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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밍 Dec 03. 2020

재택근무의 풍경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재택근무, 우리 집 풍경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게 너무나 익숙해진 일상이 됐지만, 내게는 여전히 '코로나' 하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올해 초 설 연휴, 갓 백일도 안된 아이가 고열이 나면서 집 근처 종합병원에 며칠 있다 퇴원했는데, 병원 수납을 기다리며 아무 생각 없이 본 스마트폰 화면에는 중국 우한이라는 도시에서 괴상한 바이러스가 퍼져 도시가 봉쇄되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뜨고 있었다. 감기에 걸린 것과 비슷한 증상인데 전파도 빠르고,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이 정체모를 역병은 거대한 도시를 폐쇄해버리기에 이르렀다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세상은 설 연휴로 평화로웠고 사람들은 추위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힘찬 새해를 준비하고 있었다. 1월이었으니까.


병원 문을 나서면서 문득 이러다 한국까지 이 바이러스가 넘어오는 건 순식간일 거라는 생각에 쇼핑몰에서 일회용 마스크를 주문했다. 그리고 로켓배송의 나라답게 어른용과 아이용 마스크는 그 다음 날 우리집에 무사히 배송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전국에는 마스크를 사러 온 나라 사람들이 줄을 서는 풍경이 벌어졌다. 이러니 어찌 그 순간이 생생하지 않을까.


하지만 계절은 바뀌어 봄이 되고 벚꽃이 피었고,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 어김없이 가을이 오고, 그 낙엽들이 다 떨어져 추위가 찾아오는 동안 바이러스는 사라지기는 커녕 숨었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그동안 마스크는 당연해졌고, 이제 네 살 된 아들도 스스로 외출할 때마다 마스크를 챙기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항상 쓰고 다닌다. 회사는 재택근무 일수를 줄였다 늘이기를 반복했고 겨울이 되자 다시 전일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이제는 제법 재택근무에도 익숙해졌다. 

아침이 되면 출근 대신 PC로 원격 접속을 하고, 메일과 메신저로 업무를 한다. 회의가 필요하면 이어폰을 꽂고 화상미팅을 하고, 가끔은 메신저로 잡담도 하고, 점심이 되면 미적미적 일어나서 밥을 챙기고 커피도 혼자 만들어 마시고 그렇게 일을 한다. 장소가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변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으레 재택근무라는 환경에 또 나름대로 익숙해져서 하나둘 씩 집안에 회사에서 쓰던 장비를 갖춰놓고 일을 하곤 했다.


처음에 남편은 집에 있으면 늘어진다며 자꾸 침대에 가서 눕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고 했고,

나는 눈앞에 있는 냉장고와 과자 박스에 시선이 가서 하루 종일 간식을 입에 달고 사느라 체중이 늘었다. 


그러다 점차 이 생활이 길어지면서 어차피 몸이 있는 곳이 다를 뿐 모니터 앞의 세상은 똑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점점 일하다 짬나는 시간에 청소기 한번 돌리고 (그 전에는 담배타임, 커피타임이었을 시간에!!!) 다시 일하다 빨래 한번 개고, 출근과 퇴근을 명확하게 하려고 일부러 더 칼퇴하는 생활이 길어졌다. 


이러다보니 점점 몸이 여기 익숙해지는 부작용이 일어나는 듯 한데, 출퇴근시간이 들지 않는 건 장점이지만 결국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늦어지고, 뭔가 그 시간만큼 더 효율적이고 알찬 삶을 살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넷플릭스와 SNS 사용 시간만 급격하게 증가하고, 아이들까지 돌보며 일을 할 수는 없으니 긴급보육은 계속 보내고, 집안일과 회사일의 경계가 조금씩 무너질 뻔 한 위기를 겪다가, 이 생활에 익숙해지면 언젠가 다시 예전처럼 주 5일 내내 출근하는 일상이 굉장히 피곤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그때가 되면 다시 또 적응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직종이 세상엔 훨씬 더 많고,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대면 서비스야말로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집에서 일을 한다는 사람들은 결국 사무직이거나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하는 일이어야 하는데, 일이라는 건 혼자 하기보다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전부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보니 재택근무가 코로나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의문이기도 하다. 


당장 나도 회사 일은 원격근무를 하면서 집에서 나가지 않고 있지만, 아이들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어린이집 선생님과 함께 먹고 자고 놀고, 클릭 한번으로 생필품부터 모든 것들이 한나절이면 배달되는 시대지만 누군가 오프라인에서 그 물건들을 배송해주지 않으면 이런 편리함도 누릴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이라는 현장에서 땀흘리는 의료진이 있고, 의료진 이외에도 온갖 공공 시스템의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발로 뛰는 사람들이 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사회가 굴러가는데, 정작 내가 하는 일은 몸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대신 정말 꼭 필요한 필수기능이 아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재택근무 일상이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것 또한 2020년엔 그랬지, 하면서 지나갈 수 있는 옛 기억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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