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란 참 신기하다. 쭉 볼 것만 같던 사람도 졸업하면 남이 되어 버리고, 아주 우연히 만난 사람이 나와 잘 맞기도 하니. 또, 오랜만에 봐도 아무렇지 않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만에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20대인 내가 지금까지 겪어 온 인간관계는 어떠한 말이나 공식으로 딱 정의할 수 없는 관계이다.
이렇게 정의조차도 안 되는 인간관계는, 그 알쏭달쏭함에 걸맞게 예고 없이 끊어지거나 만들어지곤 한다. 특히나 요즘같이 디지털과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이 겹친 세상에선 '인간관계'라는 단어에서 '인간'만 쏙 빼놓은 것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손절'이라는 말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행어이다.
요즘은 다른 사람을 ‘손절’하는 행위가 아주 쉬운 시대다. ‘손절’은 내 세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유행어인데, 관계를 끊는다는 말이다. SNS가 일상인 세대에게 다른 사람을 손절하는 것은 아주 쉽다. 그냥 카톡을 차단하던지, 전화를 받지 않던지, 계정을 블락하던지 하면 된다. 더욱이 지금은 코로나도 겹쳐서, 어차피 못 만나는데 그냥 답장을 안 하면 된다는 인식이 이 ‘손절‘이라는 행위를 더 기계적이고 쉽게 만들었다.
관계를 끊어버린다는 게 누군가에겐 참 잔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절실한 사람도 존재한다. 나 같은 경우엔 졸업을 하는 동시에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던 동기와 연락을 끊으면서 자연스럽게 ‘손절’ 할 수 있었다. 그 애랑 다시는 안 보고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평화로워졌는지 모른다. 사실, 이런 것 말고도 나 스스로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차단하지는 않았지만 인간관계가 좁아진 경우도 있다. 대학교에 다닐 땐 과 동기들과 그렇게 재미있게 놀았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지금도 활발히 연락하거나 정기적으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내 인간관계는 좁아지기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은 꼭 어떤 사람들과 지금까지 이어온 것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관계는 얼마든지 깨지기도 하지만, 또 얼마든지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오늘 같은 경우가 그렇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동갑에, 비슷한 동네에 사는 데다가, 해외 가수의 내한 콘서트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봤었다는 소름 돋는 공통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처음 만났는데도 대화하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심지어 계획 짜는데 한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다 하고 남은 시간 동안 무의식적으로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공유했다. 마지막엔 우리 더 나이 먹기 전에 얼른 합격하자는, 좀 웃픈(웃기고도 슬픈) 다짐도 잊지 않았다. 다음 주에 만나면 꼭 말을 놓자는 약속과 함께. 함께 스터디를 할 목적으로 만난 거지만, 참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이게 바로 우연이 인연으로 이어진다는 걸까?
그래서 결심했다. 앞으로 내 인간관계가 좁아진다는 걱정에 전전긍긍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 내가 살아가야 할 날은 매우 길고, 그동안 만날 사람도 무수할 것이다. 오늘처럼 우연히 만난 사람이 아주 잘 맞기도 하고, 오래 알던 사이라도 어쩌다가 단호하게 끊어질 수도 있다. 끊어진다고 해서 내가 뭘 어떡하겠는가. 한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또 이렇게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겠지. 아직 나는 관계를 정의하지 못하고, 나이를 먹는다 해도 여전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니 주말에 만날 내 친구들과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해야지. 다음 주에 얼굴을 마주할 그 아이와도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