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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콩 Feb 04. 2021

6. 낯선 곳에서 밤을 지낸 적 있나요?

감옥에서의 사색

B는 작은 체구를 가진 사람이었다. 작은 키에 마른 몸을 가진 그녀는 크지 않은 배낭을 메고 있었지만 어쩐지 능숙한 여행자의 느낌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갑작스러운 연착에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걸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능숙한 여행자야말로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긴긴 연착의 밤을 보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이트 앞 자판기에서 물을 두 병 구입해 그녀에게 건네며 말을 걸었다. 그녀는 능숙한 여행자답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옆자리를 내게 내어주었다. 내가 연착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하자 B는 웃으며 자신은 이제 이런 일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이야기했다. 단, 애매한 시간대라 공항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것 같다는 점은 조금 아쉽지만요, B가 대답했다. 이제 연착 따위는 아무렇지 않아 진 그녀가 쌓아온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낯선 곳에서 밤을 지새 본 적 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를 듣고 싶어요

지난 여행의 경험을 듣고 싶어요

평소 여행지에서의 숙박 패턴을 알고 싶어요


그녀는 키득키득 웃으며 자신은 감옥에서 밤을 지내본 적 있다고 하였다.


어느 해 겨울, B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남유럽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파로부터 스페인 그라나다를 잇는 그녀만의 summer holiday(참고로 해당 도시들은 12월에도 최고 기온이 20°C 정도 되는 따뜻한 도시들이다) 계획했고, 스톡홀름을 경유하는 일정을 짰다고 한다. 즐거운 사람들, 좋은 날씨를 만난 행복한 여행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톡홀름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마드리드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그녀는 자신의 짐가방을 통째로 도둑맞았다. 통째로라 함은, 그녀의 신용 카드와, 스톡홀름에서의 겨울을 도와줄 옷과, 카메라까지 전부. 다행히 여권과 약간의 현금은 가지고 있었기에 B는 반팔에 샌들 차림으로 스톡홀름행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어떻게든 예약한 숙소까지만 가면 된다고 스톡홀름에 내려 공항을 떠났던 B는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유로는 스웨덴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고, 도움을 청해보려 했으나 한겨울 눈이 쌓인 스톡홀름에서는 누구도 반팔로 말을 거는 사람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휴대폰 배터리마저 나가 길을 찾을 수도 없게 되어 서러움에 울고 있던 B에게,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고는 어딘가로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그는 B를 호텔처럼 보이는 곳으로 데려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했고, 오늘 밤 여기서 편하게 묵으면 된다고 이야기하고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예요? 그제야 울음을 그친 B가 물었다. "몰랐니? 여기는 감옥이야. 우리는 교도관들이고. 하지만 언제든 나가고 싶다면 이 벨을 눌러. 우리가 바로 달려올게." 그녀의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에 오히려 교도관들이 더욱 당황해했다며, 하지만 B는 적어도 낯선 사람들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에 안심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감옥은 생각보다 안락했고, 그녀는 이 공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며 단잠에 들었다고 한다. 다음 날 교도관들은 직접 한국 대사관에 연락하여 B가 긴급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녀는 무사히 남은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아니 그러면 가방을 도둑맞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왜 항공편을 바꾸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내가 물었다.


"그때의 저는 스톡홀름에서 얼어 죽는 것보다 항공권 변경 비용 100유로가 더 무서웠던 스물두 살이었으니까요. 지금으로서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 덕분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무용담을 하나 얻었으니, 나쁘지 않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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