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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 Mar 29. 2016

5화. 거제도에는 같이 걷고 싶은 [오랜항구]가 있다.

[Dear, my hometown 나의 오래된 동네, 장승포항]

새로운 것은 좋다. 새로운 것은 흠집 없이 깨끗하다. 새로운 것은 행여나 닳을까,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게 되는 귀한 것이다. 빈티지(vintage)가 아무리 멋있다 한들 새로 산 것이 더 나을 때가 많다. 이제 막 출시된지 얼마 안 된 새 핸드폰을 샀다고 가정해보면 앞의 문장이 모두 이해가 된다.


거제도를 생각했을 때 내가 그랬다. 어렸을 때 나는 방학을 맞이하면 한 번씩 견문을 넓히고 돌아오겠다는 거창한 뜻을 안고 친척들이 있는 서울에 갔다. 한창 서울에서 패밀리 레스토랑이 유행했을 때 나는 유치하게도 거제도에 이런 곳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거제도는 내 바람 이상으로 급속한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물론 브랜드 아파트, 대형마트, 다양한 패스트푸드 점을 비롯한 프랜차이즈 매장 등 새로운 것들이 속속 들어섰다. 


처음에는 새로운 것들이 생기는 거제도가 마냥 좋았다. 브랜드 아파트의 빛나는 조명은 조용한 거제도를 반짝반짝 밝혀주는 것 같았고,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있는 거제도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마치 새로 산 핸드폰을 갖고 있는 기분이었다.  


빈티지(vintage)가 아무리 멋있다 한들 새로산 것이 더 나을 때가 많다.


우리 동네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피해가진 않았다. 우리 동네는 바다의 항구가 있는 동네다. 바다와 맞닿은 도로 바로 아래에는 낮이 되면 물이 빠져 바위들이 길게 늘어졌고 밤이 되면 물이 들어와 깊은 바다로 변했다. 


어렸을 때 물이 빠진 바닷가 바위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밤이 되어 물이 꽉 찬 바다 앞은 사람들의 낚시터이자 사람들의 담소 또는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로 변했다.  



2년 전부터 우리 동네에는 신매립지공사가 한창이다. 바다의 일부를 매립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라고 하던 공사는 올해 여름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바다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조금 멀어졌고, 어렸을 때 놀았던 바위는 더 이상 썰물이 되어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밤바다를 보면서 이 길을 걷던 사람들도 매립지 인근에 생긴 프랜차이즈 카페로 이동한 듯 보였다. 이 곳에 매일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변화의 모습이지만 한번씩 고향을 찾는 나에게는 더이상 새로운 변화가 반갑지만은 않았다. 오래된 나의 고향, 나의 동네 모습이 그리워 졌다.  




어렸을 때 쓴 일기장을 뒤적이다 바위에서 놀던 추억을 찾았다. 

.... 오늘의 장소는 바닷가. 바닷물이 빠지는 오후이기 때문에 놀기에 적당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돌 위로 뛰어내릴 때는 다리가 후들후들 거린다. 점프 시도로 뛰어내리기는 했지만 무엇을 하고 놀까 하다가 나와 친구의 눈 길을 끌게 한 것은 돌을 기어 다니는 고동. 손 등에 고동이 타고 오를 때의 기분은 끝내준다.  (1999.10.2)


나는 친구와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바위 위에서 고동과 엄지손톱만 한 게를 잡으며 놀았었다. 지금도 손 등에 올려놓은 까만 고동들이 꼬물꼬물 기어가는 기분은 끝내줄 것 같다. 매번 집에 가져가 고동을 삶아 먹을 거라고 했지만 정작 집에 갈 때가 되면 까먹은 채 바위에 고동을 놓고 왔다. 요즘 이 동네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놀이일 것이다.   



오래된 것에 대한 고백


오래된 것이 좋다. 오래된 것은 진부하지만 기억에 남는다. 오래된 것은 닳고 닳았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편안한 것이다. 새로 만들어진 것은 화려하고 세련됐지만 사실 오래된 것이 더 나을 때가 많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고향의 모습을 생각하면 앞의 문장이 모두 이해가 될 것이다. 


오랜만에 동네의 밤 길 풍경을 즐기고 싶어 나갔다가 매립지 공사로 인해 한참은 멀어진 바다와 근처 카페 안에서만 보이는 사람들로 영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변화의 흐름은 어쩌면 이 곳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가끔 한 번씩 고향을 찾는 이보다는 이 곳에서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새로운 변화가 더 우선일 것이다. 새로 매립된 문화공간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올해 7월이면 볼 수 있다고 하니 얼마 남지 않았다. 


나의 오래된 고향, 내가 살던 오래된 동네에 불어온 새로운 바람에 익숙해지는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


거제도에는 당신과 같이 걷고 싶은 [항구로 가는 길]이 있다.


  


거제도 장승포항 해안매립공사를 확인할 수 있는 기사가 있어 소개합니다. 아마 올해 여름이면 완성을 한다고 하니 여름 휴가에 거제도를 찾는 분들이라면 확인가능할 거 같네요. 저처럼 오랜 고향의 모습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쉽지만 이 또한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될 장소가 되겠죠.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조화가 아름답게 이뤄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D 

기사 보기 : http://goo.gl/lCw0q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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