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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Jun 06. 2024

형이상학 제1권 1장 p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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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 제1권 1장 p31~36

*작성날짜/2024/03/16     





*문장이 긴 문장은 단문장으로 만들어서 옮겼다.



       그 이유는 이렇다. 예컨대 어떤 병을 앓는 ‘칼리아스’에게 이러저런 치료가 통했고,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개인들의 경우에도 통했다는 관념을 갖는 것은 ‘경험’에 속하는 일이다. 그에 반해 종種에 따라 하나로 구별되는 체질을 가진 모든 사람이 이 질병을 앓고 있을 때, 이 치료가 통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기술’에 속하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행동과 관련해서 보면, 경험은 기술과 아무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유경험자들’이, ‘경험 없이 이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왜 그렇게 보이는 걸까? 그 이유는 이렇다. ‘경험’은 개별적인 것에 대한 앎이고 ‘기술’은 보편적인 것에 대한 앎이다. 그러므로 모든 행동과 생성은 ‘개별적인 것’과 관계하기 때문에,  ‘유경험자들’이 더 능숙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러하다. 의사는 칼리아스나 소크라테스처럼 개별적인 이름으로 불리는 개개인을 치료한다. 그런데 의사가 치료하는 개개인은 모두 ‘사람임’에 속한다. 예컨대 의사는 소크라테스 또는 그렇게 불리는 것들 가운데 어떤 사람, 즉 ‘사람임’에 속하는 것을 치료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사는 ‘사람임’을 공통 소유하고 있는 하나의 본질적인 분류로서의 ‘~임’을 치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람 종種을 유지하고 있는 ‘어떤 상태를 치료한 것’이므로, 의사의 치료는 ‘보편적인 기술’에 속한다.      


그래서 만일 어떤 의사가 ‘경험 없이’ 이론만 가지고 있다면, 그는 보편적인 것은 알지만 그에 속하는 ‘개별적인 것’은 알지 못해서, 치료할 때 자주 잘못을 범하게 된다. 왜냐하면 치료받아야 할 대상은 ‘개별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경험자가 기술자 보다 더 지혜로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학문적인 앎’과 ‘전문적인 앎’이 ‘경험’보다 ‘기술’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술자들이 유경험자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지혜는 어떤 경우에도 ‘학문적인 앎’을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술자들은 ‘원인’을 알지만, 유경험자들은 그렇지 않다. 기술자들은 이유와 원인을 알지만, 유경험자들은 사실은 알지만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독자들은 일꾼들에 비해 각각의 일에 대해서 더 권위가 있고, 더 많이 알고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이유는 감독자들이 행해지는 일들의 원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을 안다는 것은 시작과 결과의 한 사이클을 안다는 것이고, 원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일을 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감독자들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되는 것은, 행동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론’을 가지고 ‘원인들’을 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를 가리는 징표는,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의 유무’에 있다. 기술자들은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유경험자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경험보다 기술을 더 높은 수준의 인식으로 여긴다.   

   

더욱이 우리는 다양한 감각 가운데 어떤 것도 지혜로 여기지 않는다. 반면에 분명 그것들은 ‘개별자들’에 대해서는 가장 주도적인 지식들이다. 그런데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것이 왜 그런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이 알려주는 것은 예컨대 불이 뜨거운 이유가 아니라, 불이 뜨겁다는 사실뿐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감각의 종류를 불문하고, ‘공통감각들koinas aisthēseis/코이나스 아이스테세이스’을 넘어선 ‘어떤 기술’을 ‘맨 처음 발명한 사람’은, 발명된 기술들 가운데 어떤 것이 유용하다는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그가 지혜롭고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는 이유에서도 당연히 사람들의 놀라움의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더 많은 기술’이 발명되었다. 그 가운데 어떤 것들은 필요 때문에 발명 되었고, 어떤 것들은 ‘여유 있는 삶’을 위해 발명되었다. 우리는 언제나 뒤의 기술들을 발명한 사람들이 앞의 기술들을 발명한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진 인식들은 ‘유용한 쓰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종류의 모든 발명이 구비되고 난 뒤에야, 즐거움이나 필요,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학문들’이 발견되었으니, 이 일은 사람들이 ‘여가’를 누렸던 여러 곳에서 최초로 일어났다. 그래서 이집트 지역에서 ‘수학적 가술들’이 맨 처음 출현했으니, 그곳에서는 ‘제사장 족속’이 ‘삶의 여가’를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기술’이나 ‘학문적 인식’을 비롯해서 그와 같은 부류의 다른 것들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윤리학’저술에서 이미 논의한 바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기술이나 학문적 인식과 마찬가지로 ‘사유의 탁월성’으로 분류(aretē dianoētikē/아레떼 디아노에티케/라)되는 것들에는, 실천적 지혜(phronēsis/프르네시스), 지혜(sophia/소피아), 지성(nous/누스) 등이 있다. 지금 우리 설명의 지향점은 다음과 같다. ‘지혜’라고 불리는 것은 첫째 원인들과 원리들에 관한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한다.   *형이상학 본문의 문장들과 그에 표기된 주석을 하나의 글로 통합하여 묶었다.


유경험자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보다 지혜롭고, 기술자는 유경험자들보다 더 지혜롭다. 그런 이유에서 일꾼들보다 감독자들이 더 지혜롭다. 이론적인 학문들이 제작적인 것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다. 그러므로 ‘지혜’는 어떤 원리들과 원인들에 관한 ‘학문적 인식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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