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에서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손석희 이후로 손석희 만한 앵커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다 극우정당이 집권하면 공영방송을 장악하여 억압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 파시즘 체제에 저항하는 앵커나 기자는 그곳을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정당으로 가거나 외곽에서 저항하는 형태로 어쩔 수 없이 포지션을 정해야만 한다. 이런 환경에선 방송이나 언론의 중간 허리가 끊기게 된다. 연결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성장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갇히게 된다.
손석희 앵커 이후로 손석희 만한 존재감을 가진 앵커가 성장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언론지형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나는 이렇게 말했다.
"손석희는 jtbc로 결국 피신했던 거네"
외견상으로는 jtbc의 뉴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본다면 mbc 뉴스에 극우정권 압력이 들어오자 튕겨져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 그리고 선택이 jtbc로 피신하게 된 것이라고 보인다.
물론 이것은 나의 뇌피셜이긴 하다. mbc에 복귀한 손석희 앵커를 보며 문득 든 생각이다.
극우정권이 집권하면 이렇게 곳곳에서 그 안에서 성장해야 할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게 된다. 결국 누구 손해일까? 그 당사자들의 인생에도 타격이지만, 결국 그 손해는 국민들이 감당하게 된다.
제대로 된 연결점이 되어 줄 사람 하나 성장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 곳들이 있다. 아마도 가장 비근한 예가 검찰일 것이다. 끊어져야 할 곳은 끊어지지 않고 연결점들이 이어져야 할 곳들은 항상 뚝뚝 끊어졌다.
언론은 강한 고리 같지만, 실은 가장 약한 고리인 듯하다. 약한 고리는 보호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언론지형에서 꽃이 피어나도록 해야 한다. 손석희 앵커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꽃처럼 보여서요.
#손석희의_질문들 #우원식국회의장과의대화 #우리시대의_질문들과_마주하는_시간 #앞으로_우리는_어떤_질문들을_자기자신과_그리고_사회에_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