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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밍 Apr 16. 2020

4.15 총선, 그 결과를 곱씹어보며

글 처음부터 미리 밝히면 나는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이다. 물론 아주 약간의 기부금을 낼 뿐이지만, 정치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늘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멀리 안가도 전세계적인 판데믹에서도 의료 붕괴 없이 소소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정치의 산물. 위기일수록 리더와 정부의 대처능력이 어떻게 민낯을 드러내는지 이웃 섬나라만 봐도 아주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민주당 연합이 180석 가까운 의석을 확보하면서 승리의 분위기가 가득하지만, 솔직히 결과를 들여다보고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우선 내가 사는 지역구는 접전 끝에 야당에 의석을 내줬다. 불과 한달 전 강남 공천에 떨어져 부랴부랴 분당으로 주소지만 옮기고 지역 현안이라곤 모르는, 지난 정권의 비호 아래 낙하산이나 타던 의원이 당선됐다. 물론 현 의원이 사실 지역구에서는 특출난 성과가 없다는 것은 아쉬웠지만 야당 후보도 얼굴마담급이라 설마했는데.



투표소별로 살펴보니 사전투표는 여당 승이었으나 서현과 이매 대형 평수 단지들의 선택이 결과를 뒤집었다. 지역 맘카페 정치글은 꽤나 접전이 붙곤 했는데 체감상 그 비율이 선거결과에도 정확히 나타났다. 이 와중에 분당 을은 아슬아슬 역전승을 했다니 예상외의 결과. 아무튼 덕분에 분당은 서울 강남, 서초, 송파, 용산과 더불어 수도권에서 몇 안되는 야당 지역구가 됐다.



강남 인근 지역의 결과는 대구경북이 그렇듯 예상 그대로였지만 그래서 더 실망스럽다. 강남 갑 주민들은 불과 얼마전까지 북한의 고위층 인사였던 자기네 지역구 후보가 토론회에서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한번도 보지 못한게 분명하다. 송파의 대단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모 전직 아나운서는 지역 내에서 서로 다른 공약을 내걸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당선이 되지 못한 기존 야당 유력인사들도, 40%를 넘나드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30%는 콘크리트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 정도 접전은 아닐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미래통합당을 포함한 야당 인사들에 실망하는 이유는, 그들에겐 정치와 삶의 철학과 소신이 보이지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일관성있게 특정 정책과 방향을 밀고나가면 존중하고 귀기울일텐데,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만 사상 키워드를 들이밀고 사돈의 팔촌까지 뒤지곤 하는데도, 정작 정치와 삶을 어떻게 꾸리겠다는 고민은 없다. 소수자를 위한 고민은 온데간데 없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남는다. 하긴 그러니 후보자 개인의 삶과 철학 그리고 정당의 이념 따위 관심도 없고, 오로지 부동산이 삶의 전부라 통장은 두둑해도 마음이 팍팍한 지역 주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는 건지도 모르겠다.


같은 지역구 주민인 부모님과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세금을 둘러싼 팩트를 보여주어도 그냥 오랫동안 믿어온 종교마냥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며 회의감도 들었다. 그러고보니 유튜브는 보고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을 극대화하기에 최적화된 미디어였지. 사람들은 이제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자신들의 세계에 빠져 살다가 상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때에야 비로소 무엇이 달라졌는지 몰라 우왕좌왕한다. 물론 현재의 여당 진영도 비슷한 오류에 빠질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조심해야겠지만.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열린민주당의 실패에 가까운 결과이다. 적어도 8% 정도의 득표는 기대했는데 훨씬 밑도는 결과가 아쉽기도 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개편이 아무 의미 없었다는 반증 같아서 씁쓸하다. 더불어민주당도 엄밀히 따지면 진정한 의미의 진보정당이라고 보기는 힘든 정책을 추구하는데 진짜 다양한 목소리를 힘있게 낼 수 있는 정당들의 약진은 언제쯤 가능하려나.


아무튼 선거결과 자체만 보면 현 정권에는 분명 고무적인 결과지만 40%의 야당 지지층이 앞으로 다가올 대선, 지선에서 어떻게 움직일지가 더 중요해보인다. 12년 전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앞으로 남은 시간이 정말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당장의 의석수보다 진짜 더 중요한 것들이 무엇일지, 여러 모로 고민하고 실천하는 21대 국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이들의 말과 행동에 관심 갖고 지켜봤으면 좋겠다. 정치 따위, 관심 가져봤자 뭐가 달라지냐며 투표를 안하는 것도 권리라던 남편이, 자신의 한 표로 삶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는 과정을 지켜보며 든 생각이기도 하다. 언젠가 아들들이 커서 한 표를 행사하게 될 날이 오면, 그때 오늘의 역사를 담담히 이야기해주어야지.


햇살이 따사로운 4월의 봄, 그리고 오늘은 세월호 참사 6주기이다.

6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오늘의 결과가, 훗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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