동적인 성장을 불러오게 된 것이죠.


시민들은 소비로 가치를 표현한다 : 시장주의의 악마화 걷어내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시민들이 직접 사회문제를 해결하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원’의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사실 정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시민운동의 경우, 시민들의 세금으로 형성되는 공적 자원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있어서 예산을 확보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시민들이 직접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자원’을 어디에서 확보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됩니다.


이 부분에 있어 현재 형성되어 있는 시민들의 ‘가치소비’에 대한 부분들을 짚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재화를 수동적으로 구매하던 과거와 달리, 선택지가 많아지고 무엇보다 개인의 취향과 선호, 가치와 개성이 생겨난 현재 시민들은 자신의 특성을 ‘소비’를 통해 표현하기 시작했죠.


신자유주의 담론과 자본주의의 폐해 등에 대한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그저 ‘시장화’의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 ‘공적자원을 형성하는 방식의 변화’ 혹은 ‘공론장에서 자원동원의 방식’에 대한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무조건적으로 가치와 비례하지 않는 방식으로 강제적으로 수취해가는 세금제도 자체가 가지는 모순과 한계 또한 분명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말 ‘자원’의 흐름에 ‘가치’가 담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공적 자원의 형성방식을 찾아야 할지 모릅니다.


웹툰의 사례에서 드러나는 ‘기다무’의 예시는, 그저 시장주의 하에서 수동적으로 구매하는 시민들의 모양이 아닌 자신의 ‘재미’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기 시작한 형태를 보여줍니다. 도리어 웹툰 플랫폼을 통해 시민 개개인들이 자신의 재미를 충족시킬 수 있는 채널을 확보했고, 그 채널 하에서 ‘다음 화를 기다리는 시간을 돈 주고 산다’라는 개념에 반응하면서 유료 콘텐츠 플랫폼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또 그에 따라 역동적인 웹툰 생태계가 조성되게 된 것이구요.


이미 일상의 많은 부분들에서 ‘소비’를 통해 ‘가치’를 표현하는 방식이 일반화된 현재,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시장주의를 손쉽게 악마화하고 이를 그저 외면하고 배척하는 방식을 고수하기보다, 시장주의의 논리를 보다 심도깊게 들여다보면서 어떠한 방식으로 시장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시장제도 안에 ‘가치’와 ‘윤리’를 담으면서 ‘공적 자원’을 형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과 고민, 씨름을 시작해야 합니다. 마치 웹툰 플랫폼이 ‘재미’를 ‘재화’로 환산할 방식을 찾은 것처럼 말이죠.


4. 도전만화가 : 새로운 크리에이터들


도전만화 : 도제식 만화작가양성에서 실험식 만화작가성장으로


웹툰 생태계의 등장은 만화의 소비자들에게 대한 혁신일 뿐만 아니라 만화의 공급자인 작가들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혁신이었습니다. 과거의 만화계에서는 만화출판사가 과점상태로 한정된 채널이 있는 상황에서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도 몇몇 유명 만화가들의 문하에 들어가 도제식으로 만화작업을 도우면서 성장하는 트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네이버웹툰이 2006년 도입한 ‘도전 만화’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만화작가들에게도 일대 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일단 웹툰 서비스를 통해 기존의 만화출판사 중심의 만화지면이 아닌 방식으로도 만화를 연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동시에 등장한 ‘도전 만화’ 시스템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만화가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도전 만화는 아마추어 창작자들이 자기 작품을 미리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정식 연재를 얻지 못하더라도 데뷔 전부터 도전 만화에 만화를 게시하면서 팬을 확보할 수 있고, 보다 수평적인 환경에서 실력으로 팬덤을 직접 확보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하게 된 것이었죠. 도전 만화는 웹툰 플랫폼 입장에서도 양질의 만화작가들을 다양하게 확보할 수 있는 채널로 작용했고, 만화가들 또한 기존의 도제식 방식이 아닌, 자신이 연재하고자 하는 만화만 있다면 언제든 업로드하고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는 채널로 작용했습니다.



플랫폼에서 공급자의 성장 : 레퍼런스 기반의 자가학습


이러한 방식은 비단 웹툰 뿐만 아니라 플랫폼 서비스의 주된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소비자와 공급자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이 만날 수 있게 되면서 공급자들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디지털 기반으로 누구든 만화를 그리거나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한 부분과도 맞물립니다. 도전만화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직접 올리면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팬덤을 형성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여기에는 만화 작가들의 생애주기형 성장 또한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기존의 방식이 유명 만화가의 문하에서 만화가의 일을 도우면서 도제식으로 만화기법들을 전수받는 ‘유명만화가의 노하우 전수’라는 형태로 만화작가의 성장이 이루어졌다면, 도전만화를 비롯한 연재 방식에서 주된 학습방식은 ‘직접 연재하고 독자의 반응과 피드백을 토대로 실험하고 성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실력이 없더라도 일단 만화를 그리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이에 맞추어서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겪게 된 것이죠. 그리고 여기에서 만화작가들에게는 자신에게 정답을 전수해 줄 ‘멘토(Mentor)’가 아니라 자신만의 환경에서 답을 찾아나가는 데에 도움을 줄 ‘레퍼런스(Reference)’가 필요하게 됩니다.



이러한 공급자의 새로운 학습방식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 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와도 맞물립니다. 소비자의 선호가 다양해지면서 특정 유명만화가들의 작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던 계층이 아닌, 자신의 선호에 맞는 만화를 찾아 읽는 소비자가 등장하게 되었죠. 이에 따라 마이너한 주제와 작법이라 하더라도 그에 맞는 소비자들을 찾을 수 있는 채널이 열린 셈입니다. 이는 곧 ‘만화를 잘 그리는 법’에 대한 정답이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그리고 싶은 만화 주제와 작법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과 연관된 ‘레퍼런스’를 찾고 이를 통해 학습하는 방식으로 만화가가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러한 레퍼런스를 찾고 학습할 환경이 조성된 부분 또한 플랫폼의 역할이 큽니다.


레퍼런스의 내러티브 : 나는 어떤 만화 작가가 되고 싶은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레퍼런스(Reference)는 자신의 주제와 관련된 동료를 일컫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있어서 동기부여와 영감을 제공해주고 내러티브(Narrative)를 제공해주는 작품 및 작가 간의 상호작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웹툰 생태계 내에서 성공한 일부 작품들을 보면서 만화작가들은 ‘나도 저런 작가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한 문화가 신진 작가들에게서 재생산되면서 웹툰 생태계 안에 하나의 문화와 내러티브가 안착하게 됩니다.


이러한 레퍼런스의 내러티브는 단순히 ‘저 사람 같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라는 논리보다는 큰 개념입니다. 해당 작가의 팬으로서 그 만화에서 받은 영감을 자신의 만화 안에 철학으로 가져가게 되고, 작가가 보여주는 태도나 작품의 탁월함 및 특성에 따라 이를 재생산하는 신진 작가들의 문화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어느 산업이든 그저 ‘도전만화’ 형태의 오픈 플랫폼과 마켓을 열어놓고 ‘와서 쓰고 읽고 배워라’라는 방식으로는 새로운 세대의 공급자들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결국 공급자들이 영감과 동기부여를 받고 기꺼이 ‘나도 이런 공급자가 되고 싶다’라는 동력을 만들게 될 때,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 새로운 ‘내러티브’가 생태계 내에 형성되게 될 때에 새로운 세대의 공급자들이 자연스럽게 유입되고 성장하는 생애주기가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정말, 다음세대가 없을까?


공론장에서 결국 나타나는 큰 문제 중 하나는 ‘다음 세대 플레이어’의 부재이기도 합니다. 다음 세대가 유입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저 ‘세대와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유입과 학습과정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서 패러다임에 상관없이 관통하는 ‘공론의 가치’와 이러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에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예비 플레이어들을 위한 플랫폼과 채널을 구축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가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5. 스토리IP(지적재산권) : 만화와 소설이 뒤흔든 방송산업과 영화산업


스토리IP : 웹툰을 넘어 방송과 영화까지 혁신하다


웹툰 생태계의 성장은 비단 웹툰 시장 자체만의 활성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처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미생>이나 <이태원 클라쓰>부터, 최근에 큰 화제를 낳았던 <재벌집 막내아들>과 최근에 디즈니플러스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무빙>에 이르기까지. 웹툰을 소재로 만든 드라마 및 영화는 방송산업과 영화산업에까지 웹툰의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MCU(Marvel Cinematic Universe)는 말할 것도 없지요.



웹툰이 가지는 이러한 파급력은 ‘OSMU(One Source Multi Use)’라는 전략과도 맞닿습니다. 웹툰과 드라마, 영화 및 게임 등이 관통하고 있는 공통의 요소는 ‘스토리텔링’이라는 요소입니다. 따라서 정말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는 콘텐츠라면 그 콘텐츠가 소설이나 만화로 뿐만 아니라 실제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제작되더라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되죠. 물론 각 단계에 있어 어떠한 기법들을 얼마나 적절하게 잘 활용하느냐가 큰 관건이 되겠지만, 그 중심에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속칭 스토리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재산권)이라 불리는 이러한 원천은 웹툰시장과 소설시장 뿐만 아니라 방송산업과 영화산업에서도 큰 효과를 가진다는 점이 검증되었고 비교적 적은 자원으로 스토리텔링을 선보이고 검증할 수 있는 웹툰 플랫폼에서 스토리의 매력을 검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응용 생산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토리IP의 원천 : 매력적인 스토리텔링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결국 ‘스토리IP’라고 하게 되는 본질이 중심에 위치하면서 콘텐츠의 형태가 발전하고 그것이 부가가치를 추가적으로 창출하는 방식으로 가치사슬이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다시 웹툰 플랫폼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누가 그렸냐’ 혹은 ‘작가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냐’와 같은 요소보다도 ‘웹툰이 얼마나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느냐’의 요소가 중요해지는 현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앞서 언급한 만화가들의 수평적인 기회제공과 확장으로까지 연결되었다는 부분을 알 수 있는 셈이죠.


지식IP : 문제를 해결하는 원천지식


‘스토리IP’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발전시켜가는 생애주기모델은 사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공론장에 있어서도 충분히 참고해볼만한 레퍼런스가 되어줍니다. 결국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은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고 그 아이디어가 얼마나 파급력이 있느냐는 것은 아이디어의 초기단계에서 효과성과 대중의 수용도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서 문제해결의 스케일을 키워가는 방식으로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인 것이겠죠.


저는 이러한 사회문제의 해결에 있어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를 ‘지식IP’라고 부릅니다. 결국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책을 도출해내는 지식에서 시작이 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러한 지식은 처음에는 한 두 줄의 문장과 여러 자료들을 덧붙인 하나의 논문과 보고서 등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추가적인 보강을 통해 법률안이 되기도, 정책제안서가 되기도, 심층기획기사가 되기도, 또 때로는 사업계획서가 되기도 할 수 있는 것이죠.


공론장의 새로운 역할 : 사회문제해결의 아이디어 실험장


여기에서 우리는 공론장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됩니다. 공론장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대안들의 ‘지식IP’를 발굴하고 검증하는 장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여기에서 검증이 완료된 지식IP를 여러 방식으로 대안화해서 시도해보고 그 경험들을 축적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대안의 시도와 경험들이 다시금 공론장에서 논의되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나은 대안들이 시도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공론장은 그저 의견을 주고받는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회문제해결” 혹은 “공적 가치를 드러내는” 핵심공간이 될 것입니다.


연구문화 : 사실에 입각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공론 문화 만들기


이를 위해서는 공론장의 문화가 “문제해결”에 초점이 맞춰지는 문화로 조성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 의견들이 오갈 수 있지만 해당 의견들이 정말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도록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웹툰 플랫폼에서 공유하는 문화가 ‘재밌는 만화’에 초점을 맞춰지게 되었듯이 말이죠. 이 부분에 있어서는 공론장을 풀어내는 플랫폼에서 많은 실험과 검증을 통해 제도를 설계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연구문화’가 공론장에 있어서 핵심적인 문화가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연구문화라 함은 ‘사실에 입각해서 검증하고 논의하는 문화’를 일컫습니다. 의견과 방향성에 상관없이 각 주장들은 어떠한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그 근거는 사실에 입각하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문화이지요. 이는 한편으로 각자가 가지는 가치적 방향성들에 대한 포용이 되기도 하고, 그 방향성들이 ‘사실’과 ‘현실성’이라는 토대 위에만 올려져 있다면 얼마든지 토론과 논의를 통해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어서 연구문화를 토대로 공론장을 형성하고 공론장에서 여러 문제들에 대한 대안 아이디어들을 발굴할 수 있다면, 해당 아이디어들을 활용해서 사회문제의 해결을 시도하고 해결에 성공한 케이스들에 있어서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정책정당, 정말 불가능한 꿈일까?


그렇게 공론장 안에 지식IP의 케이스들이 쌓이게 된다면, 각 지식IP의 케이스들을 토대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들에 대한 제언들이 쌓이게 될 것이고 이러한 제언들을 모아 일종의 ‘공약’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편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꿈꾸어 오던 ‘정책정당’ 또한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웹툰 플랫폼에서 발굴된 스토리IP로 드라마와 영화를 만들어 콘텐츠를 보급하는 전략에 맞추어, 공론장 플랫폼에서 발굴된 지식IP로 시민운동과 정책제안, 소셜벤처의 기획 등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 다변화되고 급변하는 사회에 있어서 플랫폼 방식의 사회문제 해결 프로세스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또한 그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역할은 당연히 ‘공론장’이 될 수 밖에 없겠죠.


c.f. 플랫폼 디스토피아 : 플랫폼의 공공성을 향하여


앞서 저는 웹툰 생태계를 일종의 ‘성공사례’로 이야기하면서 논의를 전개해갔지만 사실 웹툰 플랫폼과 생태계 또한 많은 모순과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웹툰 작가들이 다양해지면서 웹툰 작가들의 처우 문제 또한 계속해서 대두되고 있고 플랫폼의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플랫폼에 웹툰 생태계가 종속되는 현상 또한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웹툰 플랫폼 내에서 인기 웹툰이 되기 위해 보다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창작활동을 수행하기보다 이미 정해진 성공공식에 맞춰서 찍어내듯이 웹툰이 생산되는 문화 또한 드러나면서 웹툰 플랫폼의 개혁을 위한 고민 또한 깊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상하고자 하는 공론장은 그저 비즈니스 영역의 ‘플랫폼’을 본받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영역의 플랫폼을 넘어 ‘공적 가치’를 형성하고 그러한 문화들을 조성할 수 있는 일종의 ‘커뮤니티형 플랫폼’을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플랫폼 비즈니스가 아닌 커뮤니티형 플랫폼이 성공적으로 안착된 사례는 아직까지는 찾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답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 답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가 공론장 플랫폼을 구성하면서 찾아나서야 할 것은 ‘플랫폼 비즈니스를 넘어 공적 가치가 촉진되고 발전 계승되는 플랫폼’에 대한 구상일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다음 논의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III. 결론 : 전환시대의 논리, 유길준의 자리


“조선은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망하고 있는 것이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중


구한말, 세도정치를 비롯한 사회적 모순이 최고조에 달하고 서양문명의 등장으로 사회의 거대한 변화가 점쳐지던 시기에 유길준이라는 인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자 고종 휘하에서 박영효와 함께 한성순보의 발간을 준비하기도 했던 시대의 지식인이었습니다. 1883년 보빙사의 일원으로 일본과 미국의 유학을 갔다왔던 유길준은 갑신정변의 소식을 전해듣고 잠을 이루지 못해 이듬해에 귀국하여 서유견문의 집필을 준비합니다.


갑자기 웹툰 얘기를 하다가 왠 유길준? 이라 하실 수 있지만 제가 유길준이라는 인물을 소환하게 되는 것은 그가 마주했던 ‘전환시대’에 대한 당혹감과 고민의 정도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전환시대’에 느끼고 있는 당혹감과 가장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사회의 변화를 먼저 감지하고 또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분투한 인물이지만, 그 분투를 사회적 공감대와 실질적인 변화로 꽃피우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역사에 '만약에'라는 질문이 가능하다면, 구한말의 시대적 전환기에 사회의 방향타를 바꿀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을 가진 인물은 나라의 치열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분투했던 유길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공론장의 복원에 대해 고민하면서 모여 있는 이 세션에서 우리는 구한말에 준하는 변화 앞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노론과 소론 중에서 누가 세력을 잡을 것이냐에 대해 정치적 갈등을 하는 사이, 전환시대의 논리를 포착하지 못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만드는 데에 실패했던 과거를 답습하지 않은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도리어 이 전환시대의 흐름을 동력삼아 우리가 다시 한번 ‘공론장의 복원과 혁신’을 이루어내어서, 기존의 정치와 사회영역에서 꿈꾸고 기대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구자들은 더욱 새롭고 더욱 어려운 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정치적 기획을 공동으로 고안하기 위한 조직의 기틀을 만들고 이러한 정치적 기획의 성공을 담보할 조직적 조건을 갖추는 데 공헌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1789년 프랑스대혁명 당시의 제헌의회와 미국혁명 당시의 필라델피아의회는 여러분과 저와 같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들이 법학 지식을 갖추고 몽테스키외를 읽고 민주적 구조를 고안해내었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고안해내야 합니다. 물론 혹자는 “의회, 유럽노조연맹과 같이 이런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모든 종류의 기구가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기구가 어떤 대안적인 정치적 기획을 가지고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여기서 길게 논의하지는 않겠습니다. 결국 새로운 정치적 기획을 고안하고 실현하는데 있어서 가로놓인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이 장애물의 일부분은 이것을 제거해야 할 임무를 띤 사회운동 안에서, 특히 노조 안에서도 존재합니다."

- 피에르 부르디외, '지식인들이여, 분노하라!' 중(르몽드 디플로마티크 02년 2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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