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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우보이 Mar 01. 2019

사업하지 않기

문제와 불편함에서 시작하기

프로그래밍 부트캠프에서 주니어 개발자를 양성하고 있다. 대부분의 졸업자 분들은 개발자로 취업을 하게 되지만, 소수의 몇몇 분들은 창업의 꿈을 앉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시기도 한다.


창업자,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의 패기와 소신, 그리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듣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나 또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소심하게나마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행에 옮겼고, 대부분 실패했지만 소기의 성과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실패를 통한 배움들이었다. 재밌는 것은 경험을 통한 배움도 있었지만, 경험의 과정 속에서 독서, 강의, 블로그, 선배 창업자의 인터뷰 및 대화를 통해 배운 간접적인 경험이 나의 직접적인 경험들을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고, 지금도 꾸준히 배우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나도 매일, 매주, 매 달 새롭게 깨닫고 성장하고 있다. 지금 파트너와 함께 풀타임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시간을 되돌려 혼자 내 작은 사업을 다시 하라고 한다면 다음의 몇 가지는 반드시 지키고 싶다.


1.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기 마련인데, 다시 시작한다면 나는 문제에서 시작하고 싶다. 사실 그 당시에도 이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문제를 나 스스로의 문제에서 시작했다는 면에서 결국, 나만의 아이디어였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불편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어설펐다. 나의 불편함을 가지고 당신들도 불편하지 않느냐고 설득까지 하던 나 자신을 돌아보면 너무나도 창피하다. 고객들은 그들의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몰라서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스케일을 생각하지 않고, 작은 고객의 요청에 귀 기울일 것 같다. 당장에 바로 다시 사업을 하라고 한다면, 결제 페이지를 만들기 어려워하는 작은 스타트업에 접근해서 그들의 불편함에 귀 기울이고, 바로 그들의 요구사항에 맞추어 적당한 가격에 외주 개발 형식으로라도 결제 페이지와 결제 관리자 페이지를 만들어 드릴테다. 그리고 또 다른 업체의 불편함을 듣고,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이전에 썼던 코드에서의 재활용성을 살펴볼 것 같다. 이렇게 여러 비슷한 도메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다 보면, 고객들의 실제 니즈를 파악하게 될 테고, 어느 부분은 돈을 낼 만한 문제이며 어느 부분은 불편하더라도 굳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것 인지 파악이 가능하지 않겠나.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나의 아이디어를 우겨 넣어서 될 만한 일이 아니다.


2. 좋은 동료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지금 회사에서 나는 운 좋게도 정말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런데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모든 것들이 추상적이고 희망에 근거하여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동료를 모으기가 쉽지 않다. 회사는 사람이고 사람은 회사다. 팀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 사업의 결과가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디어가 좋고 나쁘고는 팀이 좋으냐의 문제에 비교하면 코딱지만큼도 못 하다. 팀이 좋으면 아이디어가 나빠도 사업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내가 엄청난 괴물이거나 팀이 좋지 않으면, 좋은 아이디어로 남을 확률이 크다. 좋은 동료는, 어설픈 비전에 대한 공감이나, 허언이나, 좋은 장비로 꼬셔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좋은 동료는 내가 한 분야에 미친놈인 것을 확인할 때 팀에 조인하거나, 아니면 그 동료가 미친놈이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는 것 같다. 다소 격한 표현일 수 있으나, 이 미친 이라는 단어 외에 딱히 더 적당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3. 약간 미쳐본다

나는 개발을 배우고 적용하는데 현재 약간 미쳐 있다. 화장실에서, 샤워 직전에, 출퇴근길 지하철 버스에서, 걸어가면서, 쉬는 시간에, 업무 시간에, 자기 직전에 웹 개발에 대한 학습, 강좌, 소개, 새로운 기술들, 다른 회사는 어떻게 쓰고 있는지, 개발 문화, 인프라 등을 읽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한다. 유튜브에서 같은 내용을 다른 강사들은 어떻게 소개하고 가르치는지 좀비처럼 모두 보고 듣고 수집한다. 특정 기술이나 특정 프로세스를 더 잘 설명하는 그림이 어디에 있는지 마구마구 찾아보다가 없으면 직접 그리기도 한다.


난 지금 하는 이 일이 즐겁다. 특별히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 좋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 좋은 개발팀 리더가 되기 위해 하는 것 같진 않다. 즐겁고 유익하기 때문에 계속 누가 압박하지 않아도 하게 된다. 미디엄 블로그에서 좋은 기술 내용에 대해 잘 풀어쓰는 글을 읽을 때면 정말이지 닭살이 날 정도로 떨리고 행복할 때가 있다. 유튜브에서 기술 콘퍼런스나 기술 내용 토론을 시청할 때면 나도 그 자리에서 그 강연자와 함께 순간을 공유하는 느낌이 든다. 현재 우리 개발팀에서 기술적 난해한 문제를 만날 때마다, 너무 고통스럽고 속상하지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생긴다는 점에서 두근거린다. 이 정도면 아주는 아니더라도 약간은 개발에 미쳐있는 것 같다. 좋아하면 잘하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무척이나 좋으므로 계속할 뿐이다.


4. 돈을 받으며 일을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큼지막한 서비스들은 freemium인 경우가 많다. 일단 무료로 어느 정도까지 사용을 할 수 있지만, 특정 기간을 넘어서거나 특정 기능 사용을 원할 시, 결제를 요구한다. 하지만, 내가 다시 사업을 시작한다면, 나는 처음부터 돈을 받겠다. 내가 먼저 기획해서 열심히 만들어서 팔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을 테다. SaaS 사업가들이 모두 조언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매력적인 랜딩페이지부터 만들 테다. 그래서 얼마나 유저들이 클릭하는지를 먼저 볼 테다. 이메일을 수집하고,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클릭을 통해 리드 수집을 하고 결제 유도를 해서 정말 돈을 내는지 확인하고 개발을 해 볼 테다. 개발을 하더라도, 무료 서비스는 하지 않을 테다. 적정한 비용을 지불할 정도의 문제인지 아닌지는, 유료로 결제하는가로 테스팅을 해 볼 테다. 고객이 주문하기를 눌렀을 때 아무런 제품이 준비되지 않아 "이 서비스는 준비 중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띄우게 되더라도 확인되지 않은 부분은 불필요하게 개발하지 않을 테다.


5. 질질 끌지 않는다

아직 준비가 되고 안 되고를 내가 판단하지 않을 테다. 아무리 어설프고 미숙해도 일단 이 세상에 공개하고 피드백을 받을 테다. 이전엔 나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해서 계속 두 달, 세 달 서비스 배포를 미룬 경험이 있다. 그러다가 결국 절대 배포하지 못한다. 일단 배포하고, 피드백받고, 빨리 고치는 연습을 한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비난받고 멘탈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계속 비난을 받고 조롱을 받더라도 차라리 빨리 개선되는 것이 낫다. 아무런 유저의 피드백 없이 장기간 개발되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시점에 출시가 되도록 하지 않는다.


6. 도움을 청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청한다. 오프라인, 지인을 통해서, 온라인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내게 역시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적극 돕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물론 당연히 고마움을 표시하고 잊지 않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혼자서 썩히지 않는다. 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오픈하고 공유해서 관심 있어할 만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팀 빌딩이 더 잘 될 수도 있다. 여러분들의 선배 창업가들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도움을 주는 것에 굉장히 관대하다. 도움을 받고 절대 잊지 말고, 빚을 갚거나, 내게 새로 도움을 요청하는 후배들을 돕는다.


연쇄 창업가들이 더 다음 사업을 잘하는 이유가 있다. 정말 아무리 이상한 헛발질이더라도 계속하면 배우는 게 있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계속 시도해 보고, 시도해 보고, 시도해 보는 것이다. 누가 지나치다고 할 정도면 잘 가고 있는 것 같다. 너무 주변의 조언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또한 적절한 피드백과 코칭에는 필요에 의해 귀 기울인다.


유저가 사랑하는 서비스를 만든다

사업을 하지 않는다. 사업가가 되지 않는다. 사업이라는 말 조차 사실 꺼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창업이란 말도 쓰지 말자. 스타트업이란 단어 역시 별로다. 그냥 나는 유저가 미치도록 사랑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 좋겠다. 그런 팀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서비스, 제품을 잘 만들고 유지하고 또 개선하는 것이 팀의 목표가 되게 한다. 거기에 반드시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 야근을 하는 것이 치열함의 표시는 아니다. 정시에 퇴근하더라도 그 치열함이 업무 시간에 치열하게 표현되면 좋겠다. 밥 먹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잠 잘 때도, 어떻게 하면 우리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을까 고민과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사업화할 수 있는 기회가 필연적으로 오게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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