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낭콩 Sep 09. 2016

いただきます, 당신 안의 신을 떠올리며

그때 낯선 곳의 신은 우리를 위해 울어 주었을까



일본에 머물던 때의 이야기다.


그곳의 겨울은 춥고 어두웠다. 속을 알 수 없는 표정들과 나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너무나도 선명한 선 앞에서 나는 당황했고, 타향 어느 곳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지독한 향수를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고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느끼곤 하였다.


추위 때문인지 외로움 때문인지 모를 열병을 겨우내 앓다가, 나는 미처 겨울이 다 지나기도 전에 쫓겨나듯 한국행 비행기표를 샀다. 오랜만에 저녁을 같이 먹자며 가깝게 지냈던 일본인 친구를 불러내어 밥을 먹는 도중 이번 주말 근교 도시에 같이 가지 않을래,라고 묻는 그에게 나는 이제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잠시 말이 없던 그 또한 대답 대신 나에게 물었다.

"일본에서는 밥을 먹을 때 이렇게 얘기하잖아, 'いただきます(이타다키마스)'. いただきます 가 어떤 다른 뜻이 있는 줄 알아?"

"기본 뜻은 いただく(받다) 아니야?"

"맞아. 그런데 왜 받는다는 말이 식사 인사로 쓰이게 되었는지 혹시 알아?"

"글쎄, 만들어준 음식을 감사히 받겠다는 뜻 아닐까?"

"있잖아, 과거 일본 사람들은 어디에나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어. 산, 바다, 땅, 그리고 우리가 먹는 이 음식마저도 말이야. 그러니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식재료 안의 신을, 혹은 식재료들의 정기를 내 몸 안에 모신다고 생각했던 거지. 그래서 '받겠습니다(いただきます)'가 식사 인사가 된 거야.


그러니까 일본은 각자의 신을 각자의 몸 안에 모시는 곳이야.

세상 모든 것에는 신이 깃들어있다고 믿으면서, 아직도 그들은 일상 속에서 제각자의 신을 담고 사는 거야.

그래서 일본인들은 그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알 수 없는 불투명 잔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아마 그 점이 너를 힘들게 했을 것 같아.

그래도 나는 네가 이곳에서의 날들을 너무 아파하지는 않았으면 해.

매일매일 새로운 신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니, 그리고 그 신들로 매일 새롭게 나를 채울 수 있는 곳이라니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곳은 꽤 멋진 곳이지 않아?


나는 진심으로 네가 어디서든 정말 잘 지내기를 바랄게.

네가 다시 마음을 붙이는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기를, 나는 이 곳의 모든 신에게 기도하고 있을게."

 



한국에 돌아온 직후 나는 사흘쯤 죽은 듯이 잠을 잤고, 감기는 씻은 듯이 나았으며, 일본에서의 날들은 왠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곳에서의 모든 일들을 물에 젖은 도화지처럼 모호하게만 기억해내다가 오늘 우연히 いただきます라는 이름의 일식당을 발견하고 나는 그의 말을 떠올렸다. 그때 그들의 신은 나에게도 찾아왔었을까. 그 신은 나를 위해 견뎌주고 있었을까. 만약 그것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조금 덜 외로웠을까.


하지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그곳에서 나는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미칠듯한 외로움에 부서져 내리곤 하였고 그래서 나는 안다. 차가운 땅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낯선 곳의 신이 아니라 두고 온 이들의 안부인사라는 것을.


그러니 오늘 밤은 내가 낯선 곳의 신을 대신하여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테니,

세상 모든 낯선 곳에서 또 하루의 생을 견뎌내는 이들에게,


그대 안의 신에게 경배.

매거진의 이전글 헤어진 연인의 안부를 묻는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