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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he F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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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Eun Mar 03. 2016

The Flight_11

<11> 결국 나는 다시 떠났다

<11>



 그렇게 몇 주가 흘렀고, 나는 그를 매일 그리워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 잘 때까지 계속해서 그를 떠올렸고, 그와 했던 대화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무슨 생각을 할 지, 내 생각을 하고는 있을지 궁금했다. 매일 그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그의 하루 하루를 알고 싶어했고, 혹시나 그가 먼저 연락 오지 않을까 핸드폰을 멀리 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답답해서 몇 시간쯤 핸드폰을 꺼보기도 하고, 페이스북 어플리케이션을 지워보기도 했지만 얼마 후 핸드폰을 켜고 어플을 다시 다운로드 받고 있는 내가 있을 뿐 아무 소용 없었다. 눈물로 지새우는 그리움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눈물로 지새운다면 우스울 수도 있었던 한 달 남짓의 감정이었지만, 그래도 많이 아프고 많이 힘든 시간이었다. 연락하고 지내고 싶지 않다고, 친구로 지내고 싶지 않다던 나는 그렇게 내가 내 풀에 지쳐, 그 보고싶음에 사무쳐 먼저 안부를 묻고 있었다.


"Hey, Merry Christmas for you!"


다행히도 크리스마스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머리를 짜내고 짜내 생각한 인사말은 메리 크리스마스였고, 몇 번을 썼다 지웠다 보낼까 말까 고민 끝에 전송 버튼을 누르면서도 후회했다. 그가 내 메시지를 확인한 건 몇 시간쯤 후였다. 그 역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고, 나는 또 한 번 후회했다. 그에게서 어떤 답이 오기를 바랬는 지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원한 게 어떤 건지 항상 확실하게 알지 못했기에 기대했던 대로다,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는 얘기 또한 할 수 없었다. 내가 정말 그에게 원했던 대답은 뭘까. 영화처럼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보고 싶었어." 라는 대답을 원했던 걸까. 그러기에 그가 그토록 현실적이고, 이제 더 이상 오해할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고 있음을 아는데도?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응큼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쉬이 말해놓지 않는. 혼자 무언가를 궁리하고 진행시켜놓고 결과물만 들이미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랜 벗이라 해도 그런 상황이 있으면 마음이 떠나곤 하는 나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류의 사람들과 비슷한 모양인 것인가.


그런 모양은 몇 주후 더 심각한 형태로 드러났다. 폴에게 전화를 했고, 그에게 말했다.


"I booked a flight ticket to Vancouver 2 weeks later."

나 2주 후에 벤쿠버 가는 비행기 끊었어...


"What?"

뭐라고?


그랬다. 나는 말 그대로 벤쿠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고, 2주 후에 벤쿠버로 떠날 예정이었다.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다. 이건 장거리 연애를 하는 연인을 보러 가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목적 없는 여행도 아니었으며, 그 곳에 사는 친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었다. 이상하고, 기괴한 일이었다. 내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더 당황스러운 쪽은 당연히 그였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나는 내가 싫어하는 그 류의 사람의 모습이었으리라. 사실 누가 그런 류의 사람을 좋아하겠나 싶다. 자기 혼자 다 저질러 놓고 쨘하고 나타나는 게 상대방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고서야 좋을 리 없다. 설사 선물이라 해도 그 쪽에서는 부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이런 일이라니.


 그는 "It's crazy"라는 말을 연발하다가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는 대화를 이어갔다. 얼마 동안 있을 것이고, 어디에 머무를 것이며, 왜 벤쿠버인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진심으로 그가 궁금해했었을, 그리고 이해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털어놨다.


"OK. Then you gonna come here and enjoy your time. And you will leave here and go back again. And then what?"

그래 좋아. 그럼 네가 여기 오고 여행을 즐기고. 그 다음에 또 돌아가잖아. 그런 다음엔? 그 다음은 뭐야?


 내가 싫어하는 그가 잘 쓰는 말 중에 하나였다. And then what? 그럼 그 다음엔 뭐 어떡하자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할 지 내가 알았다면 이렇게 무작정 벤쿠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겠냐 라고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었다. 그는 그럼 니가 있는 일주일동안 우리의 관계가 어떻기를 바라냐고도 물었지만, 그것 역시 나는 뭘 원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이어서 그럼 니가 다시 돌아가고, 그 힘든 결론내기와 다시 또 이별을 또 한 번 겪고 싶은거냐고 물었지만, 나는 웃어 넘기며 나도 모르겠다고, 긴 비행 시간이 있으니 그 때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무책임하고 대책 없는 나였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냥 마음가는 대로 했던 나였다. 많이 보고 싶었고, 그냥 궁금했고, 그를 다시 한 번쯤은 만나야 이 꼬여있는 실타래가 조금은 풀릴 거 같았다. 나는 언제나 그랬다. 꼭 끝까지 가야 모든 게 정리가 됐다. 이 쯤하면 됐다 하는 법이 없었다 적어도 사랑을 할 때는. 그리고 사랑을 끝낼 때는. 감히 이걸 사랑이라고 칭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끝내기에는, 끝내지지가 않았다. 시작도 안 한 관계였지만, 나는 어쨌든 끝내지지가 않았고, 그 답답함에 무작정 표를 산 것이다. 나도 참 나다라는 생각을 표를 사면서부터 벤쿠버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나도 정말 나였다.


 어쨌든 그는 그 주에 바쁘지 않을 것이며, 와서 보자는 이야기를 남겼다.


"It's good to see you again anyway."

어쨌든 다시 본다니 좋다.


그는 처음부터 이 얘기만 할 수는 없었을까? 그는 왜 항상 모든 것이 그렇게 복잡할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이 모든 걸 분석하고 그 속속들이 들어있는 감정들을 다 알고 싶어할까? 심지어 당사자는 잘 모르겠는 부분까지도. 그는 나에게 논리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떤 생각인지를 공유하는 걸 원했다. 그게 터무니 없는 생각일지라도 모든 것을 공유하고 나누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만약 그에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벤쿠버에 가고 싶다고, 굳이 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벤쿠버로 가려고 한다고. 비행기 표를 살까 고민 중이라고 말하고 미리 공유했다면, 그는 흔쾌히 어서 놀러 오라고, 어쨌든 다시 보게 돼서 좋다고 이야기했을까? 아마 나는 그게 두려웠으리라. 그러지 말라고, 차라리 다른 도시를 여행하라고. 자기와 상관없이 벤쿠버를 놀러 오겠다는 건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미안하지만 우리는 다시 보면 더 힘들어질 거라고 말하며 나를 말릴지도 모를 그가 두려웠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간의 벤쿠버 여행을 급히 계획하게 됐고, 설렘인지 뭔지도 모를, 생전 처음의 캐나다행을 택했다.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이 여행의 내막을 전하지 못한 채 그렇게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10시간여의 비행 시간동안 나는 어떤 결론을 내리지도 못했고, 그런 고민을 할 의지도 없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그 시간을 날아갔지만, 왜인지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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