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 Jul 11. 2022

우울증 일기 75. 감정


우울증은 극심한 우울감을 호소하는 병이다. 우울감 뿐만 아니라 각종 다양한 부정적 감정도 함께 몰려온다. 내가 우울증에 괴로워할 때는 이성이 아닌 감정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였다. 감정이 고장난 상태. 이것이 우울증이다. 


그렇다보니 '김정' 이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감정이 있다. 기쁨, 즐거움, 노여움, 슬픔 희로애락 4가지 감정 말고도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는 굉장히 많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신의 감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내가 "기분이 어때?"라고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좋아", "싫어" 두 가지 정도로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는 130개가 넘는다고한다. 우리가 이렇게 느끼는 감정은 다양하다. 


"계속해서 우울할 바엔 아예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감정, 차라리 없다면 아프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을텐데...하지만 부정적인 감정도 다 쓸모가 있다. 

인간의 정신이 인간 생존을 돕기 위한 것이다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감정도 인간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 기쁨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기 위해, 슬픔은 나에게 유해한 것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불안은 다가오는 위협에서 대비하기 위해서. 그렇게 각각의 감정들은 다 제 쓸모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기쁜  감정도 쓸모가 있고 슬픔, 우울한 감정도 쓸모가 있다. 


단지 '병'이 된 것은 이 감정이 과도하게 나타났을 때다. 슬퍼 해야할 일이 생겼을 때 슬픈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다지 어떤 일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슬프고 우울하고, 무기력한 것이 잘못된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라든가 당장 어떻게 밥먹고 살지 모르겠다면 불안한게 다행이다. 하지만 직장도 다니고 있고 미래에 대해 준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함이 올라온다면 그것은 병적인 불안이다. 치료하고 바로 잡아야할 현상인 것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보면, 기쁨이가 슬픔이를 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슬픔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을 때 감정의 주체는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하게 된다. 슬플 때 눈물을 흘리고 슬퍼해야한다. 그러면 주위에서 나의 슬픔을 알아차리고 적절한 도움을 줄 수가 있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 감정을 나 혹은 타인이 인식하고 알아차려야 끝내 사라진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은 내 기억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래서 늘 우리는 감정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 오늘 기분이 어때? 오늘 잘 지냈어? 이런식으로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스스로가 답할 것이다. 


오늘은 그저 그런 하루였어. 

-별 일이 없어서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하루였구나 

오늘은 재밌는 하루였어. 

-아 재미를 느낀거구나. 


긍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낄 때는 굳이 해주어도 되지 않는데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스스로 감정을 알아차리는게 중요하다. 혼자 살고 혼자 생활하는게 많아진 현대인들에게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거울을 보지 않은 이상 내표정이 어떤지, 내 기분이 어떤지, 내 행동이 어떤지 알아차려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직장에서 무감각하게 무표정한 얼굴로 키보드를 두들기다가 퇴근시간이 되어 퇴근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집에 가는 차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터덜터덜 집에 들어와 공허한 눈으로 유튜브를 보며 밥을 먹는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넌 참 힘들어보여"라고 말해줄 사람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말해줄 사람이 없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자. 스스로 자신의 기분을 들여다봐주면 되는거니까.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질문을 하자. 오늘 하루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저런 일들이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 그 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느꼈는지 말해보자. 처음에는 잘 생각나지 않을 수 있다. 잘 모르겠다. 그렇게 답할 수도 있다. 그렇다는 말은 그만큼 내가 나의 감정을 돌아보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는 말이다.  계속해서 하다보면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나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이 중요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나의 감정을 제대로 살펴보고 알아봐주는 것.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증 일기 74.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