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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 Mar 06. 2021

나는 술을 못 마시지만

너와 함께 마시는 술은 취해도 좋아

나에게는 성장통과 같았던 밸런타인데이를 계기로 그와 나는 더 가까워졌다.

그는 전보다 더 다정했고, 나도 전보다 더 나의 감정에 솔직하게 대했다.


그와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 거의 같았기에 우리는 일주일에 5번을 만났다.

그렇게 밸런타인데이가 지난 일주일.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의 생일 2월 22일.



생일 당일 날은 가족들과 저녁을 먹을 예정이니, 당일엔 만날 수 없지만 서로의 쉬는 날을 맞춰보자고 했다.


그렇게  둘이서 아르바이트 쉬는 날을 정해서 제출했다.

어차피 아르바이트를 하던 난바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게 될 확률은 높았고 그로 인해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유니클로가 아닌 밖에서 둘이서 시간을 맞춰 주말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기뻤다.


"네 생일이니까 뭐가 좋을지 얘기해주면 내가 예약할게."

라던 나의 말에 너는 다름이가 좋아하는 게 나는 좋아라고 말했지.


고민을 하다 술을 마시는 걸 즐기는 그를 위해 처음에 이자까야를 갈까 고민을 하던 나에게

다름이는 술을 못 마시잖아, 다름이가 좋아하는 매운 나베를 먹으러 갈래?

라며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배려해주던 그를 내가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그렇게 매운 나베를 먹으러 가기로 했지만, 예약이 꽉 차 버려서 결국 우리는 이자까야를 가게 되었다.


술을 못 마시지만, 그와 마시는 술은 취해도 좋았다.


처음에 그의 추천으로 레몬 사와를 주문했는데,

신 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내가 마시기 힘들어하니 그가 웃으며 조금 더 달콤한 복숭아 사와를 주문해줬다.


술 한 잔에도 얼굴이 빨개진 나를 보고 그는 한참을 웃었다.

취기가 오른 그는 평소보다 조금 더 편해 보였고, 평소보다 조금 더 장난스러웠다.


그의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나에게 음식을 먹여준다거나, 빤히 내 얼굴을 본다거나 하는 장난을 해왔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짓궂은 장난은 내 역할이었는데, 스물일곱의 나는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속수무책이 되어버리는, 사랑에 있어선 늘 약자였다.


그렇게 그와 세 시간 가까이 술을 마시고 어느새 제법 취했던 그와 내가 술이 깼을 무렵,

"이제 집에 갈 시간이야." 라던 그의 말에 꿈같았던 순간이 현실로 돌아왔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몰래 계산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점원 분이 늦게 처리를 하셔서 그가 어느새 돌아왔고 전부 들켜버리고 말았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내가 멋있게 다 계산하려고 했는데."

라니 그가 네 마음만으로도 좋아, 고마워 라며 그가 지갑을 꺼내 계산을 했다.


그와 함께 역으로 향하며 걷는 길.

술을 마시면 추위를 타는 내가 계속 추워하니, 그는 나와의 거리를 좁혀왔다.


계속 너와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다면, 난 계속 너와 술을 마실 거야!

라고 생각했던 밤.

헤어지기 전, 역 앞에서 편지를 건넸다.


"생일 축하해. 오늘 만나서 너무 좋았어. 그리고 네 인생에서 한국인에게 받는 첫 편지일 테니 한국어로도 써봤어. 읽지 못하겠지만 그냥 기념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줘"

라고 하니,

"한국어 공부해서 읽을 수 있도록 할게.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마워."

라던 너.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에게서 온 라인 메시지.


"얼마 안 남았지만, 우리 3월에도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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