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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밍 Aug 15. 2020

세 살에게 배운 화해의 기술

우리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운다

오늘 아침, 정말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사소한 일로 남편과 투닥거렸다.


한번도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는 부부들도 많겠지만 요즘 우리는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연애 때, 신혼 때도 안 싸운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자주, 그리고 언성을 높이며 싸울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때 싸울 일은 주로 서로에게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주위 사람들로 인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가족이라던가, 가족이라던가, 가족이라던가.....) 아이가 태어난 이후 둘다 예민해졌는지 정말 사소한 일로 힘겨루기를 하고 자존심을 앞세워 방어전을 펼친다. 아이가 하나일 때는 그래도 많이 참고 보듬으며 그렇게 커갔던 것 같은데, 둘이 된 데다 둘다 일까지 하고, 조부모의 도움 따위 바라지 못할 환경이다보니 예민이 극에 달했다.


돌이켜보면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 이후부터 오히려 싸움이 심해진 것 같다.

우리 남편은 6월부터 3개월간 생애 첫 육아휴직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여러 모로 꿈에 부풀어 있었다. 직장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기술을 배우겠다느니, 요리 기술을 연마하겠다느니, 이래저래 할 일은 많았지만 3개월이 지나가는 시점에서는 그 모든 건 꿈일 뿐이었고 매일 버티는 것만으로도 꽤나 힘든 시간이었다. 거기다 밖에 나가지 못해서 우울증까지 왔는지 유달리 힘들다는 말을 많이 했고, 나 역시 복직하고 승진까지 한 상황에서 정신이 없어서 남편을 세심하게 케어할 여유는 없었다. 우리는 여느 때보다 많이 싸웠고, 크게 언성을 높였고, 이러다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주 싸웠다. 


오늘 싸움도 사실 별 거 아닌 소재였지만 한번 목소리가 커지자 걷잡을수 없이 파장이 일었다. 

나는 싸울 때 목소리를 크게 높이는 타입은 아니지만, 남편이 일방적으로 소리를 지르자 덩달아 짜증이 나서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싸우고 화가 나서 혼자 방에 틀어박혀 반복적인 일을 하는데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기계적인 손가락 노동이라는 것도 참 답답하지만...) 아이가 슬며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이제 막 36개월을 꽉 채우고 만 3세, 한국식 계산법으로는 네 살이 된 첫째.

아이는 뾰루퉁한 내 얼굴을 살피더니 "엄마, 아빠랑 싸웠어?" 하고 묻는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상태라 홧김에 "응, 엄마 이제 아빠 안좋아. 아빠도 엄마 안좋대. 엄마 밉대" 하고 내뱉었다.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배운 것 같은데 왜 아이에게 응석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이 남편은 쓰레기를 버리러 (이 와중에 그도 갈만한 곳이 분리수거장 뿐이라는 사실이 참 눈물겹지만) 나갔다가 바깥 공기를 마시고 돌아온 모양이다. 아빠가 돌아오자마자 아이가 묻는다.

"아빠, 엄마 좋아해?"

남편은 머뭇거리다 "응, 좋아"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다시 쪼르르, 방에 있던 내게 큰 소리로 얘기한다.

"거봐, 아빠는 엄마 좋아해. 엄마도 아빠 좋아하잖아"


그러더니 내 손을 이끌고는 소파에 나처럼 뾰루퉁한 얼굴로 앉아있는 남편 옆에 앉히더니,

"아빠, 엄마한테 큰소리 하면 안되지. 엄마, 아빠한테 큰 소리 내면 안되지.

싸우지 말고, 자, 화해해야지. 악수해. 악수하고 안아줘. 미안하다고 해. 미안하다고 사과해."


.........이 사과법은 아마도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보여줬을 그것이 아닌가.

아이들이 투닥거리고 싸우고 갈등이 일어날 때 중재하는 선생님의 역할 바로 그것이 아닌가.


졸지에 우리는 36개월 아들 앞에서 큰소리내고 싸운 나쁜 친구들, 아니 나쁜 어른들이 되어 서로 어색하게 악수하고 어색하게 안아주고 토닥거리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참 이상하게도, 악수와 허그에는 어떤 힘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갈등 원인은 이렇게 사소한 악수 하나에 풀리는 별거 아닌 거였는지 대체 왜 그렇게 싸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허무하게 사과를 했다. 


네살배기도 할 줄 아는 사과인데, 서른이 훌쩍 넘은 어른인 우리는 왜 그렇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할까. 어떻게 사과를 하는지 까먹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끙끙거리고, 큰소리를 높이고, 그렇게 사는 걸까.


부부가 평생 살면서 싸우지 않을 수는 없다면, 아이들 앞에서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건강한 가족과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부모님은 죽어라고 싸우는 모습은 많이 보여줬는데 어떻게 화해를 했는지 내 앞에서 보여주신 기억은 없는 것 같다. 나는, 피치못하게 싸우더라도 그래도 어떻게 화해하고 갈등을 봉합하고 다시 관계를 키워나가는지 보여주는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물론 아직은 36개월보다 못한 서른 셋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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