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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법 앞에서 06화

법대로 하겠습니다

by YJ
광화문 탄핵 집회에서 Copyright 2025. Diligitis. All rights reserved.

고소나 소송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일상과 감정, 심지어 인생까지도 흔들어 놓을 만큼 큰 영향을 미친다. 처음에는 다들 억울함을 풀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수사 과정은 길고 지루하며 결과는 내가 예상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소를 하려다가 내가 더 지쳐버렸다”라고 토로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에너지를 덜 쓰면서도 합법적인 대응을 할 수 있을까?


먼저, 고소의 목적을 간단히 정리해야 한다. “이 사람에게 반드시 콩밥을 먹이겠다”가 아니라 “내 피해 사실을 억울하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기겠다”, “상대가 다시는 이런 행동을 못 하도록 경고하겠다” 정도로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좋다. 기대치를 낮추면 불송치나 불기소가 나오더라도 충격이 줄어든다. 둘째, 증거는 선별적으로 준비한다. 모든 자료는 오히려 수사기관을 소모시킨다. 판사가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범죄 사실과 직접 연결되는 핵심 증거 몇 가지만 준비해도 충분하다. 이때 증거 정리는 “내가 억울하다는 감정의 증명”이 아니라 “객관적인 판단의 도구”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법적 대응 시간과 일상 시간을 분리해야 한다. 고소는 마라톤과 같다. 하루 종일 사건 생각만 하면 속이 뒤집히고 불면과 불안이 따라온다. 일주일에 하루, 혹은 특정한 시간만 ‘법적 대응’에 쓰고 나머지는 일상에 집중하는 규칙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 넷째,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지인이나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면, 가슴에 무게가 얹힌 듯한 답답함과 고립감을 덜 수 있다. 법적 싸움이 ‘개인 대 개인’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활용하는 과정’이라는 관점이 생기면 심리적 부담이 훨씬 가벼워진다. 마지막으로, 형사 절차만이 정의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형사고소는 상대를 처벌하기 위한 길일뿐, 나에게 피해 회복을 직접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민사 소송과 행정적 절차를 함께 고려하면, 한쪽이 막혀도 다른 길이 있다는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


고소까지 했다는 건 많은 용기를 낸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를 장작으로 불태워버릴 필요는 없다. 법적 정의를 추구하는 동시에, 나의 일상과 마음을 지켜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에너지를 덜 쓰면서 고소한다”는 말은,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법을 활용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소위 법전문가라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며 놀라움에 한 수 배우고 있다. 진작에 법을 부전공이라도 하지 않았던 나를 자책하며, 현란한 법기술을 나도 언젠가는 써먹어봐야겠다고 굳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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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일본에서 작가 데뷔해 미국, 독일, 중국 등 글로벌 기획자로 활동했습니다. 구독은 하고 댓글을 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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