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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May 02. 2017

서울살이는

혼자 있고 싶어요 

회사생활을 시작한 후, 퇴근길은 늘 누군가와 함께였다. 칼퇴를 하든, 회식을 하든, 야근을 하든. 다들 같은 방향에 살고 있었고 지하철도 함께탔다. 약속이 있어 반대편 지하철을 타는 일이 있어도, 누군가는 같은 방향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총 1200여 명.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만히, 혼자 있을 기회가 거의 없다.


일주일 쯤 전이었을까. 회사 앞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가자는 동기의 말에 콜을 외쳤고, 함께 나가려고 했으나 남은 뒷정리를 하느라 10분정도 늦게 혼자서 출발하게 됐다. 장소는 교대역에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나오는 교대곱창. 남은 일을 마무리해놓고 분주하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한참을 걸어가다 어색함을 느꼈다. 지금 나는 혼자구나. 아주 오랜만에 '혼자' 회사밖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은 잠시 어색했고, 잠시 외로웠으며, 몹시 편안했다. 난 혼자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늘 단체생활에 부적절한 인간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녔었다. 불편한 사람과 어색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느니 혼자 집에서 편하게 밥먹는 게 편했고, 아무리 친해져도 동료는 동료고 사생활은 사생활이라고 정없게 선을 그어야 속이 편안한 사람이었다. 


혼자있는 시간은 매우 소중하고 중요하다. 혼자있어야 생각을 할 수 있다. 둘이서 셋이서 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지만, 혼자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있어야만 내가 발전하고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랑 늘 어울려 놀다보면, 혼자있는 시간을 못견뎌하고, 그 외로운 순간을 못참게 된다. 매일매일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모양으로 비슷한 대화를 하다가 또 시간이 흘러버리고, 변하는 계절 이야기나, 지겨운 회사 이야기나, 기껏해야 서로의 연애 이야기나 늘어놓으면서도 관성에 젖어 그 똑같은 생활을 멈추질 못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나는 혼자구나'. 그 순간이 지나서야 나는 내가 혼자 생각해야 하고 결정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느라 잊고 살았던 것들. 난 왜 이 직업을 선택했는가.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사실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혼자있고 싶어서' 였던 걸, 떠올렸다. 혼자있는 게 좋았고, 혼자 해야할 일이 정말 많았고, 다른 누군가와 의견을 맞추고 조율하여 밑바닥에 있는 사회성을 한껏 끌어올려야하는 과정들이 너무 귀찮았다. 


'나 그냥 부산으로 내려가버릴까.' 이삼주 전, 너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속마음을 고백했다. 스무살 이후로 쭉 서울에서 혼자 살았고, 공부하는 10개월 남짓 잠시 부모님집에 내려가 살다가, 다시 내가 '혼자' 살던 서울로 돌아왔을 뿐인데, 왜 집으로 돌아가고싶단 생각이 드는걸까.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이 핑계 저 핑계 늘어놓는 나에게 넌 '너 지금 서울살이가 많이 힘들구나.'라고 말했다.


그냥 지금 좀 힘들다는 말을 돌려서 말한 거겠지. 혼자서 하는 객지살이의 외로움을 이제야 처음 느껴본 것도 아닐테니까. 그렇다고 지금의 서울살이가 많이 힘든가. 힘들이유가 있나. 사실 그렇지도 않다. 대학생 때처럼 용돈을 쪼개서 빠듯하게 살아야하는 것도 아니고, 취준생 때처럼 친구의 행복을 마음껏 축하해주지도 못하고 졸렬하게 살아야 할 필요도 없다. 회사에 불지르는 일만 없으면 날 절대 자르지 않을 회사가 있고, 회사에선 매달 월급이랑 각종 수당을 챙겨주고, 적지만 돈도 좀 모았고, 올해 여행 계획도 많이 세워뒀다. 지루하도로 평온하고 평온해서 지루한 삶의 끝에 비집고 들어온 게, 외로움이란 감정인가보다.


나는 지금 다시 혼자다. 생각을 하기위해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혼자가 되었으니 생각을 해야한다. 미뤄왔던 생각을. 이대로 지루하고 평온하게만 살다가 뻔하고 뻔하고 누가봐도 지루한 인간이 되고싶진 않다. 20대 초반에 했던 고민 몇가지만 안고 평생을 그때의 생각들에 의존해서 살아가고싶진 않다. 


내가 부산에 가버리겠단 말에 넌 금세 우울한 얼굴을 했다. 대체 왜그러냐고 물으니 '넌 나를 우울하게 한다'고 대답한다. 초등학생인가. '정말 가버릴거면 아주 일찍 말해줘야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잖아. 허전할거니까.'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는 네가 너무 얄미워서 정말로 떠나버릴까 생각도 했다. 머리맡엔, 지난주 금요일 네가 와서 따주고 간 디퓨저의 향이 가득하다. 매일 눈을 감고 뜰 때에, 그 향이 가득해서 난 정말 행복하다. 지루하고 외로운 서울살이를 덕분에 견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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