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한 일을 정리하며 회고하고, 다음 주 할 일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다. 실천하기가 어려울 뿐. 나도 그동안 여러 번 시도했지만, 중간에 다 포기했다. 그땐 의미 있는 회고를 하는 방법과 일을 관리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평소에 쓰지 않던 새로운 툴을 쓴다는 것이 너무 귀찮기도 했다. 그리고 스스로와의 약속이 가장 깨기 쉬운 법이라는 걸 간과했다.
그렇게 몇 개월 동안 회고와 계획 없이 일에 떠밀리듯 살았다. 닥치는대로 일을 해도 표면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일을 주도한다기보단, 일이 나를 끌고 가는 듯한 심리적 불편함은 계속 있었다. 그러다가 지인이 사용하는 회고 템플릿과 그가 추천해준 일정 관리법 글에 영감을 받아 나한테 맞는 시스템을 다시 고민하고,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성공이다!)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기 전에,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회고와 계획을 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나에게 맞는 솔루션을 이끌어 낼 수 있을 테니까.
나의 경우에는 일터에서 받은 인풋이 날아가 버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내가 고민했던 것, 받았던 피드백, 배웠던 지식을 기록하지 않아 내 머릿속에 쌓이지 않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짧은 기억력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홀랑 까먹어 버린다는 문제도 있었다. 나중에 내가 한 일을 총정리하려면 주기적으로 중간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매번 닥쳐오는 일을 하다 보니 주체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발전하려면 하고 있는 일보다 한 단계 상위 레벨에서 객관적으로 조망하고, 어떤 방향으로 갈지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 게다가 시간 관리도 잘 안 됐다. 일이 바쁠 땐 바쁜 대로 시간이 부족했고, 안 바쁠 땐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주간 회고, 계획 시스템을 만들었다.
먼저 회고부터. 크게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이번 주를 돌아보면서 기억을 되살리는 단계이다. 내 캘린더를 펼쳐 놓고 이 두 가지 질문에 답변을 한다.
이번 주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전반적인 느낌은 어땠는지? (10점 만점)
두 번째는 이번 주에 구체적으로 했던 일, 느꼈던 감정에 대해 회고하는 단계다. 최대한 솔직하게, 많은 것을 적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배웠던 걸 날려보내지 않기 위해 레슨런도 기록한다.
잘했던 점은?
아쉬웠던 점은? 이걸 개선할 수 있는 액션 아이템은?
이번 주의 고민은?
이번 주의 레슨런은? (암묵지, 형식지 모두)
세 번째는 번외 편이다. 업무적으로 도움이 되는 콘텐츠(예를 들면 존잡생각 유튜브 채널이나 책 <함께 자라기>)를 15~20분 정도 보고 주요 내용과 내 생각을 기록한다. 보통 역량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저절로 내 삶과 커리어에 대해 회고를 하게 된다.
회고가 끝나면 다음 주 계획을 시작한다. 계획도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내 연간 계획표에 기반해 내가 이번 주에 했던 것들을 간단히 리뷰한 다음, 다음 주에 할 일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는다. ‘무슨무슨 책을 읽는다’가 아니라, ‘무슨무슨 책을 몇 챕터까지 읽는다’와 같이. 단위가 크다면 여러 개로 쪼개어서 적는 게 실천하기에 좋다.
그 다음에는 위에서 정한 할 일과, 회사에서 할 일을 종합해 쭉 적는다. 해야 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상관없이 다 적은 다음, 중요도와 긴급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한다. 이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은 퍼블리의 투두리스트 쓰기 전에 ‘이것'부터: 월요병이 사라지는 일정 관리법 글에서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는데, 간단하면서 체계적이어서 나랑 잘 맞았다.
마지막 단계는 우선순위대로 내 캘린더에 옮기는 단계다. 여기서 퍼블리 글을 통해 알게 된 꿀팁이 있다. 바로 구글 캘린더의 ‘할 일'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TasksBoard라는 툴이다. 이 툴에서는 ‘할 일'을 칸반으로 나누어 관리할 수 있다. 그래서 2에서 정한 우선순위 A~D로 칸반을 설정하고, 각 칸반에 투두를 넣으면 시각적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구글 캘린더 우측에 있는 부가 기능에서 ‘Tasks’를 열어 내가 넣어둔 투두를 A, B, C, D 순서대로 캘린더에 넣어준다(드래그앤드롭). 보통 D순위의 일은 자연스럽게 제외된다.
TasksBoard가 꿀팁인 이유는, 항상 쓰던 구글 캘린더에서 확장한 툴이라 내 일상의 프로세스에 부하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캘린더는 하루에도 몇 번을 열어보는 앱이라 태스크를 자꾸 리마인드하게 되는 것도 장점이다. 그리고 ‘할 일'은 ‘일정'과 달리 회사의 동료들에게 보이지 않아 솔직하게 쓸 수 있다.
사실 회고와 계획하는 방법엔 특별할 게 없다. 아마 회고할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질문 빼고는 새로울 게 없을 것이다. 결국, 회고와 계획의 질을 높이는 것, 그리고 매주 빠지지 않고 실천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게 제일 어렵다.
나는 (이 시스템의 영감을 준) 지인과 함께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인증하고 있다. 회고 내용을 보여주면 솔직하게 쓰지 못하니까 내용은 가린 채로 사진을 보낸다. 안 했는데 했다고 말해도 모를 일이지만, 어차피 벌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의 신뢰에 대한 문제니까.
내가 좋아하는 책 <함께 자라기>에서는 더글라스 엥겔바트라는 사람이 구분했던 작업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A작업: 하기로 되어 있는 걸 하는 것
B작업: A작업을 효과적으로 해내기 위해 시간과 품질을 개선하고, 시스템을 잘 설계하는 것
C작업: B작업을 효과적으로 해내기 위해 시간과 품질을 개선하고, 인프라를 잘 설계하는 것. 사고방식과 상호 작용 방식을 개선하기 때문에 가장 잠재력이 크다
여기에 빗대보면 A작업은 일터에서 하는 업무와 개인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하는 일이고, B작업은 A를 더 잘하기 위해 회고하고, 계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품질을 높여주는 건 B를 더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C작업이다.
나는 회고, 계획 기록을 분기 별로 다시 읽어본다. 지금의 나에게도 의미 있는 기록을 곱씹거나, 나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새로운 액션 아이템을 만들고, 이 시스템 자체를 바꿔보기도 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C를 위한 작업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글을 쓰면서 다시 체계화할 수 있고, 부족한 부분을 깨닫기 때문이다.
회고와 계획을 시작해보면 안다. 여러 면에서 좋다는 걸. 내가 의도한 대로 일주일이 굴러갔고, 일과 삶에서 주체가 된 기분이 들기 시작해 효능감이 생겼다. 그리고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내 성과와 방향성을 고민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이 시스템을 계속 실천하는 것, 그리고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것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