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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중과 상연

소소한 일상

by 향기나

어제는 한밤중까지 은중과 상연이란 두 여자에게 빠져있었다.

여행 같이 갔던 친구가 추천해 준 넷플릭스 드라마 때문이다.

7회까지는 홀려서 보다가 점점 늘어지는 상연 오빠 죽음에 대한 복선이 지루해 잠이나 자는 게 낫다 싶어 완주는 못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어서 알게 된 은중과 상연이라는 두 여자의 우정이 때론 동경으로 치닫다가, 질투가 과해지면 애증으로 변해가는 사람 관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두 여자의 대조되는 가정환경과 서로 간의 라이벌 의식은 어려서부터 복잡하고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 다시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얽히게 되면서 서로의 우정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내가 어제 본 것은 여기까지였다.




남자의 승부 세계도 그러하겠지만 살고 보니 여자들의 친구관계는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끼리끼리가 오래간다. 주변사람들을 보아도, 영화나 책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많다.


관계가 깨지기 쉬운 사람들은 너무 예뻐서, 너무 공부를 잘해서, 너무 공부를 못해서, 너무 잘 살아서, 너무 특이해서, 너무 잘난 척해서 등등 이런 요소들은 집단에서 내몰리기 쉬운 조건들이다.


여고시절 죽고 못 살던 친구들도 대학 관문을 통과하면서 대학 못 간 친구들은 떨어져 나간다. 직장을 잡게 되면서부터는 직장 없는 백수들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나오질 않아 그룹에서 이탈된다. 결혼을 하면 돈 많고 잘 나가는 남자와 결혼을 한 사람이 다른 부류로 옮겨가고 미혼자들은 슬금슬금 안 나오기 시작한다.

아이가 커서 대학을 갈 무렵이 되면 좋은 대학을 못 보낸 엄마는 기죽기 싫다며 모임에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결혼해서 빈둥지에 남았을 나이가 되면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 사람은 모습을 감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장애물을 통과하고 오래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내 생각에 그건 둘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잘난 사람이나 가진 자가 관계를 이탈하지 않는 경우는 '겸손'이라는 품위를 가진 경우였다. 반대로 못나 보이는 사람이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친구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경우는 단단한 '자존감'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제 한때의 시절인연은 기억 속에서 남겨지고 수많은 겸손과 자존감의 허들을 넘은 몇 안 되는 까리끼리 늦게까지 만나게 된다.


너무 바빠져서, 사는 곳이 멀어져서인지 나도 많은 시절 친구들이 기억 속에서 멀어지고 있다. 멀어질 때마다 자석처럼 끌어당겨 관계를 유지해야 함에도 그 끈을 놓아버린 적이 많다.


눈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마음에서도 멀어지니 이젠 자주 얼굴 대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간다. 여행하는 사람끼리, 그림 그리는 사람끼리, 글 쓰는 사람끼리 비슷한 취미로 묶여 웃음과 대화를 나눈다.


은중과 상연의 불투명한 거리감을 보며 끼리끼리 긍정적인 사람들과의 욕심 없는 관계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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