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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상 Apr 18. 2024

우린 여전히, 배 안에 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부끄러운 세대가 되지 않기 위하여

아이들을 보낸 지 벌써 10년입니다. 당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며 고시공부를 전전하는 25세 대학생이었던 제게 4월 16일은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노라 울면서 다짐하게 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3년상을 치르듯 너희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찾겠노라 버둥댔고 2017년 4월, 의미는커녕 스스로의 삶 하나 건사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세월호 기억공간이 보이는 광화문 카페에 홀로 앉아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보낸 지 10년이 되었을 때에는 그래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무언가를 영정 앞에 내어놓고 싶었는데, 매서운 세월의 바람 앞에 속절없이 풍화되어 온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10년이 지난 지금, 그 간의 마음을 매듭짓고 새롭게 다짐을 기록하고자 이렇게 글을 적어봅니다.


#1. 2014년 4월 16일 : 우리 모두의 실패


 돈과 물질, 권력과 허세로부터 인간과 생명, 자유와 평등을 향한 새 기풍을 진작하지 않는다면 팽목의 통곡은 머지않아 대한민국을 덮칠 것이다. 팽목은 이미 한국의 압축판이고, 세월호는 대한민국호의 다른 이름이다.
 
- <통곡의 바다, 절망의 대한민국>, 박명림 교수 한겨레 기고문 중


사실 그럴 줄 몰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사회가 얼마나 위기상황인지, 얼마나 붕괴의 조짐들이 많이 보이는지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10대 시절 중고등학교를 보내며 교육구조가 얼마나 처참하고 그 구조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신음하는지를 보아왔고, 대학에 들어온 이후 여러 학문과 글,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삶의 경험들을 통해 무언가 잘못된 거 같고 무언가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은 사회의 단면들을 바라보던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감각하는대로 정말 사회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으레 어른들이 이야기하듯 아직 10대의 순수함을 벗어나지 못한 청년의 시절에 바라보는 순진한 시선이었는지 스스로조차 잘 알지 못한 채. 불편하고 답답했지만 외치기엔 자신이 없어 그저 그러려니 하고 나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에 집중하고, 또 그럴 수 있는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건의 당일에는 그저 당황했던 거 같아요. 뉴스를 뒤덮은 수많은 속보들과 서로 맞지 않는 이야기들. ‘설마…’ 라는 말줄임표로 끝나던 생각이 시간이 흘러 ‘정말?’ 이라는 놀람의 물음표로 바뀌던 시간들. 하루이틀이 지나며 우려했던 그 일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부정하다가, 이내 무너져내렸던 시간들. 긴급히 생겨난 여러 모임들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울던 시간들. 점차 드러나는 여러 정황과 실체들…


제가 무너져 내렸던 자리는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구나’라는 자리였어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실려 있었던 화물들, 짐을 조금이라도 더 싣기 위해 줄여버렸던 평형수,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내보내고는 제일 먼저 도망쳐버린 리더십들, 침몰 당시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던 위기상황체계, 서로 다른 정보가 뒤섞이며 엇갈리는 언론, 아이들을 구하고자 하지만 그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들.

어느 누가 책임자이고 죄인이라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모든 프로세스 중에 현실과의 타협이 있었고 좀 더 이득을 취하고자 저지른 꼼수가 있었고 별 일 없을 거라며 눈 감던 관행이 있었고 뭐 굳이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안일함이 있었어요. 그것들이 만분의 일의 확률, 십만분의 일의 확률로 연결되었을 때에 배가 침몰하고 사람들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들을 사회와 공동체가 구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으니깐요.


중요한 것은 그러한 타협과 꼼수와 관행과 안일함이 사실 일상의 도처에 널려 있다는 점이었어요. 운명의 주사위가 다른 숫자를 내보였다면 그것은 2014년 4월 16일의 진도 앞바다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죠. 사실 이미,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은 것’이었고 죽음의 주사위를 던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어낸 대가를 그 배에 타고 있는 이들이 치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저를 그리도 무너지게 했어요.


그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깨닫고 모르지 않았었는데. 가시화된 죽음을 목도하고 난 후에야 그것이 진실이었구나, 그리고 그 주사위를 막지 못하고 결국 굴리고 말았구나 라는 사실 앞에서 그들의 죽음에 저의 책임이 없지 않을 수 없다 생각했어요. 나와 우리의 안일함이 모이고 모여 이 주사위를 굴리게 만들어버린 것이니깐요.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10년. 10년 뒤에는 너희 앞에 부끄럽지 않을 나라와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던 결심이 말이죠. 그렇게 10년이 흘러, 오늘 다시 아이들 앞에서 되묻고 있네요. 정말 우리는 그런 나라와 사회를 만들었을까 하고 말이죠.


#2. 2024년 4월 16일 : 우린 여전히, 배 안에 있다


2021년 어느 봄날 저녁, 청와대 앞 광장에서 커다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스텔라데이지호 이등항해사 허재용 씨의 어머니 이영문 씨였다. 그날은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하여 선원들이 실종된 지 4년이 되는 날로, 정부에 2차 심해수색을 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회에서 이영문 씨가 증언할 차례였다.
73세 노모의 울음소리에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침묵했고, 지나가는 차들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세상이 정적 속에 정지한 것 같았다.

그때 정적을 깨며 누군가 이영문 씨를 향해 달려갔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을 위한 기도회에 참여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 창현 어머니였다. 그는 이영문 씨를 끌어안고 함께 울었다. 바다에서 아들을 잃은 두 엄마가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 <포기할 수 없는 약속>, 416생명안전공원 예배팀 엮음 중


사실 2014년 당시만 해도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너무 컸던 거 같아요. 구하지 못해 미안하고 살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울면서 이야기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이후 2016년에 마주했던 사건들. 강남역 살인사건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건을 지나면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실체가 점차 가시화되고 알지 못하던 여러 곳에서 사회적 모순이 죽음의 사건으로 공론화되는 것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어요. 우리는 아직, 배 안에 있구나 라는 사실을 말이죠. 죽음의 주사위는 여전히 굴려지고 있었고, 도처에서 신음과 울부짖음이 터져나오고 있었어요.


https://www.seoul.co.kr/news/society/2016/06/01/20160601500137


사건들이 터져나올 때마다 절망감이 스스로를 뒤덮었습니다. 사실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수 번 아니 수십 번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모든 기회들을 모두 비껴나면서까지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은 마치 겹겹이 설치 해둔 창문들을 뚫고 들어오는 추위와 같았어요. 추위를 막고자 설치한 유리창들이 번번히 깨져 있었고, 바람은 그 깨진 유리창들 사이로 뚫고 우리를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죠. 추위야 그저 견디면 그만일텐데, 확률의 유리창들을 뚫고 엄습한 사건은 가장 연약한 사람부터 공격해 들어왔어요.


그건 그저 사고가 아니었어요. 그것은 겹겹이 형성한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였고 멈춘 시스템을 틈타 죽음의 주사위가 굴려지고 있다는 증거였어요. 자연의 위협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고, 사고의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 없지만 그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사회의 시스템과 공동체의 규율이 붕괴될 때에 공동체의 가장 약한 사람부터 확률적으로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드러난거죠.


하지만 그보다 더 절망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깨진 유리창들로 이루어진 사회 시스템을 보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는 사실이었어요. 그 시스템이라는 것은 비단 정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관여하는 개개인의 직업윤리와 공동체윤리마저도 붕괴된 현실을 살고 있으니깐요. 동시에 그런 윤리를 지키지 않은 개인에게만 탓을 하기에는 직업윤리와 공동체윤리를 지키면서는 도무지 살 수 없도록 설계된 사회였어요. 경쟁에 내몰리고 원칙이 비웃음 당하고 순수함이 순진함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 이 문제들과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음이 점차 피부로 와닿아졌어요.


국가의 실책, 제도의 실패 등에 대해서 당연히 이야기하고 바꿔야 할 문제였지만.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 점차 깨달아지고 있었죠.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조금은 절망스러운 마음과 체념을 가지고 이번 10주년을 지나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3. 메타노이아metanoia : 마음의 전환


 ‘메타노이아metanoia’는 마음의 전환shift of mind, 즉 사고방식의 전환이다. 그리스인에게 ‘메타노이아’는 마음의 근본적인 전환 또는 변화,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마음의 초월meta을 의미했다.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 전통에서 ‘메타노이아’는 지고의 존재, 즉 신을 직접적으로 알고 깨우친다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그러므로 ‘메타노이아’는 세례 요한 같은 초기 기독교인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단어였으리라. 가톨릭 자료에서 ‘메타노이아’는 ‘회개’로 번역된다.

- <학습하는 조직>, 피터 센게 지음 중


참사가 계속해서 되풀이 되는 이 때에, 이 비극의 연쇄작용을 끊어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사회운동이 일어난다고 해서, 한 두 개의 정책이 세워지고 법률이 통과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의 종류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회의 특정 부분, 구조의 어떤 영역에 특이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도처에 깔려 있는 우리 스스로의,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겨누고 있는 무기들을 내려놓아야 할 거 같았어요. 박명림 교수님은 세월호 참사 당시에 기고하신 <통곡의 바다, 절망의 대한민국>에서 사회의 숨과 바람과 호흡의 방향, 정신과 영혼의 방향이 바뀌지 않으면 팽목의 통곡은 머지않아 대한민국을 덮칠 것이라 예견하셨던 것 처럼 말이죠.


그러던 중 제가 발견하게 되었던 것은 ‘메타노이아metanoia’라는 개념이었어요. <학습하는 조직>이라는 책에서 시스템 사고의 권위자인 피터 센게 교수는 특정 조직이 위대한 팀으로 거듭나면서 조직에 속한 구성원들이 하게 되는 강렬한 경험과, 그 경험이 구성원 각자의 인생과 방향성 자체를 바꾸어놓는 것을 목격했어요. 그리고는 그 경험을 설명하는 단어를 찾던 중 ‘메타노이아’라는, ‘마음의 전환’이라는 단어에서 찾았어요. 사실 이 단어는 종교를 가진 분들이라면 더욱 친숙한, ‘회개’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는 단어죠. 종교를 가지지 않던 이가 종교를 가지게 되는 것처럼, 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방향성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처럼 사람이 변화되었다는 것이었죠.


Unsplash


이 개념에 대해 알게 되면서 한국 사회가 참사의 연쇄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한국 사회의 ‘메타노이아’ 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각자가 타협과 꼼수와 관행과 안일함으로부터 원칙과 생명, 공동체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전환하는 것’. 그렇게 각자의 깨진 유리창들을 모두가 보수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것만이 더 이상 죽음의 주사위가 구르지 않고 그 죽음의 확률을 함께 힘을 모아 막아내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피터 센게 교수는 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메타노이아에 대해 증언하고 있었고 그것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킬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심하게 되었죠.


하지만 전 사회의 메타노이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비단 참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의 하루하루, 순간순간 속에서 원칙보다 편의를, 전체의 순리보다 나 자신 혹은 내가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기를 강요받죠. 그러려고 하지 않는 마음조차 무색하게 그로 인해 당장 우리가 치뤄야 할 대가와 손해가 막심하거든요.설령 누군가가 그러한 마음의 전환을 하기로 결심하더라도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한 1명의 변화는 그 사람의 생존과 그 사람이 속한 조직의 생존을 위협할 뿐이에요. 세상의 룰은 바뀌지 않았지만 홀로 그런 선택을 하고자 하는 이에게 사람들은 도리어 ‘이기적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순진하다’ 혹은 ‘이상적이다’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 밖에 없을 거에요. 심지어 모두가 바뀌지 않는다면, 정말로 그 행동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니깐요. 우리는 여러 사건과 이야기 속에서 그 상황들을 지켜보고 왔었죠.


그럼에도 전 사회의 ‘메타노이아’가 아니고서는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을 찾지 못했던 저로서는 그 방법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씨름했습니다. 조직을 넘어 생태계로 발전된 새로운 운동과 흐름에 대해 역사를 뒤적이기도 하고, 제도와 조직, 문화에 대해 씨름을 하면서 어떤 가능성의 단초들을 찾아나서고자 했어요.


하지만 긴 씨름의 끝에 제가 발견한 것은, 이미 ‘사회의 메타노이아’는 시작되었고 이 질문의 시작이야말로 그 증거였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었습니다.


#4.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 사건이 촉발하는 사회의 메타노이아


“조국애를 몰라서 조국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고,
조국을 귀중하게 여기지 못하여
우리 선조들은 조국을 팔았던가.

우리는 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련다.
나는 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이 가슴의 피눈물을 삼키며 투쟁하련다.”

- <돌베개>, 장준하 지음 중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광복 이후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고(故) 장준하 선생의 자서전인 <돌베개>에 나오는 말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선생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들 때에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요. 나라를 잃은 조상들과 다르게 우리 세대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그 마음이 척박한 여건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게 하는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말과 ‘더 이상 어른들을 닮지 않겠다’는 세월호 세대 아이들의 말이 겹치게 읽혔습니다. 그리고 이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는 방식을 통해 계속해서 사회의 메타노이아를 경험해 온 나라였다는 사실을 말이죠.


1910년에 일제의 식민지로 병합된 경술국치(庚戌國恥)를 겪으면서 사회 전체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그리고 이내 일어난 1919년의 3.1운동과 이후 벌어진 독립운동은 모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라를 다시 독립시키겠다는 열망이 사회 전체의 메타노이아를 일으킨 결과였습니다. 일부 친일파를 제외하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독립운동에 헌신했죠. 그리고 우리는 1945년 광복을 맞이합니다. 다시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룰 수 있었죠.

하지만 이내 1950년 우리는 6.25 전쟁을 경험합니다. 전쟁은 또 다시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리고 광복과 독립의 정신을 계승할 새도 없이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되고 맙니다. 기근과 가난 속에 태어난 세대는 전쟁의 충격 위에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산업화와 경제개발에 사회 전체가 몰두하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1995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하게 됩니다.

그 사이 1980년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다른 의미에서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군부독재 속에서의 억압 속에 살던 세대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게 되고 1987년 6월 항쟁을 넘어 직선제 개헌을 통해 우리는 민주화를 이루게 되죠.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항상 이전 세대의 실패가 누적되고 축적되다가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진 ‘사건’을 경험하면서 사회 전체의 메타노이아를 경험해왔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 전체라고 하지만 모든 구성원이 그러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회가 경험한 사건이 사회의 ‘메타노이아’를 일으키면서 사회 전체가 그 반작용의 활동에 몰두하게 되는 일들을 다름아닌 우리나라가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겪어왔더라구요. 그리고 그 메타노이아를 촉발시킨 사건은 앞선 세대의 모순이 누적되어서 촉발한 비극이었습니다. 경술국치가 그러했고, 6.25전쟁이 그러했으며,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그러했죠. 그렇기에, 이 모든 사회의 메타노이아는 기본적으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헌신한 세대들의 발로였습니다.


Unsplash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아이러니이자 일종의 비극인 이유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말 자체에 있습니다. ‘못난 조상’이라는 표현 자체에서 우리는 사회 전체에 있어 마음의 전환이 일어났지만 그 전환의 방향이 다음 세대로 계승되지 못하고 또 다른 비극을 낳고야 말았다는 아이러니를 보게 됩니다. 나라를 잃은 설움은 앞선 세대로 하여금 독립운동에 헌신하게 했지만 독립 이후의 혼란과 나라 형성을 제때 하지 못한 아픔이 남았고, 그 아픔을 딛고자 경제성장에 몰두하던 세대는 군부독재를 허용하고 민주화를 놓치면서 국가가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트라우마를 남기게 됩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하는 결심으로 일어난 세대는 기어이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민주국가를 만들었지만, 세월호 세대는 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말을 그들의 언어로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참사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리가 마주했던 2014년의 참사가 우리 세대의 ‘메타노이아’를 촉발시킨 사건임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메타노이아는 안타깝게도, 과거의 역사가 그래왔듯이 이전 세대의 모순이 누적되고 축적되다가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진 ‘사건’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 전체의 ‘마음의 전환’임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가진 ‘참사의 되풀이를 막기 위한 방법’에 대한 질문 자체조차 세월호 참사로부터 촉발된 제 마음 속의 ‘메타노이아’였던 것이 깨달아지게 된 것이었죠.


#5. 상처 입은 세대 :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못난 조상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타자의 비판이 한갓 타자의 부정에 머물러 적극적 자기 형성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야말로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의 본질인 것이다. 이 자기 형성을 통한 서로주체성의 실현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공동의 적을 통해 결속된 우리는 그 적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남남으로 흩어지게 되고 지배 권력은 그렇게 원자화된 시민을 끊임없이 상호 경쟁으로 내몲으로써 자신의 지배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게 된다.

(…)

다시 그런 봉기가 일어난다 한들, 그것이 단지 독재적인 통치 권력에 대한 부정과 반발에서 촉발된 것이라면,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는 매번 유사한 방식으로 봉기하고 적대적 권력을 타도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온전한 의미에서 나라를 형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 <영성 없는 진보 -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함>, 김상봉 교수 씀 중


참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 전체의 메타노이아’를 발견했고 우리나라의 현대사 속에서 메타노이아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만,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참사를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주요한 원인이 다름아닌 이전 세대의 메타노이아 그 자체라는 것에 있습니다.


경술국치의 참혹함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은 이 일을 촉발시킨 일제에 대한 저항과 항거였습니다. 동시에 경제성장을 향한 전국민의 노력도 전쟁의 트라우마를 딛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했구요. 민주화운동 또한 국가가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참혹함에 대한 충격이 가지는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사실 모든 세대의 모든 노력들, 그리고 모든 메타노이아가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들어내는 자양분이 되어주었지만, 그 에너지들 자체가 ‘이전 세대가 가진 모순의 누적으로 치른 대가에 대한 트라우마’의 성격이 강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어느 세대 하나 없이 모두 상처입은 세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상처로 촉발된 마음의 전환은 그 자체로 큰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만한 힘을 보여주지만, 그 힘의 방향이 필연적으로 이전 세대에 대한 부정 혹은 극복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균형 있는 자기형성과 성장을 만들어내기보다, 사회의 에너지가 과도하게 이전 세대의 모순에 대한 극복에 몰입되는 나머지 또 다른 측면에서의 모순을 눈감게 만들고 맙니다. 그것이 누적되고 축적되다보면 결국 다음 세대에게 트라우마를 안기는 또 다른 참사를 만들어내고 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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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교수님은 최근 내신 저서 <영성 없는 진보>에서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에 대해 ‘타자의 부정에서 적극적 자기형성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현대사가 이전 세대에 대한 부정의 연속이었지만 그 가운데에서 트라우마를 딛고 적극적 자기형성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그로 인해 우리는 또 다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새롭게 사회 전체에 일어난 마음의 전환을 목도하지만, 그 깊은 곳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한계인 트라우마의 측면 또한 마주하게 됩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세대로 하여금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분노어린 다짐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10년간 경험한 이러한 마음의 전환이 이전 세대에 대한 부정을 넘어 적극적 자기형성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어쩌면 우리 또한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우리의 모순이 축적되어 벌어지는 참사를 넘겨주는 ‘못난 조상’이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6. 비판에서 형성으로 : 비극의 연쇄고리를 끊어낸다는 것


“오로지 대학만 바라보고 공부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세월호를 보면서 어른들과 사회체계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어떤 어른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 그 무엇도 신뢰할 수 없게 됐다. 한편으론 서로가 서로를 지켜줘야 한다는 마음, 믿음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 “"그런 어른은 되지 않겠다"...세월호 10년, 97년생이 온다” (오마이뉴스 2024.04.16.) 중 97년생의 증언


나라 잃은 아픔의 반작용으로 일어난 시대정신이 ‘독립운동’이라면, 전쟁으로 일어난 시대정신이 ‘경제성장’이었고, 국가의 폭력 앞에 일어난 시대정신은 ‘민주화’였음을 봅니다. 그런 우리 앞에 세월호가 웅변하고 있는 우리의 시대정신은 어쩌면 ‘주체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막연한 신뢰를 바탕으로 앞선 세대, 앞선 리더십, 앞선 이들이 해오던 대로, 하라는 대로 따르던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의 결과를 우리는 보고야 말았으니깐요.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따라야 하는 시스템과 권위와 어른들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고,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리에 설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을 봅니다.


실제로 이 새로운 세대는 분명하게 주체성의 경험들을 축적해가고 있습니다. 맨바닥에서부터 전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그러하고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 서로의 필요를 위해 완전히 새롭게 생겨난 청년 단체들이 그러하고, 완전 새로운 판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가는 아티스트들이 그러합니다. 동시에 이전의 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반응하는 직장인들이 그러하고 학생들이 그러합니다. 디지털 전환이 만든 새로운 공간 위에 같은 ‘메타노이아’를 경험한 이 세대는 이전 세대에 의존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기에, 우리가 앞선 세대들이 해왔던 비극의 연쇄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회’를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우리의 트라우마를 스스로 직면하고 치유해야 합니다.

참사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세대는 더 이상 ‘다음 세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지금의 시스템과 지금의 사회에 각자의 책임을 다하고 변화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고 제3자인 누구에게, 어른인 누구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세대가 아닙니다. 우리 세대에서 정치인이 나오고 있고 우리가 직접 가정을 꾸리고 공동체를 구성하고, 우리 스스로가 사회를 형성하고 선택하며 동시에 직접 책임지는 자리에 서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믿지 말자“라는 데에서 더 나아가 ”각자의 깨진 유리창을 책임지고 서로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라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앞선 세대에 대한 트라우마로 우리 사회가 쌓아온 모든 유산과 축적된 경험을 모두 불신하게 된다면, 그 또한 또 다른 모순을 만들어내는 선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기획한 세월호 세대에 대한 조사에서 나온 저 증언에 저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있다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세월호가 상처가 아닐 수 없고, 우리 안에 불신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불신을 넘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믿음의 연대를 회복해야 하고, 그것이 우리 안에서 일상으로 녹아들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야 합니다. 거창한 정치나 시민운동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에서의 도움, 배려, 때로는 약자에 대한 도움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리창의 보수이자 치유의 과정일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에 다른 선택을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비판이자 대답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http://m.kyeongin.com/view.php?key=20180416010006498


그리고 우리는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세대의 트라우마를 스스로 치유하면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선택과 경험을 통해 성장해 나가겠지만,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하는 선택들의 대가 중 일부를 우리의 다음 세대가 치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또한 앞선 세대의 부채를 껴안으면서 이러한 사건 앞에 설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앞선 세대의 대가를 치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또한 다음 세대가 어찌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사회를 이용한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우리는 또 다른 참사를 낳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트라우마에 우리 스스로가 지배되어 우리의 동생들과 자녀들을 해치는 것에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비극의 연쇄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회의 주도적인 세대가 되었을 때에 우리의 다음 세대에 대한 고려가 있는 판단이 있어야 하고, 다음 세대를 우리보다 더 나은 세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의 판단과 선택들, 그리고 책임들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 우리는 비로소 비극의 연쇄고리가 아닌, 세대를 거듭함에 따라 사회가 진보하는 선순환의 연쇄고리를 만드는 첫 단추를 꿸 수 있을 것입니다.


# 닫으며 : 위대한 세대가 되기를 소망하며


미국에는 ‘가장 위대한 세대(Greatest Generation)’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세대가 있다. 1901~1927년 태생이다. 이 세대는 청년기에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이겨냈고, 1950년대에는 미국 역사상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 개념을 널리 알린 〈나 홀로 볼링〉을 썼다. 이 책은 미국 사회의 질이 왜 갈수록 나빠지는지, 사회적 자본이 왜 갈수록 쪼그라드는지 추적했다. 답은 의외였다. 사회적 자본을 유난히 풍부하게 가졌던 윗세대가 퇴장했기 때문이다. 그게 전쟁을 겪은 세대, 그러니까 위대한 세대였다(퍼트넘은 1910~1940년생까지로 좀 더 넓게 잡는다). 이 세대는 후속 세대보다 공적 토론에 더 관심이 많고, 더 많이 투표하고, 시민적 결사와 공공업무에 더 많이 참여하고,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돕고, 동료 시민들을 더 신뢰한다. 한마디로 더 나은 시민이다.

위대한 세대는 가장 가혹한 전쟁의 자식들이었다. 외부의 적은 내부의 응집력을 극적으로 높이므로, 때로 전쟁은 더 나은 시민을 만드는 용광로다. 퍼트넘은 방대한 데이터를 검토한 후, 결론으로 이렇게 쓴다. “1945년(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다)에 절정에 달했던 국가 통합의 시대정신과 전시(戰時)에 불붙은 애국심이 시민정신을 강화했을 것이다.” 그 힘은 이 세대가 살아 있는 내내 사라지지 않을 만큼 오래갔다. 이들이 주도한 시대에 미국은 최전성기를 달렸다.   

-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갈림길에 선 한국 편> 천관율 기자 씀 중


천관율 기자님이 코로나 시기에 썼던 기사에서 나온 ‘위대한 세대(Greatest Generation)’은 그 또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사로부터 메타노이아를 경험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로버트 퍼트넘에 따르면 이 메타노이아를 통해 위대한 세대는 공적 토론에 더 관심이 많고 공적 업무에 헌신하고 동료와 연대하는 ‘더 나은 시민’이 되었다고 기술합니다. 물론 이 세대가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앞선 세대의 트라우마까지 완전히 극복했는지는 저희도 알 수 없고, 현재의 미국을 볼 때에도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대한 세대’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또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를 하게 만듭니다.


사실 이 글에서 비극의 연쇄고리를 끊을 수 있는 중요한 일로 ‘앞선 세대에 대한 용서’를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우리가 트라우마조차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세대가 겪은 상처에 대한 용서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느 날이 되었을 때에, 우리는 우리 또한 다음 세대에 대한 가해자가 되어 앞선 세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완전히 우리 안의 상처를 모두 회복한 후에, 상처로 인해 어찌할 수 없었던 지난 세대의 과오를 끌어안고 보듬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우리 세대가 우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앞선 세대를 용서하고 다음 세대에게 좋은 어른이 되는 세대가 될 수 있다면, 우리 세대로부터 우리 나라의 온전한 치유와 성장이 일어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우리 또한, 미국조차 온전히 이루지 못한 ‘위대한 세대’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가장 많이 성공했거나 가장 화려한 세대여서가 아니라, 정말 우리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만드는, 후대 세대에게 롤 모델이 되고 기준이 되는 그런 세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떠나 보낸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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