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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Apr 03. 2021

그들이 만든 자기만의 길

인터뷰집 <내일을 의한 내 일>

어렸을 땐 ‘성공한 어른’이 다 비슷한 인생을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업적으로 성공하면 부는 따라오는 것이고, 가정은 자연스레 희생된다고 막연히 상상했죠. 일을 시작하고 세상에 있는 수많은 직업인들을 보면서 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은 모두 각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다혜 작가의 인터뷰집 <내일을 위한 내 일>에는 양효진 배구선수, 정세랑 소설가 등 서로 다른 업계에서 일하는 7명의 여성 전문가들이 나옵니다. 일의 종류만큼이나 성공에 다다른 방법과 직업인으로서의 태도가 다양한데요, 오늘은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윤가은 영화감독과 이상희 고인류학자를 소개합니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말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뚜렷한 목소리로 현장을 카리스마 있게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윤가은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감독에 대한 글을 읽을 때마다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당황스러웠다고 해요.


리더십은 비단 영화감독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누구나 프로젝트를 이끌거나 팀을 리드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기 때문이지요. (저를 포함한) 내성적인 사람들은 이때부터 요구받는 리더십과 자신의 성향 사이에 벌어진 간극 때문에 고민하고 또 괴로워합니다. 윤가은 감독도 그랬습니다. 어릴 때는 억지로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지만,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인정하고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윤가은 감독의 리더십은 주도권을 쥐고 갈등을 잘 다스려 자기 쪽으로 끌고 오는 방식이 아니다. 여러 종류의 리더십 중 그가 택한 방법론은 대화와 경청에 있다.” (p23)


잘 듣고, 잘 말하는 것에서 비롯된 부드러운 리더십은 어린 배우들과 작업하는 데에도 빛을 발합니다. 촬영 중 배우가 연기하면서 감정적으로 힘들어했을 때, 윤가은 감독은 배우에게 강요하지 않고 장면을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창작물이니 어떤 장면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그렇게 빠진 장면을 연결시키는 건 제 몫인 거”라고 인정하는 모습도 윤가은 감독답다고 생각했습니다(p30). 자신만의 감수성과 리더십으로 만든 창작물은 과정만으로도 더없이 특별합니다. 사람들이 윤가은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거예요.




여러분은 일찍부터 재능을 발견하고 진로를 결정한 타입인가요, 아니면 잘하는 일을 뒤늦게 발견한 타입인가요? 이상희 고인류학자는 후자였다고 합니다. 처음엔 음대를 가기 위해 피아노를 쳤지만 진학 무렵 슬럼프가 와서 포기했고, 대학 땐 전공인 고고학계가 너무 마초스러워서 견디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집을 떠나기 위해 대학원을 갈 땐 어쩌다 추천받은 고인류학을 선택했다고 해요. 그는 뛰어난 재능이 없어도 자신의 영역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선 ‘심드렁함’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지루한 일 80퍼센트죠. 그럼에도 오래하는 비밀은, 심드렁함이에요. (…)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은 누구든지 잘할 수 있어요. 그보다는 하기 싫은 일도 심드렁하게 해낼 줄 아는 사람이 오래가고 생산적인 일을 하더라고요.” (p180)


하기 싫은 일에 굳이 정을 붙이지도, 학을 떼지도 않고 한 발짝 떨어져서 해내는 것. 하기 싫은 일을 최대한 생산적으로 해낸 뒤에 하고 싶은 일에 더 매달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 그것이 이상희 교수가 말하는 심드렁함인 것 같습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직업을 선택하기 전에 상상했던 삶과 지금 실제로 살고 있는 삶이 무척 다르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80퍼센트의 지루한 일을 감내하고 살고 있나 봐요. 저도 재미없고 귀찮은 일을 좀 더 심드렁하게, 그러나 빨리 해내는 태도를 몸으로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터뷰집을 쓴 이다혜 작가는 “‘다른 일’을 상상하는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말합니다(p7). 그래서 <내일을 위한 내 일>은 여러 직업을 단순히 소개하기보다, 다양한 업계의 프로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자리까지 왔고, 지금은 어떤 태도로 일하고 있는지 깊숙이 꺼내어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는 거리가 먼 직업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도 모두 유의미했어요. 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편이라면, 이 인터뷰집을 통해 그 고민을 여러 갈래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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