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깁스 떼고 일단 나간 인생 두번째 소개팅.
지난 번 결혼이 필요한 순간.
우연히 소개팅 제안이 들어왔다. 그것도 친구가 아닌 친한 대학동기 어머니가 평소 집에 자주 놀러가던 나를 떠올리신 것. 어른이 몇 년동안 벼뤄왔다며 해주신 소개팅이라 거절하기도 뭣하고- 지금 상황에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그때 내 상태는 연골 수술을 마치고 반 깁스를 겨우 떼고 다닐 때 였다. 여기다 2018년 여름이 좀 더웠나? 1994년 이후 기록적인 폭염이 한 달반이나 이어진 이번 여름! 긴 공백을 깨고 연애를 해야겠다는 의지와 반대로 이 더위에 소개팅에 나오겠다는 상대방이 궁금해서 태어나 두 번째 소개팅 제안을 수락했다.
30대의 소개팅은 고루하다는데 -
살면서 소개팅은 딱 한번, 이번이 두번째다. 연락처와 이름만 받고 일주일 동안 연락을 했다. 그는 대기업 D건설사에 다니는 동갑내기. 첫 연락이 아침 9시라니 꽤 적극적일 것 같다는 안도감과 한편으론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느낌이 확 왔다. "아름씨는 출근 잘했어요?"라는 물음에 홈오피스에 일하기 때문에 출근을 거실로 한다고 했는데 생소해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남초 회사의 군대 문화, 난 회사를 다닐 때에도 여초사회에서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뷰티 에디터였으니까. 이런 내가 공대와 부사관 출신의 건설사 다니는 남자와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든 것도 잠시, 지금껏 만나온 남자들과 너무 다른 성향인 그가 궁금했다.
호기심으로 나간 소개팅!
우스갯 소리지만 이런 핵.더.위에 대낮의 소개팅을 나오려면 어느 정도 연애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태양보다 더 불타오르는 마음 말이다. 그럼에도 소개팅이라는 게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만나기엔 어려운 자리이지 않는가? 그래서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다. 다만 그 호기심이 얼마나 컸는지 백화점 개점 시간에 브로우 바에서 눈썹정리를 하고 미용실에서 드라이까지 하고 갔더랬다. (친구들은 아직 이 이야기를 두고두고 간직해뒀다 남자친구에게 이야기할거란다.) 하지만 이 노력이 아깝지 않았다. 용산에서 10년 동안 산 내 앞에서 이태원 맛집을 찾아온 성의라던지, 말이 많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등 어딘가 모를 어눌하지만 순수한 모습이 좋았다. 결정적인 순간, 부산남자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애프터 신청은 또 어떻고.
정반대라서 더 매력적인 부분들.
소개팅을 하고 이 가수의 GOD의 '반대가 끌리는 이유'라는 노래를 일부러 찾아들어봤다. 대부분 사람들은 취향, 성격, 식성까지 비슷해야 한다는데 이 남자는 말이 없고 일상이 심플하고 감정의 폭이 거의 없다. 반면 나는 감정기복이 심하고 하루하루가 스펙타클하고 아마 말도 세 배나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만큼 말이 많은 건 말이 없는 것 보다 더 싫다. 그냥 두서없는 나의 말을 잠자코 들어주는 그가 좋았다. 그리고 그는 식탐도 거의 없는데 나는 가고 싶은 레스토랑에 꼭 가야하고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여자다. 일찍 잠이 드는 그에 비해 난 밤에 일이던 운동이든 더 잘 된다. 안 맞을 것 같다고? 하지만 세 번째 만남에 서로 어디에서 끌렸는지 대화를 했는데 이런 내 모습이 자기한테 없는 부분이라서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술이나 전시회, 고궁탐방 같은 활동적인 건 둘다 좋아하는 거니까 나쁠리가 없잖아! 빼앰 -
마지막으로 여자는 외모보다 남자의 전문성에 끌린다.
"댈따 줄게." 처음 만난 날, 정감있는 부산 사투리로 집에 데려다준다고 했다.
나도 부산 출신이긴 하지만 이미 서울에 산지 오래되어서 본능적으로 사투리 억양을 들었을 때, 마음이 편했다.
그의 차를 타고 한강대로를 지나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지나가는 데 그가 밤까지 반짝이는 건물이 예쁘다고 운전석에서 건물을 올려다봤다. 그러고선 한번도 들어가본 적 없는 외관을 보고 "엘리베이터가 네 개네"라고 얘기를 했다. 나는 이미 신사옥에 여러번 갔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외관만 보고 알 수 있지?라는 생각도 잠시! 아, 건축하는 남자가 이래서 멋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를 짓는 사람이지만 이 말 한마디에 적어도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은 탄탄하구나 라는 전문성에 이끌렸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겠지만 소개팅 내내 말도 없고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건지 아닌 건지 헷갈리는 이 남자, 왠지 한번 더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애프터 신청은 그가 먼저했다. "주중에 영화볼래?" 라고 아주 심플하고 강력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