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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막

첫 번째 벽

우울증 일기 출간 후의 삶?

by JINSOL



30대 중반의 나이로, 새롭게 들어간 회사. 그것도 예전 직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직군. 그곳에서 나는 비전공자에 신입이다.


전공자 출신에다가 관련 업무만 해왔던 그로서는 나의 이력은 참 특이하다 싶겠다.


그러니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뭐 하다가 34살이란 나이에 시작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 법했다.


그렇다. 나는 우울증 이후, 창작 일과는 별개로 생계를 책임져줄 새로운 직업을 찾고 있었다. 예전 회사에서의 의 내 모토는 물경력이 되거나 전문성이 없는 일일지언정, 작은 월급이라도 대충 받고, 남는 시간에 창작 일을 하자! 였다. 그 창작에서 대박이 터지면 이 바닥 뜬다라고 맨날 이를 갈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창작이 생계 수단이 됐을 때의 발생하는 여러 문제, 가장 크게는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수 없다는 점과 내가 사랑하는 일이 돈이라는 것으로 평가되기 시작하면, 한없이 그 가치가 떨어져 버리는 상황이 안타깝기 때문에 생계수단은 별개로 가지는 게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새롭게 공부하고 그 공부한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직장에 취업에 성공하게 됐다. 물론 이 자리도 늘 불안정하고 불확실해서 완벽한 취업 성공, 커리어의 전환이라는 멋들어진 말로 포장하기에는 나 스스로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뭐 어찌 됐든, 그렇게 난 2024년 봄부터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게 됐다.


그 회사를 오랫동안 다녔던 인물들은, 낯선 나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대학교 때 뭐 했는데? 동아리나 대외활동 같은 거는 했어?”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대학……. 이 사람이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짐작이 갔다. 이 사람은 '대학'의 네임밸류로 사람을 판단하던 시대의 인물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나에게는 신경 쓰지 않는 부분, 네임밸류에는 따위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깔고 있었던지라. 이 질문이 탐탁지 않았다. 뭐 질문 내용만 봤을 때는 대학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동아리 활동에 대한 것이긴 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학교 수업에 나가는 것부터가 도전이었던 나였기에, 동아리 활동 따위는 전혀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많이 한다. 그럼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 나는 '보통' 상태가 아닌, 뭔가 '비정상' 쪽에 가까운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이 사람에 한 해서는 말이다.


직장생활에서 굳이 굳이 내가 보통과는 다르다는 걸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 질문에 대충 둘러댈 말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어색하게 거짓말할 바에야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해버리자 싶었다.


“동아리 활동 안 했어요.”


물론 내 말에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할지는 뻔히 보였다.


“아, 그래? 아웃사이더였구먼!”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대학에도 아웃사이더들은 있다면서 말이다.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도 있긴 하는데) 맨 앞에서 자고 있는 애들도 있더라고.


“걔들은 도통 뭘 하는지 모르겠어.”


사실 딱히 내가 나온 대학교가 이름이 있다 할 수 없다. 그냥 지방대일 뿐이다. 그저 지금 저 사람의 비교 대상과 내 대학교를 비교해서 그렇다.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공부를 하려고 모인 학교에서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학점 관리에 신경 쓰지 않으며, 동아리 활동이나 서포터스 등의 대외 활동을 하지 않고 스펙도 쌓지 않는 학생’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감상을 내뱉기 위함이었다. 그 말은 단 한 단어 ‘아웃사이더’로 정의되었고, ‘너도 아웃사이더였구나.’라고 나를 확정 지어버렸다.


뭐, 아웃사이더가 맞긴 했다. 나는 고등학교 입시 준비에서부터 우울증 증세가 있었고 대학교 1학년 신입생 당시 정말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학교에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사람들을 기피하고 어울리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살아왔던 것이 ‘우울증과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지만. 그 사람은 속사정 따윈 고려하지 않고 그냥 매도해 버린다.


그래,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 숏츠도 1-2초 이상에서 재밌지 않으면 skip 해버리는 시대에, 무언가에 대한 어떤 빠른 판단은 본인의 삶에서 경제적인 행동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 눈에는 그게 “내 나이쯤 되니까 A는 딱 B더라”라고 빠르게 판단하는 건, 그냥 꼰대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경제적인 판단과 꼰대의 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지도, 인정받고 싶지도 않고 그저 모르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별 다른 감흥이 없으므로. 크게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이 ‘경제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 이야기’를 들고 온 이유는, 그것이 나를 비롯한 많은 우울증을 겪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 만나야 할 첫 번째 벽 혹은 공격이라는 점에서다.


특히나 이 공격은 나보다 윗세대에서 많이 들어온다. 현 대한민국에서 우울증이 청년들의 시사되는 문제 중 하나라서, 우울증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나와 비슷한 세대에서는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꼭 윗세대들이 ‘정신력’, ‘곱게 자라서-’ 등의 수식어를 쓰면서 판단하고 상처 주는 말을 한다.



아,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야? 그럼 그냥 안 보면 끝 아냐?


하지만 슬프게도, 경제생활을 하는데서 이 윗세대들이 돈과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


즉, 상사라는 점이다.


앞서 말한 ‘경제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그 사람 역시, 나의 상사에 가까운 사람이다.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 다시금 삶을 쌓아 올리려고 할 때, 경제적인 생산 활동은 필수불가결인데, 곳곳에 도사린 폭탄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버린다.


공부한 것을 가지고 이력서를 쓰고, 모의 면접을 했을 때 늘 첫 번째로 온 질문이 이것이었다.


'늦은 나이에 그동안 해왔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은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이죠?'

'대학교를 오래 다니셨네요. 졸업이 많이 늦으셨네요. 휴학을 하시면서 무엇을 하셨나요?'


취업을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질문, 당연시되는 질문, 날카로운 이 질문이 비집고 들어온다. 그럴 때면 아찔해진다.


더더욱 슬픈 점은 그것에 대해 사실대로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질문에 대고 '우울증을 앓았거든요.'라고 대답했을 때,


'오, 그러시군요? 우울증을 딛고 이렇게 일어서신 거군요. 그 점을 높이 삽니다. 가산점을 주겠어요. 당신을 채용하고 싶습니다.'라고 생각할 회사가 어디 있을까…….


결국 이런저런 말로 둘러댄 면접 질문, 그것을 간신히 통과하고 입사한 회사에서 내 상사가 내 대학시절에 대해서 물어올 때면 또다시 가슴이 철렁한다.


그 나이 되도록 스펙이나 경험이 왜 이렇냐라든지. 모아둔 돈이 없냐라든가.


이 말을 들으면, 정신이 살짝 멍해진다. 그것은 어느 정도 나도 그 말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 없이 학교 생활에 열심히 하고 스펙 쌓고 최선을 다했으면, 스스로도 떳떳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니깐, 그 사람들의 말에 스스로가 작아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초라해진 나밖에 남지 않고, 다시금 삶을 재건하겠다고 호기롭게 외친 내가 비참하게 느껴질 뿐이다. 과거의 나의 행동만 탓하고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렇게 하기로 했다.


귀 기울이지 마라. 그 사람의 말이 맞든 말든.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니까. 나는 등에 벽돌이고 열심히 집 짓고 있는데 옆에서 팔짱이나 끼고 ‘쯧쯧, 진작에 제대로 지었어야지.’나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다를 게 없다. 그 사람이 발 벗고 내 집을 다시 지어주는데 도와주러 오지도 않으니까.



그냥 난 ‘살쪘는데 네가 보태준 거 있냐? 밥이라도 사주고 말해라.’라는 태도를 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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