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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 Jan 24. 2021

우리의 밸런타인데이는 비터 초콜릿처럼

달콤하기만 한 건 아니야.

그렇게 그에게 그럼 내일 카페에서 보자, 라는 말을 건네고 미도스지 선을 향해 걸어가는 길.


혼자 망했다 망했어 어떡해 라고 중얼거리며 빨개진 얼굴을 목도리 파묻고 지하철에 올랐다.

몇 개의 역을 지나고서도 쉽게 두근거림이 가라앉질 않았다.


그때 나의 나이 스물일곱, 아마 내 생애 누군가에게 하는 첫 고백이 아니었을까.


그다음 날은 학교에서 하루 종일 어떻게 초콜릿을 줄까에 대해 클래스 메이트인 대만 친구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수업이 끝나고, 초콜릿을 사러 오사카 난바 역에 있는 다카시마야 백화점에 있는 고디바로 향했다.


어떤 초콜릿을 줘야지 그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고민을 하다, 4조각이 들어있는 작은 초콜릿 케이스를 골랐다. 그 작은 초콜릿을 들고 나는 그와 만나기로 한 카페로 향했다.


나보다 하교 시간이 늦은 그를 기다리며, 나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은 마음과 함께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런 망설임 끝에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오늘도 수고했어."

라는 인사와 함께 내 앞에 서 있던 근사한 그.


그렇게 그와 별 볼일 없었던 하루의 일상을 공유하고, 어느덧 아르바이트 시간이 다가왔을 무렵 용기를 꺼내 그에게 초콜릿을 건넸다.


그는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마워, 근데 왜 주는 거야?"


라고 짓궂게 물어왔다.

그의 질문에 나는 그저, "밸런타인데이잖아. 해피 밸런타인"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아르바이트에 갔다.

출근 전 매장에 나가기 전엔 늘 그 날 함께 하는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시작하는데,  그 날따라 둘 밖에 없어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인사를 하며,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며 함께 매장으로 나갔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무사히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에게 나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초콜릿을 줬다는 거, 애들이 몰랐으면 해."라고.


이내, 온 답장에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음을 느꼈다.

"미안, 애들한테 들켜버렸어.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할게. 걱정 마"


한참을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그에게

"내가 준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괜찮아, 어쩔 수 없어. 근데 넌 내가 왜 줬는지 알지?"

라고 용기 롤 내어 말을 건넸다.

"왜 줬는데? 나를 좋아한다는 거야?"

라고 답장이 왔고, 나는 그 말에 나의 진심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너에게 할 수 있는 표현은 다 했다고 생각해. 그런데도 모르는 척하는 건 나한테 너무 한 거야."


이내 그에게

"네가 날 좋아해 준다는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고, 나 역시도 너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지만 아직 서로에 대해 전부 다 알지 못하고, 아직은 우리가 사귄다는 걸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래서 너만 괜찮다면 지금 당장 사귀는 게 아니라도 지금 이대로 조금 더 함께 시간을 보내봤으면 좋겠어"


라고 답장이 왔다.


나는 그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게 그를 좋아했다.

내가 늘 버릇처럼 말했던 나의 이상형이었다. 


그의 답장 하나로 시작되는 나의 하루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나의 하루는 그를 찾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 그리고 내 시선의 모든 끝에 그가 있다는 걸.

그는 그 정도로 내가 그를 좋아하고, 내가 그에게 얼마나 빠져있는지를 몰랐다.


그가 내가 그를 좋아하는 만큼,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다.


"응, 난 괜찮아. 네 말처럼 그렇게 하자!
대신 네 생일을 내가 축하할 수 있게 해 줘. 우리 같이 밥 먹자."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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