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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 Mar 27. 2016

3화. 거제도에는 같이 걷고 싶은 [오프로드]가 있다.

[거제 8경, 한국의 아름다운 길, 여차~홍포 해안도로]

거제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거제도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어디가 좋은 지, 무엇이 맛있는지 등 거제도 토박이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있을까 사람들은 기대하는 듯했다. 다행히 집 근처에 외도와 해금강, 지심도를 드나드는 유람선 선착장들이 있어 대충 체면은 면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거제도에 놀러 온 친척들이나 지인들을 그냥 보내는 법이 없으셨다. 거제도에 사는 사람의 숙명인 것처럼 부모님은 아무리 바빠도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며 식사 한 끼를 꼭 대접하셨고 미리 준비한 관광안내지도를 전달해야만 만족해하셨다.


나는 오랜만에 아빠의 관광안내를 받아보기로 했다. 한동안 내비게이션과 인터넷 검색에 밀려있던 아빠의 관광안내가 빛을 발하길.

 이 날 찾아갔던 길은
[여차~홍포 해안도로]라고 했다.






거제도는 섬 특유의 자연경관들을 관광하는 곳이기 때문에 (조선소를 중심으로 한 시내를 제외하고는) 걸어 다니는 도보여행이나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는 여행이 쉽지 않다. 


그래서 개인 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부분 접근성이 좋은 외도와 지심도에 들어갈 수 있는 장승포, 학동, 구조라, 와현 등을 많이 찾는다. 때문에 그것보다 차로 한참 더 들어가야 나오는 거제도 남쪽 끝, 여차와 홍포는 거제도에 오래 산 사람이라도 가본 적이 없을 수 있다.     


인내심 있게 찾아오지 않으면 주변에 유혹하는 풍경들에 이끌려 홍포는커녕 여차까지 도착하기도 어렵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오전에 비가 온 뒤라 그런지 더 맑아진 새파란 하늘과 끝없이 달려도 쫒아오는 바다 그리고 수선화와 동백, 벚꽃이 알록달록 예쁘게 심긴 꽃 길 까지 뭐하나 빠진 듯 없이 완벽했다.


꽤 달리고 보니 드디어 여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차~홍포 해안도로의 시작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생뚱맞게 차 아래에서 '털커덩, 덜덜덜...'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리듬을 타듯 온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차~홍포 해안도로의 비포장도로(off-road) 가 시작된 것이다.  



관광도시 거제도에서 이렇게 불친절한 길은 처음인 것 같았다. 더욱 놀라운 건 이 길 옆으로는 낭떨이지다. 여차해수욕장에서 시작된 이 비포장도로는 홍포까지 계속 이어진다. 얼마 전 tvn 꽃보다 청춘-아프리카 편에서 비포장도로 오프로드는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하던데, 이 길도 로망이 될만한 길인지 모르겠다.


거제도는 해안도로가 많아 경치가 아름다운 대신 운전이 까다롭다. 특히 여차~홍포 해안도로 같은 비포장도로라면 더욱 조심해 운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빠의 말로는 이 길은 앞으로도 포장이 될 계획이 없다고 한다. 거제시에서 이 곳의 자연경관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서 이 길만은 그대로 보존한다고 하는데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달리며 흔들림에 익숙해질 때쯤, 잠시 길이 편해지는 가 싶더니 해안도로 전망대에 도착했다.

    와!  

                          



거제도에서 자란 나는 바다를 보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 물론 익숙하다고 해서 바다가 좋다는 걸 모르진 않는다. 한 번씩 거제도에 내려와 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면 정말 아름답다 싶다.

그러나 여차~홍포 해안도로에서 바라 본 거제도 바다는
아름답다를 뛰어넘는 정도였다. 

난생 바다를 처음 본 것처럼 나는 말문이 막혔다. 넓은 공간 안에 인간이 만든 것은 보이지 않고 여러 개 작은 섬들과 바다 그리고 나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엄청난 바다의 크기에 압도된 나는 마치 바다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전망대에서 봤을 때 왼쪽에 위치한 여차해수욕장에서부터 오른쪽 거제 최남단의 섬 대병대도와 소병대도까지 '그림 같은'이라는 표현은 이 곳에 쓰는 게 맞는 듯했다. (사진과 다르게 작은 섬들은 눈 앞에 있는 것처럼 가깝다.)


한 폭의 그림을 마음에 잘 간직하고서 이 길의 끝 홍포까지 달린다. 끝까지 불친절한 비포장길을 가다 보면 짜증 날 법도 하지만 좋은 그림을 감상한 값이라 생각하면 위로가 될 것 같다.


...


거제도에는 당신과 같이 걷고 싶은 [오프로드]가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말 오후 답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많은 차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거제도에 여행 온 사람들 모두가 여차~홍포 해안도로 비포장길을 가봐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길은 운전하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 운전을 잘하지 않고서는 힘들 수 있고 또 홍포에서 다시 거제 시내로 들어가려고 하면 1시간이나 넘게 운전해야 해 시간이 부족한 분들에게는 아쉽죠. 어쩌면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워 가기 힘든 길, 참 아이러니하죠?

거제도에 사는 사람들 또는 몇 번의 거제도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권해드려요. 지금은 아니지만 계속되는 섬 개발에 밀려 언제 그 길의 흙과 돌, 나무들이 다 밀리고 깔끔하게 포장될지 모를 일이니깐요. 사진에 완벽하게 담기지 않는 그 광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 길을 가게 될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바다와 섬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주길 바라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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