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운은 없지만, 사업은 합니다.
사업해도 될 사주인가요?
나는 종종 사주팔자를 보러 다닌다. 사주는 무언가 확신이 필요할 때 유용한 것 같다. 퇴사를 결심하면서는 더욱 열심히 사주를 보러 다녔다. 내가 사업할 운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사업해도 될 사주인가요?”였다. 퇴사 후에 놀 생각보다는 내 일을 할 생각이었다. 그 일이 내 생계를 책임져줄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사주팔자를 열심히 보고 다녔지만, 어느 누구도 나에게 ‘지금이 바로 그때야! 얼른 시작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깨달은 사실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게 정답이었다. 남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누가 감놔라 배놔라 하겠는가. 그건 아무도 확신을 가지지 못한 일이었다.
사업운이 없다면 직장운이라도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업운이 없다고 “그럼 직장운은 어떤가요?”라고 물어보면, 사주를 보는 사람마다 직장운을 다르게 이야기 해주었다. 임원 될 사주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그냥 버티는 게 최선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업보다 직장이 유리하다는 말도 들었다. 정말 그랬을까?
20년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직장운도 그다지 좋은 편은 되지 못했다. 승진은 늦었으며, 일은 언제나 힘들었고, 괜찮은 상사들은 회사를 빨리 떠나갔다. 대기업이었지만, 연봉도 낮은 축에 속했다. 대기업 인센티브가 뉴스에서 나올 때, 그건 모두 남의 이야기였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최대한 오래하고 싶었지만, 40대 중반이 넘어가자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곳이 직장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40대가 모두 그러하듯 수입은 한정적이었고, 써야 할 돈은 갈수록 늘어났다. 아이들은 어렸고, 나는 나이가 많았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직장에서 버티며 내 노후까지 챙길 생각을 하면 늘 아찔했다. 재테크도 중요했지만, 안정적인 수입도 중요했다. 게다가 나는 그냥 노는 것보다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 돈 되는 일. 이 3가지 조건이 맞는 일을 찾고 싶었다. 죽을 때까지 일하는 건 억울하지 않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 한번 해보지 못하고 죽는건 너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주를 보는 이유
사주를 보는 이유는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내 월급은 가족의 생계수단이었다. 혹시라도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내 아이들이 불행하게 될까봐 불안했다. 남편이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당시의 매출로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내가 가장인 이상 가족들을 담보로 사업이라는 모험을 할 만큼 무모하지 않았다.
퇴사 전 휴직을 먼저 했다. 휴직기간동안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어쨌든 내 일을 해서 먹고 살겠다고 결심했으니 시도해보기로 했다. 목표를 높게 잡지 않았다. 딱 먹고 살만큼의 생활비를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휴직기간동안 에세이 구독서비스도 해봤고, 글쓰기 강의도 해봤다. 테스트 한 결과 글을 써서 생활비는 어림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슬아작가는 구독서비스로 학자금 대출금을 갚을 수 있었다던데, 나는 생활비도 벌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다행히 남편 사업을 같이 하면서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했던가. 내 월급이 아니면 생활비 해결이 안 될 것 같던 두려움은 남편의 사업으로 안정감을 찾아갔다. 목표했던 금액이 생활비였던만큼, 생활비를 벌 수 있게 되자 나는 회사 밖에서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렇다면 남편은 사업할 운이 있었을까? 아쉽게도 그도 사업보다는 직장에 있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도 직장운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직장운이 좋다고 하면, 배울 사람이 있던가, 돈을 많이 주던가, 일이라도 쉬워야 하는데 그 어느 것도 해당하지 않았다. 내가 생계를 책임지는 동안 그는 사업을 했고, 여러 번 힘들었고, 겨우 자리를 잡았다.
그가 그동안 했던 사업은 게임개발, 출판사, 가구조립 판매 등이었다. 다행히 투자금은 크게 들지 않는 사업이었는데, 문제는 기회비용이었다. 그 사업들을 하는 동안 월급은 없었고, 시간은 흘렀다. 몇 개의 사업을 거치는 동안 남편은 40대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사업에 실패한 40대가 다시 취업하는 건 청년취업보다 힘들었다. 사업운이 없어도 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건강한 신체를 가진 성인이 아무것도 안하고 놀 수는 없지 않는가.
대부분 직장의 공식적인 은퇴나이는 60세다. 그것도 운이 좋았을 때의 이야기다. 100세 시대를 감안한다면 직장에서 나와 죽을 때까지 수십 년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야한다. 나는 제품을 팔던, 서비스를 팔던, 결국은 사업운이 없어도 누구나 자기 일을 해야 할 시기가 온다고 생각한다.
사업의 영역에는 서비스업, 자영업, 임대업 모두 포함된다. 글을 쓰면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출간하면 책을 팔아야 하고, 강의하면 강의를 팔아야 한다. 임대사업도 부동산 시장에 매물을 내놓아야 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동안 거래를 안 하고 살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월급도 내 노동과 시간에 대한 댓가 아니던가.
아무것도 안 하고 모아놓은 돈으로 놀기만 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파이어족이니 조기은퇴라는 말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유튜브를 하거나 책을 출간하거나, 강의를 팔고 있었다. 전업주부로 육아에 전념하던 사람들도 아이가 크면 무언가 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무언가 만들어 팔고, 돈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자기 사업이다.
사업할 사주는 아니지만 사업은 합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사업운이 없다고 해도 사업을 하고 있다. 매년 신년 사주도 본다. 운명을 거스르거나 운명을 개척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을 듣고 조심하고 겸손하려고 한다. 내가 주어진 운명 안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보면 먹고 살 정도는 되지 않을까. 물론 사업할 사주였다면, 사업이 훨씬 수월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 나에게 없는 운명을 탓하느니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는 수밖에.
사업운이라는 게 없었으니, 아주 작은 성공조차 나의 운이 아니라 주변의 도움과 고객들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잠시 성공을 누릴 뿐, 온전한 내 노력으로 이룬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스스로 많이 겸손해졌고,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초반에 고객 C/S를 내가 담당했는데, 쇼핑몰에 리뷰를 달아주는 고객들에게 일일이 답글을 달면서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고객이 제품을 사주는 덕분에 아이들 먹거리도 살 수 있고, 교육도 시킬 수 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손재주 없는 사람이 스스로 설치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구매 후 척척 설치해서 리뷰를 달아주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나는 지금도 제품을 열심히 팔아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리고, 실패는 언제든 다시 우리를 찾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한다면, 사업할 운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좋은 제품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결과는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 그래서 올해 신년사주를 보았느냐고? 물론이다. 내용을 상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나는 매일 공부하고 노력하고, 기도할 것이다. 이건 운이 좋건 나쁘건 누구나 해야 하는 일 아닐까. 사주팔자에 상관없이 말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