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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콩 Feb 03. 2021

4. 후회되는 소비가 있나요?

서로의 방식으로 사랑하기

S는 20대 후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박식한 사람이었다. 과학과 역사, 음식과 문화까지, 어쩌면 내가 가장 깊이 아는 분야만큼을 그는 두루두루 알고 있는 듯했다. 모두가 아는 상식적인 이야기들도 그의 입을 거치면 아귀가 잘 들어맞는 퍼즐처럼 새롭게 끼워 맞춰졌고, 나는 사람이 감동을 받을 때 온몸의 털이 곤두서기도 한다는 것을 그를 통해 처음 알았다.


어떻게 이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묻자 그는 "다 돈을 써 가면서 배운 것이지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돈을 조금 쓰더라도 이런 내공이 남는다면 그것은 돈을 제대로 쓴 것일 터, 나는 그런 그에게도 과연 실패한 소비가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기억에 남을 만큼 후회되는 소비가 있나요?
1. 상대가 소비에 부여하는 가치를 알 수 있다
2. 상대의 감정적 소비 성향을 알 수 있다
3. 상대가 과거를 바라보는 성향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이전 연인들에게 사준 선물들?"이라고 그가 운을 떼었을 때 나는 뻔한 스토리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많은 것을 선물했으나 결국 끝이 보였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들인 돈과 시간이 아깝다는 식의 이야기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말은 조금 달랐다.


"나의 선물들은 나의 연인들이 나에게서 떠나가게 했어요. 나는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법을 몰랐어요. 선물을 주는 것은 내가 나의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어요. 나의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세상을 다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순전히 나의 만족감을 위해 선물들을 안겨주곤 했어요. 그가 이것을 받았을 때의 느낌, 받고 나서 느끼는 감정 같은 것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어요.


아니, 어쩌면 나는 선물을 통해 상대의 애정을 간구했던 것일지도 몰라요. 나는 이렇게까지 너를 사랑해. 너도 부디 나를 더 사랑해줘. 비싼 선물들을 안겨주며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는 마음속으로 나의 소비와 그들의 애정 간의 대차대조표를 그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라요."


숨 막히게 완벽해 보였던 그의 인간적인 고백에 내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자 그가 덧붙였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우리를 옥죄는 것일 줄은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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