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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밍 Jun 02. 2020

"엄마 동생 찾아줄게!"

오늘도 둘째를 낳을지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어렸을 적 내가 제일 이해할 수 없던 어른들의 질문은 "혼자라서 외롭지 않니? 동생 필요하지 않니?"였다.

나는 외동으로 자랐는데, 주위 친구들이나 사촌들 모두 최소한 두 명 정도는 형제가 있던 시절이라 (같은 반 친구들 중에서 외동은 서너명에 불과했다) 더더욱 외동은 눈에 띄었다. 형제 없이 자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외동이 혼자라서 외로울 거라 생각했는지 꼭 이렇게 묻곤 했고, 엄마는 그 때마다 곤란해했다. 내가 솔직하게 "전혀요, 하나도 안심심한데요. 동생 필요없어요."하고 대답할 때마다 어른들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래도 동생 있으면 좋을텐데..."하고 누가 들으라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실제로 어릴적 나는 심심하지 않았다. 방에는 미미와 쥬쥬 인형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몸매를 뽐내고 있었고, 글자를 깨우칠 무렵부터는 책을 끼고 살았다. 책은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었고 더군다나 독서는 누군가와 함께 할만한 사교적 활동도 아니었다. 그 무렵 나는 혼자 노는 데 도가 텄고 가끔 친구들이 필요할 때는 놀이터에 가면 그만이었다. 오죽했으면 열 살 무렵, 엄마가 무슨 결심을 했는지 산부인과에 다니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 제발 동생은 필요 없으니 그냥 병원에 가지 말라고 발목을 붙잡을 정도였으니까.


형제자매가 없던 나는 친구들의 동생, 혹은 언니나 오빠를 보며 신기한 기분이었다. 여동생이 옷을 몰래 입고 나가서 죽도록 머리 끄댕이 잡고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깟 옷 한번 같이 입으면 뭐가 어때? 하고 말했다가 친구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어쩌다 사촌들이 모일 때 친척 어른이 사준 커다란 아이스크림 통에 모여들어 다들 누가 먼저 먹을까봐 숟가락을 들이미는 모습을 보고, 배부르면 냉장고에 넣어두고 이따가 먹으면 되지 않냐는 내 말에 모두 '나중 따위 없어!'하고 소리쳤다. 형제가 있는 아이들에게 먹을거리는 지금 내가 당장 먹지 않으면 누군가 빼앗아간다는 경쟁의 대상이었음을, 외동인 내가 알리가 없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남편에게는 다섯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같이 놀았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동생을 돌보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나이 터울도 터울이지만 이성인 까닭에 함께 놀 기회는 커갈수록 사라졌고, 지금도 일상을 공유하기보다는 그냥 부모가 같은 가족이면서 자신보다 조금 더 엄마와 살가운 여동생 정도의 위치인 것 같다. 여동생도 오빠에게 큰 관심이 없고, 오빠도 여동생의 삶에 별로 관심이 없는 그런 관계.


그래서 아이를 낳고서도 동생을 꼭 낳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외동이라도 딱히 외롭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고, 외동이라고 모두 이기적이고 오냐오냐 크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배웠기 때문이다. 외동이지만 자립심이 강한 친구들도 있었고, 사이 안좋은 형제자매보다는 그냥 경쟁이고 뭐고 신경쓸 것 없는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부모 부양의 의무에서도 다행히 자유로운 편이었고 그래서 관혼상제를 혼자 치르면 어쩌냐는 걱정을 한 적도 없다.


그런데, 아이가 20개월을 갓 지났을 무렵 덜컥, 예정에 없이 동생이 생겼다.

가족계획이 당장 없다며 조금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사실 아주 없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음의 준비를 한 것도 아니었던 터라 당황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차라리 고민을 할걸 그랬나 했지만 이미 선명한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은 날이 갈수록 빠르게 생명체로 자랐고, 우리는 이제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었다.


둘이라니....

4인 가족이라니.

내가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그 숫자의 무게가 압도적이었다.

당장 자그마한 집도 걱정이었고, 셋이라면 그럭저럭 감당이 되던 준중형 차도 걱정스러웠다.

이 작은 생명체를 20개월동안 키우는 과정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다시 한번 더 시작이라니. 게다가 둘이면 열배는 더 힘들다는데. 전업주부도 아니고, 일도 하는 맞벌이 부부인데다 딱히 부모님께 손벌리기도 힘든 극한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견딜 수 있을까? 하지만 고민하고 말고 할 상황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닥치는대로 해야지, 뭐.


그렇게 힘겨웠던 임신 기간이 끝나 또 다른 아이가 우리에게 왔다.

형아 노릇 제대로 하고 있는 중!

둘째가 오기 전에 정말 많은 책을 찾아봤다. 나 스스로가 동생을 맞이한 경험이 없었기에 큰 아이가 겪을 심리적인 압박이나 고통이 어떨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흔히들 동생이 태어나면 "남편이 갑자기 새로운 아내를 데려오더니 둘이 사이좋게 살라고 하는 수준의 심적 충격"이라고까지 하길래 적잖이 걱정스러웠다. 퇴행행동을 해도 이해해주고, 무엇보다 형을 우선해야 한다는 조언을 귀담아 들었다.


임신 기간 내내 아이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엄마의 커다란 배에는 아기가 들어있고 이 아기는 곧 세상에 나와 너의 동생이 될 거라고 했다. 산부인과에 가서 첫째 때는 하지도 않던 정밀초음파를 일부러 신청해서, 아이에게 눈코입이 있는 동생의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때 첫째의 표정이란!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24개월 아이였음에도, 엄마 뱃속에 꼬물거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 신비로웠나보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인지, 아니면 그냥 성격이 그래서인지 첫째는 다행스럽게도 퇴행행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둘째를 질투하거나 미워하는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책에서는 둘째 우유도 주지 말라고 아이들이 울고 불고 한다면서 그 때마다 기다려줘야한다고 해서 마음 단단히 먹었건만, 정말 다행히 우리 집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가 한 명 더 늘어나는 일은 그저 일이 두 배가 되지는 않았다. 한 열 배쯤 되었나?

통잠 따위 거리가 먼 우리집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는지 둘째도 새벽 내내 울어대는 통에 가족 모두가 잠을 설쳤고, 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육아는 아직도 낯설고 두려웠다. 신생아의 몸은 너무 작고, 너무 열심히 먹고, 그만큼 똥오줌도 계속 싸는데 첫째는 그 나름대로 거친 성장의 파도를 타느라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기 일쑤였다. 부모 둘이 달라붙어 아이들을 케어한다고 하는데도 쉽지 않았던 백일.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시간들. 둘 중 하나라도 잠시 부모님께 맡기고 나면, 아이 하나만 키우는 일이 이렇게나 쉬웠나 하고 쓴웃음 지을 정도였으니.


그렇지만 우리가 그렇게 4인 가족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겪는 만큼, 아이들은 서로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동생은 형을 보고 웃고, 형은 동생을 웃기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의 규칙을 찾아낸다. 동생이 배고파하면 얼른 우유를 달라고 하고, 서툰 손으로 우유병에 분유를 털어넣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진다.


이제 4인 가족이 된 지 8개월째.

어느덧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진 사이가 됐다. 형은 어린이집에서 다녀오자마자 동생을 찾고 뽀뽀를 퍼부으며 인사를 한다. 내가 보기엔 꽤나 아플 법 한데, 동생은 형의 구르기 스킬에도 울지 않고 씩씩하게 버텨내며 때로는 웃기까지 한다. 형의 정체 모를 개그 동작에 이빨 하나 나지 않은 동생은 깔깔대며 웃고, 둘이 비슷한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자기들끼리 뭐라고 중얼중얼할 때는 이게 아이들의 세계인가, 내가 모르는 형제의 세계인가 싶다.


한참 그렇게 뒹굴거리는 아이들을 보다가 문득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너네는 좋겠다. 동생이 있어서, 형이 있어서. 엄마는 동생이 없거든."

그랬더니 큰 아이가 그 말을 알아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럼 내가 밖에 나가서 엄마 동생 찾아줄게."


이 말을 듣고 한참 웃다가 엄마 동생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더니 "엄마 동생은 나무 위에 있어."라고 했다.


나무 위에 내 동생이 있을까. 내가 만나지 못한, 부모의 유전자를 똑같이 물려받았지만 그 배합이 달라서 서로 생김새도 성격도 참 다른, 그래도 어딘가 닮은 그런 동생이 있을까. 동생이 있다면, 혹은 언니나 오빠가 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아마 나는 그 형제자매와 사이좋게 잘 지냈을지는 모르겠다.


둘째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힘든 건 사실이고, 아이가 하나 더 늘어나면 두 배가 아닌 열 배쯤 몸과 마음이 지치는 것도 사실이라고.

첫째 때는 그래도 어떻게든 부부끼리 시간도 보내면서 연을 유지했는데 하나 더 생기면 정말 부부보다는 육아라는 퀘스트를 함께 하는 공동체이자 팀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과업이 막중한 것도 부정할 수 없다고.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아이가 심심해 할까봐 동생을 '만들어준다는' 생각은 사실 좋은 것 같지 않다고도 했다.

하지만 두 아이가 어울려 노는 모습을 부모가 보고 싶다면, 그리고 형제자매라는 인간관계를 통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삶의 결이 한층 더 풍성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면, 그런 환경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 때는 주저하지 말고 새로운 가족을 맞을 준비를 해보라고.


어른이 되어서까지 형제 자매의 사이가 좋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부모 부양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아이들을 낳는다거나, 옛날처럼 노동력이 필요해서 아이들을 '생산'하는 시대는 더더욱 아니니까. 오히려 아이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주거부터 시작해서 식비, 교육비 등등 들어가는 경제적 부담도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적 부담은 하나가 둘이 된다고 두배만큼 늘어나지는 않는다. 다들 자기 몫의 밥그릇은 챙겨들고 태어난다는 말처럼, 어떻게든 굴러가겠지. 중요한 것은 시작부터 끝까지, 부모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 핑계가 아니라 부모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니까 아직도 고민이라면, 그냥 깊게 생각하지 말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리고 아이 혼자 잘 키우기로 생각했다면, 주위에 휩쓸리지 말고 소신을 지킬 것. 아이들은 혼자든 형제가 있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잘 커 나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른들이 시선에서 재단하지 않아도 된다. 이건 내가 외동으로 커 봐서 더더욱 몸소 체험한 바이기도 하다.


오늘도 우리 집 아이들은 무럭무럭, 형 또는 동생으로서의 하루를 보낸다.

조금 더 크면 죽어라고 싸우겠지만....지금을 즐기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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