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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 Mar 24. 2016

2화. 거제도에는 같이 걷고 싶은 [해안길]이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동백, 수선화 그리고 벚꽃]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이 곳 사람들은 거제도 바다를 보고 자란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거제도 내 방 창문을 열면 보이는 흔하디 흔한 풍경이 바다였기 때문에 나는 그 부러움을 이 곳 사람들의 인사치레 정도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서울에 익숙해진 나는 자취방 창문을 열 때마다 늘 변함없는 회색 건물을 마주한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바다와 달리 한 자리에 박혀 한결 같이 서 있는 앞 집 건물을 보면서   이 곳 사람들이 바다를 보고 자란 나를 부러워했는지 알 것 같다.

거제도에는 같이 걷고 싶은 [해안길]이 있다.  



장승포 해안도로

거제도에는 거제시 장승포동과 능포동을 연결하는 해안을 따라 난 길, [해안도로]가 있다. 장승포동 사람들은 이 길을 장승포동 해안도로라 하는 것 같고, 능포동 사람들은 이 길을 능포동 해안도로라 하는 것 같다.


내가 이 길을 걸었던 가장 먼 기억은 어릴 적 동네 친구와 함께 살을 빼겠다 결심한 후 매일 해안도로를 왕복으로 걷는 것이었다.(오래가진 못했다.) 돌도 씹어 먹는다는 청소년기에 학교 매점에서 분홍색 쮸쮸바를 밥먹듯이 사 먹었으니 갑자기 늘어난 체중에 운동이 필요했고 그럴 때 가장 만만했던 곳이 해안도로였다.


이 길은 동네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자연의 체육관 같은 곳이라 다이어트를 해볼까 내지는 건강을 위해 운동해볼까 마음먹으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길이었다. 특히 뜨거운 해가 가라앉은 여름날 초저녁이면 식사를 마치고 소화시킬 겸 운동하러 온 사람들을 제일 많이 볼 수 있다.

 


딱히 운동이 아니더라도 나를 포함한 이곳 사람들은 그냥 걷고 싶은 날에도 이 해안도로를 찾는다. 인도와 차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구불구불한 해안도로에서 빨리 달리지 않는 차들 덕분에 사람들이 걷는 데 딱 알맞은 길이다. 길이 가파르지 않고 완만해 아이들하고 산책하러 온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넉넉한 인도라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다. 빨리 갈 사람을 위해 길 한켠을 내어줘 빨리 갈 수 있도록 양보하고 여유 있게 걷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걸을 수 있다. 코스가 길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걷다가도 어느 새 혼자서 걷게 되는 걸 반복한다.  

 

15분 ~ 20분 정도 걷다 조금 힘이 들면 돌아갈 거리와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그쯤에서 쉼터만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쉬어가면 된다. 앞을 바라보게끔 놓인 벤치에 앉아 한 눈에 들어오는 하늘과 바다를 감상해보

계속 걸을지 돌아갈지 천천히 결정하면 된다.  



장승포동과 능포동 사이는 빠른 걸음으로 10분 ~ 20분도 걸리지 않게 가깝다. 그러나 급하지 않는 날에는 빠르면 1시간 내로, 천천히 가면 1시간 15분 정도 걸리는 이 해안도로를 이용할 때가 많다. 


화창한 날씨에 걷는 것을 좋아하고 편한 신발까지 신고 있다면 해안도로가 제격이다. 장승포동에서 출발했을 경우 오른쪽, 능포동에서 출발했을 경우 왼쪽에서 내내 펼쳐지는 바다와 함께 이 길을 걸을 수 있다.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정말 좋다. 어렸을 때 아빠 차를 타고 갈 때면 일부러 해안도로로 돌아가자고 졸라댔다. 크게 바쁜 일이 없으면 아빠는 해안도로를 이용해 어린 딸의 소원을 들어줬다.


특히 봄에 이 해안도로를 오게 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날씨 좋은 날 차의 창문을 열면 멋진 남해 바다의 풍경과 여기저기 만개한 꽃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미 3월에는 개나리와 동백꽃, 수선화가 만개했고 벚꽃은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있었다. 해마다 이 길의 벚꽃은 4월 초에서 중순 사이에 만개한다. 



4월에 거제도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지심도나 외도를 관광한 후 식사 맛있게 하고 부른 배를 소화시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때, 산책이나 드라이브 코스로 이 곳을 가보면 좋을 것 같다. (해안도로는 관광지가 아니기에 일부러 이 길을 찾아오는 것보다 여행 중 조용하게 걷고 싶거나 드라이브가 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벚꽃반 사람 반인 서울의 벚꽃축제와 달리 이 길의 벚꽃은 동네 사람들만 지나다녀 편안하게 꽃구경이 가능하다. 거기에 맑은 하늘과 바다까지 함께하니 이 길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


거제도에는 당신과 같이 걷고 싶은 [해안길]이 있다.




이 길을 걸었을 때는 아직 벚꽃이 활짝 피기 전이라 사진으로 예쁘게 담질 못했어요. 그렇지만 분홍 벚꽃길이 이어지는 해안도로의 모습은 정말 예쁘답니다. 마침 해안도로 벚꽃길에 숨은 이야기를 다룬 기사가 있어 소개해 드릴게요. 해안도로에는 총 600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고, 이 나무들은 거제도를 그리워 한 출향인의 기증에 의해 조성된 것이라 하네요. 기사 안내 http://goo.gl/T93oTh

3월 12일부터 4월 17일까지(6주 동안) 주말과 공휴일에  해안도로를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해 시범 운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봄꽃을 즐기러 오는 주민들을 위해 마련된 특별 이벤트인 것 같네요. 이 기간에는 조금 더 넓어진 인도에서 봄의 꽃길을 더 여유롭게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사 안내 http://goo.gl/uHmlwQ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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