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사주카페에 갔다. 최근 호된 일을 겪은 친구가 사주를 보고 싶다하여 따라간 것이었다. 사주풀이 해주는 분의 말을 듣던 나는 덜컥 '저도 봐주세요.'를 외치고 말았고 무려 3만3천원을 내고 평생사주를 봤다. 사실 별 것 없었다. 메뉴판에 '사주팔자는 남자 잘만나면 바뀌어요~'를 써놓은 사주카페에 뭘 바란거야. 뻔한 말을 늘어놓았다. 회사 그만두고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도 있나? 해법으로 여행을 많이 다니라는것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속으로 잔뜩 투덜댔지만 겉으론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마디한마디 새겨듣는 척을 했다.
한가지 기억에 남는말이 있다면, '4월엔 이별수가 있네요'라는 말. 사실 이별수가 어느해 어느달에 들어와있는지는 중요하지않다. 사람은 늘 만나고 이별한다. 이별수가 있다는 말도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테다. 이번달엔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이별했다. 벚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었을 즈음이었다. 원래 병을 앓고 계셨던 할아버지는 아름다운 봄날 천국으로 떠나셨다. 다음날 첫차를 타고 내려오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회사였다.
일요일 저녁이었다. 예정에 없었던 자리비움. 급하게 일들을 처리해두고 가야했다. 10시까지 일을 하고 집에돌아와 누웠는데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첫 기차에 몸을 실었다. 살면서 처음 경험해보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었다. 정신없이 손님을 맞고 정신없이 울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얘기하며 정신없이 웃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기사가 잔뜩 올라오던 때였다. "은신처를 정해놔야한대. 우리가족은 전쟁이 나면 어디서 만날까" "그냥 천국에서 만나자. 이제 천국에 아는 사람도 있으니까!"
난 아직 할아버지 얼굴만 떠올려도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가족들은 씩씩하게 이겨나가는것 같다. 가족 밴드가 만들어졌다. 할머니부터 시작해 가족들의 일상과 짧은 생각들이 올라온다. 정작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땐 왜 이러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얘기를 나눈다. 어젠 사촌언니랑 형부가 할머니 핸드폰을 바꾸러 갔단 이야기가 올라왔다. 금방 새 알림이 울려 들어가 봤더니 할머니가 새로 산 스마트폰으로 새로 올리신 글이 뜬다. '여행 가라고 여권사진 찍엇다아이가 산사람은 씩씩하게 잘살아야 된다케사서'.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할머니께서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모르는 사이에 봄이왔었네. 난 봄이 온줄도 몰랐네."
할아버지는 그맘때 즈음 천국으로 가고싶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가족들이 상을 치르기에 좋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이고, 평생을 목회자로 살아오신 당신께 부활절주간이라 더 뜻깊었을 수도 있겠다. 이제 할아버지가 천국에서 날 지켜보고 계실테니 더씩씩하게 힘내서 잘 살아야하는데 내가 그러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전 남자친구가 "힘든 게 있으면 얘기해"라는 말을 할 때면 난 "아냐 아무것도 안힘들어 정말 괜찮아"라고 대답하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힘든걸 너에게 말해도 넌 아무것도 해결해줄 수 없어. 내 문제는 나만 해결할 수 있어.' 내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누구보다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징징거리는 건 아무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언제나 강하고 꿋꿋한 스스로를 기특해했다. 그러던 내가 어쩌다가 징징이가 되어버렸을까.
그 소식을 들은 날 밤, 나는 너를 원망했다. 일요일에 출근해 종일 일하고 이제 택시를 탄다는 너에게 "넌 왜 내가 필요할 땐 내 옆에 없냐"고 투덜거렸다. 언젠가 트위터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너에게 전화를 해서 1번 답답함, 2번 답답함을 줄줄 읊어야만 답답함이 풀린다는 게 나의 3번 답답함이다.' 이미 너는 나의 약점이 되어버렸다. 네가 없이도 잘 살겠다고 발버둥을 쳐도 널 만나고 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있다. 난 네가 없어도 1번 답답함과 2번 답답함을 잘 이겨낼 수 있는 강한사람이지만, 3번 답답함이란 난제 앞에서 내가 이정도로 무력한 사람이었나싶을정도로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무뎌질 것 같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괜찮아질 것 같았는데 그것도 정말 잠시뿐이고, 별 볼 일 없는 널 하나 어쩌지 못해 이러고 있다. 왜 이 나이 먹도록 마음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전전긍긍인걸까.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왔다고 자신하고 너를 만나면, 또다시 바보같은 나로 돌아가버린다. 세상일이 다 지루하게 느껴지다가도 너를 만나면 다섯시간도 오분처럼 휙하고 지나가버린다. 그때 다른 직렬로 가버렸더라면, 연수원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친해지지 않았더라면 난 내가 사랑하는 내 모습으로 잘 살고 있을텐데, 왜 내 인생에 너라는 변수가 끼어들어서 모든걸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걸까.
벚꽃은 허무하게도 빨리 떨어졌다. 사실 난 벚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희미한 분홍색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사람 마음을 잔뜩 설레게 해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얌체같은 점도 내 취향이 아니다. 난 푸른나무가 좋다. 바람에 푸른나무가 흔들릴때면, 그 청량함에 더할나위없는 행복을 느끼곤 한다. 난 여름을 가장 사랑한다. 너무너무 더우면 천천히 걸으면 되지~ 하고 천천히 걸어간다.
내가 푸른 나무를 좋아하고, 여름이란 계절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는 네가 좋다. 넌 내게 영원히 옆에 있겠단 약속도 하지 않았고 가끔 내 맘을 너무나 아프게하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날 제일 기쁘게 만들어주는 사람 또한 너다. 정말 인정하고싶지 않지만 난 네가 좋다.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푸른 잎사귀는 언젠가 떨어져서 앙상한 가지만 남을테고, 뜨거운 여름도 언젠가는 지나가고 살을 에는 추위가 찾아올테다.
4월에는 이별수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4월에는 기필코 너와 이별하겠다고 다짐했다. 4월이 일주일도 남지않았지만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버리듯 흔적도 없이 정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일기를 쓰기 시작할때까지만 해도, 그런 목적으로 제목을 정했다. 언제나처럼 복잡한 마음을 글로 쓰면 정리가 되고 해법도 찾을 것 같아서. 그런데 웬걸, 일기를 쓰다가 중간에 생긴 너라는 변수로 이 일기의 결론 또한 달라졌다. 인생은 정말 변수 투성이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창의성이 부족한 나는 이 문제의 해법을 도통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