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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우보이 Jul 30. 2016

원래 그런 건 없다

아무도 이유를 모르지만 그냥 해오는 일들

자동차 SW회사 영업팀에서 일하고 있다. 2년 차. SW 공급자 입장에서 고객과 일하다 보면, 답답한 경우를 많이 본다. 우리 제품의 경우, 현업 개발팀에서 견적요청을 하고, 우리는 최대한 상세히 요구사항을 파악 후, 프로젝트 성격에 맞는 견적서를 제공한다. 견적서가 제공되고 나면, 한참 후에 구매팀에서 연락이 온다. 


"XXXX 최종 견적서 제공 바랍니다"

"? 어떤 견적서를 말씀하시죠? 견적 번호를 말씀해 주세요."

"아... 그 XXXX 있잖아요. 모르시나요? 진행 중인 것으로 아는데.."

"그렇게 제목만 말씀하시면 조회하기가 어렵고 저희가 제공드린 견적 번호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 견적 번호가 어디 있죠?.. 아 네 이건가요? xxxxxxxx"

"네 맞습니다."

"네, 최종 견적서를 그럼 메일로 보내주세요."


"품의를 통해 현업팀에서 전달받으신 견적서가 최종 견적서입니다. 필요하시다면 다시 보내드릴게요."

"그게 아니라 네고 가격 반영해서 보내주세요."


"아쉽지만 가격 조절은 어렵겠습니다. 저희가 가격 조절을 드려야 하는 사유가 있는지요?"

"원래 가격 네고가 적용이 되면 진행이 어렵습니다. 적용해 주시죠. 15% 적용이 가능한가요?"


... 뭐 이런 식이다. 도대체 구매팀이라는 곳이 얼마나 바쁘길래 전달받은 견적서의 견적 번호도 모른 채, 견적서의 가격을 밑도 끝도 없이 네고를 요청하시기 일쑤다. 네고를 요청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구매자의 입장에서 가격 협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격 조절을 요청한다면, 합리적인 사유를 제시하거나, 아니면 협상의 조건을 내미는 것이 먼저다. 밑도 끝도 없이 가격을 깎아야만 윗선에서 진행이 가능하다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바꿀 수 없다면, 공급자는 사전에 네고 가격이 적용되어도 원래 가격이 되는 '가격 부풀리기'를 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 것인가? 그리고 원래 가격이 네고되지 않으면 진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조직의 실적 판단 기준이 얼마나 단순하고 어처구니없으며 얼마나 게으른지에 대한 자기 망신이다. 


또는 이런 질문도 받는다. 


"공급되는 SW 가격이 합당한 지 저희는 모르겠습니다. 이 가격이 산정된 자세한 레퍼런스와 타 공급사와의 가격 비교 및 제품에 대한 장점을 보내주세요"


이것은, 구매자의 할 일이다. 물론 종종 제품을 새로 공급하기 시작하는 진입 회사의 경우 자신들의 제품을 타사 제품의 가격 및 성능을 비교해서 구매자에게 제시하곤 한다. 하지만 Apple에서 아이폰을 파는데 자신들의 제품의 가격과 성능을 타사 제품과 비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Apple에 전화해서 "왜 내가 아이폰을 사야 하는지 삼성 갤럭시 및 다른 휴대폰과 비교자료 좀 보내주세요. "라고 한다면 어떨까? 구매자는, 자신이 구매하는 제품이 알맞은 제품인지, 합당한 가격인지 자신들의 노력으로 그 자료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장담컨데, 구매팀의 job description 에는 분명히 그 자료가 있을 것이다. job description 은 그 포지션에서의 기대되는 직무에 대한 내용이지, 갑질을 해서 공급자에게 그 완성품을 내노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편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일 능력을 개선시키기는커녕 "게으른 요청자"로의 지름길이다. 


즉, 이것은 구매자의 오랜 "갑"의 습관이다. 일반적으로 공급 입찰이 있는 경우, 타사 제품과의 bidding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이런 구매자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줄 때가 있다. 이런 것들이 요청자를 게으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만나는 공급자에게도 같은 무리한 standard를 적용하면서,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아니 왜 그러지?'라는 의문이 들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이 진행되는 프로세스에는 '이유'가 있다. 원래 자신이 해 오던 패턴에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굳이 해야 한다면,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원인은 100% 그 팀의 분위기와 바쁜 업무라고 예상이 되며 참으로 마음이 좋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들의 만행이 전쟁 종료 후, 전범재판에서 '유죄'를 받아왔다. 행동의 핑계가 '환경'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고객 분들은 합리적인 요청과 이유를 제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예외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므로 혹시라도 구매팀 직무에 열심인 분들께는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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