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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 Jan 17. 2021

우리는 카레를 먹지 못했지만

내일 카페에서 만나자



그렇게 첫 데이트가 끝난 후에도, 우리는 계속 연락을 이어갔다.

대부분 우리의 관계는 나의 연락에 의해 유지되었다.


그 시점의 우리는 전문학교의 졸업을 앞둔 상태였고, 그는 실습으로 인해 아르바이트를 2주 동안 쉬기로 했다며 연락이 왔다.

나는 학교의 졸업 발표였던 연극 준비가 외국인을 대상의 일본어 변론 대회 준비로 굉장히 바빴다.


주말엔 여전히 번역, 한국어 레슨 아르바이트와 유니클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고,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대회를 위한 원고를 썼다.

수업이 끝난 후엔, 담당 선생님과 함께 대회 준비를 했다.

선생님께 오사카 사투리 억양과 함께 평소 말이 빠른 탓에 말하는 속도를 교정받았다.


변론 대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항상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유니클로가 끝난 후엔 유니클로 친구들에게 전부 다 오사카 사투리였던 연극 대사를 들어봐 달라고 하며 이번엔 오사카 사투리 억양을 배웠다. 학업과 아르바이트 외에도 할 일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꼭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졸업 발표까지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대회를 위해 할애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집을 도착하면 늘 12시를 훌쩍 넘기던 시간.

그 시간부터 나는 다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좋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을 하던 나는, 나의 꿈을 주제로 하기로 했다.

그 당시 나는 어떻게든 일본어 공부를 계속 이어가고 싶었고, 일본에서의 대학교와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일본어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 옆 짝꿍의 여자 아이가 일본의 남자 아이돌을 양성하는 쟈니스라는 소속사의 연구생들의 팬이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내가 그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 나도 쟈니스를 좋아해!라는 거짓말로 우리가 친해지게 되었다는 것이 나의 원고의 시작이었다.


변론 대회를 준비하며 나의 일상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를 만나지 못했던 2주 간의 시간이 길면서도 짧은 듯 느껴졌다.


실습이 끝난 후 그에게 오는

"오늘 실습 끝났다."라는 그 문장 한 마디에 내 하루가 얼마나 행복으로 벅찼는지, 그에게는 전하지 못했다.


대회는 어느새 코 앞까지 다가왔고, 나는 대회 준비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긴장을 하면 말이 빨라질 것을 감안해서 천천히 말하는 연습을 수도 없이 했다.


대회 당일.


학교 대표로 참가하는터라 부담이 더욱 컸지만, 그럼에도 연습을 많이 했던 터라 생각보다 긴장되지 않았다.


전국에서 온 참가자들이 있었고, 이 대회를 보기 위해 수 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였다.

나의 이름이 호명되고 무대에 올랐을 때,

눈부신 조명을 마주하며, 나는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쾌감을 느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청중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대에서 내려오니 어떻게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큰 실수 없이 잘 마무리를 했다는 안도감이 덮쳐왔다.


모든 참가자들의 스피치가 끝나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바로 대회 결과가 발표되었다.


정말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꼭 수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만큼은 꼭 상을 받고 싶다는 욕심에 굉장히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하위권부터 차례차례 발표가 났고, 어느새 1,2등만 남긴 상황이 되었다.


2등 수상자의 발표가 시작됐고 이내,

"YMCA국제전문학교 박다름" 이라며 내 이름이 호명됐다.


이름이 호명된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친 건 내가 악착같이 버텨온 이 유학 생활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였다.


2등 수상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나에게 감사한 일이 생겼다.

바로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이었다.


처음 오사카에 왔을 때 꼭 이루고 싶었던 목표였던 장학금.


우수상과 장학금. 특별한 선물 같은 순간이 나에게 두 번이나 찾아와 주었고,

내가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너무 큰 감사를 느꼈다.


대회가 끝난 후, 바로 나는 그에게 연락을 했다.


"나 2등 했어. 우수상이야."

라고.


"잘했어. 다음에 그러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축하해줄게."

라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결국 카레는 먹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도쿄로 가기 전까지 몇 번을 만났고, 매일 같이 연락을 했다.


그렇게 그가 내 마음을 완전히 지배했을 때, 난 밸런타인데이에 그에게 줄 초콜릿을 샀다.

그리고 밸런타인데이 전 날, 같이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그에게 말했다.


"내일 출근 전에 나랑 카페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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