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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콩 Feb 12. 2016

젓가락, 그리고 나의 식탁에 대하여

우리가 서로 너무 외롭지는 않기 위해서


스페인에 머물던 때의 이야기이다.


당시 나의 룸메이트는 스페인 사람이었지만 북아프리카 연안의 카나리아 제도에서 나고 자란, 나만큼이나 스페인 본토가 낯선 아이였다. 참으로 다양한 인종과 언어가 스쳐 지나가는 곳이 유럽이었으나, 유럽이 낯선 그 아이는 저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왔다는 내가 퍽이나 신기했나 보다. 자신은 동양인을 처음 만난다며 매일 이런저런 것들을 묻곤 했다. 특히 식사 시간이 되면 뭐가 그리 궁금한 것이 많은지 나는 매일 밥을 먹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그 아이의 질문에 답해주기 위해 식탁에 앉아 있어야 했다."너 콜라 마셔본 적 있어?", "너 빵이 뭔지 알아?", "너는 집에서 매일 초밥을 먹어?", "너 오븐이 어떤 것인지 알아?"와 같은 질문들에 답을 하고 있노라면 나는 이 아이가 카나리아에서 왔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은 다 이런 것인지 궁금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룸메이트는 어디선가 젓가락 하나를 구해와 나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중국 젓가락이네! 사실 이건 내가 사용하는 것과는 조금 달라. 그래도 젓가락질은 가르쳐 줄 수 있어." 내가 말했다. "응? 네가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걸? 이게 중국 젓가락인지 한국 젓가락인지 어떻게 알아?", "이렇게 길고 끝이 둥근 것은 중국 젓가락이야." 룸메이트는 나의 조리용 젓가락과 자신이 구해 온 중국 젓가락이 다르다는 사실을 결국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그것 외에도 그 아이에게는 궁금한 것이 많았기에 소재는 곧 전환되었다. "너희는 매일 젓가락을 써? 그러면 왜 포크와 나이프는 안 써?"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칫했다. 젓가락질을 거의 기예(技藝) 정도로 생각하는 이 아이에게 과연 무어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을까. 나는 서툰 스페인어로 대충 이렇게  말해주었다. "우리는 먹는 사람이 편하게 먹게 하기 위해 조리 과정에서부터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음식을 만들어. 그러다 보니 어떤 음식들은 크기가 작아지게 되고, 그걸 집기 위해서는 젓가락이 더 효율적이지. 그러다 보니 우리의 전통 식탁에는 절대 칼이 오를 일이 없어."




그리고 이 글은 그 날의 내 부족했던 답변에 대한 반성의 글이다. 사실 그 이전까지 나는 왜 우리는 젓가락을 사용하는 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던 적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나의 먼 조상들이 젓가락을 사용하게 된 이유야 수 만 가지가 있겠지만, 식탁 위에 오르는 그 사려 깊은 음식들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식사 도구가 굳이 젓가락일 이유는 없었을 터이다. 장조림의 고기는 결 대로 찢어져 한 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감자채 볶음 앞에서 우리는 머뭇거릴 필요 없이 나의 한 입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들은 태생적으로 '먹는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잘게 다져지고 썰린 음식들을 전달하는 것이 젓가락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가족을 떠나 한 층 외로워진 식탁에서도 나는 매일 아침 엄마가 들려 보낸 반찬 통에 담긴 '한 입 크기'의 음식들을 '젓가락'으로  집어먹으며 하루 더 찬 밖으로 나설 힘을 얻는다. 그러니까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방식인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이는 먹는 이의 평안함을 기원하고, 먹는 이는 음식을 만들어준 이의 노고에 감사한다. 안부를 묻는 두 주체가 모두 나 자신이라고 해도 명제는 성립한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혜정 식당의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 엄마가, 가끔 찾아가는 옛 친구가, 또 내가, 더 이상은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는 세상에서 너무 외롭지는 않도록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세상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통조림에서 그대로 꺼낸 스팸 덩어리처럼 느껴지지는 않도록.


구운 아스파라거스가 올라갔을지언정, 혼자 앉은 식탁에서만큼은 유독 젓가락을 찾게 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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