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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콩 Feb 06. 2021

9. 직업을 갖고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타인의 불행에서 자유로울 권리

W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누구에게나 친절했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선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런 W를 지켜는 것은 어쩐지 흑백 무성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일 것 같은데, 나는 그의 색채 혹은 소리를 느낄 길이 없는 것만 같은 느낌. 모임 장소에서 W와 굳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것은 그녀가 쉽게 선을 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고, 방향이 같다며 내가 그녀를 따라나선 것은 그녀의 유성영화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W는 대형 병원의 소아과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라고 했다. 올해로 5년 차라는 말에 내가 그렇다면 이제 조금 업무가 손에 익으셨겠네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간호사에게 그런 일은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간호업무는 연차가 쌓일수록 업무 강도도 쌓이는 일이라며. 다만 해당 연차에서도 흔한 기회는 아니지만 올해부터는 3교대가 아닌 9 to 6의 교육 업무를 맡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부디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간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특수한 업무의 특수한 라이프 패턴을 가진 삶은 남다를 것 같아 내가 물었다.


직업을 갖고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일반적인 하루를 알고 싶어요

간호사라는 직업의 특수성이 궁금해요

스트레스를 견디는 당신만의 팁이 궁금해요


"이제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지지 않아 졌다는 점이요.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인생이 궁금하지 않아요. 각자가 너무 힘든 이야기들만을 내놓으니까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지쳐요.


저는 여기서 일을 하며 불행한 사람들은 오히려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옆 침대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해서 간호사와 의사들이 달려들어 정신없이 처치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보호자들이 제 팔을 잡고 왜 우리 아이의 정기 검사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요. 그럴 때면 정말 짜증을 넘어 울분이 솟구쳐요. 나의 불행이 너무 커서, 그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지 못해요.


아무도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불행에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전해 듣는 불행도 포함돼요. 나는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듣고, 겪어야 해요. 아이들은 너무 예쁜데, 내가 하는 일은 하루 종일 아이들이 아파하는 일을 보는 것이에요. 그때부터는 그게 나의 불행이 되는 것이지요."


말을 하다 보니 슬프네요, 저도 한 때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도 말이에요,라고 W가 말했다. "하지만 감정은 소모품이니까요. 행복한 시간을 위해 아껴 쓰세요. 타인의 불행을 위해 굳이 당신의 감정을 사용하지는 않아도 되잖아요."라고 내가 말했고, W는 그 말이 맞다며 '감정은 소모품'이라는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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