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언니들은 모두와 친해져가는 나를 못 마땅해했다.
내가 처음 일본에 갔던 나이는 스물 둘, 한국 언니들은 스물 여섯과 스물 아홉이었다.
나는 어리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의 챙김을 받았다.
그 때의 난 일본어가 서툴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땐 늘 전자사전을 들고 다녔다.
조금이라도 내 진심을 전하고 싶었으니까.
일본 친구들은 그렇게 노력하는 나를 사람들은 좋아해줬다. 모두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엉망진창인 일본어로 이야기를 해도 끝까지 들어주었고 나의 연락에 모두 정성껏 대답해주었다.
모두가 「だるむはいつも頑張るから(다름이는 언제나 열심히하니까)」 라고 챙겨주었다.
그럴 때마다 점점 언니들은 나를 질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마 언니들에겐 나의 어림이 어리광처럼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어느 하루는 내가 일이 끝나고 스노우 보드를 타려고 리프트를 탔다가 아이팟을 눈 위로 떨어뜨린 적이 있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울먹울먹하고 있는데 친한 남자 친구들이(리프트 담당) 왜 그런지 물었고 이유를 설명하자 퇴근 후 모두가 몇 시간이 넘도록 그 추운 겨울에 날 위해 찾아주었다.
내가 일했던 니이가타는 겨울 내내 눈이 내리는 곳으로, 심지어 스키장 위에 떨어뜨렸기 때문에 눈은 이미 2미터가 넘게 쌓여있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거리낌없이 들어가주었다 그 눈밭을.
두 시간이 넘도록 모두가 노력해 준 덕분에 기적처럼 아이팟을 무사히 찾을 수 있었고 다행히도 아이팟은 고장 나지 않았다. 날 위해 고생해 준 친구들 모습에 눈물이 났다. 화장이 지워질까라는 걱정도 할 틈 없이, 친구들의 웃는 얼굴을 보자 챙피함도 잊고 엉엉 울고말았다.
「君たちバカじゃない?何でこんな優しいの(너네 바보 아니야? 왜 그렇게 다정한거야)」라고.
그러자 친구들은 오히려 날 토닥여주며 「あったからいいじゃん。もう泣かないで(있었으니까 다행이잖아. 이제 울지마)」라고.
나는 어떻게든 그 다정함에 보답하고 싶었다.
따뜻한 밥 한 끼라도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없었던 나는 그것조차도 쉽게 할 수 없었다. 그런 나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친구들은
「今度韓国料理作って(다음에 한국 요리해줘)」라고 해주었다.
다행히 아는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그 분 댁에서 재료를 사서 요리를 준비했다. 물론 아주머니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아주머니댁에도 감사의 의미로 따로 음식을 만들어서 저녁을 대접했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성의였다.
그리고 한국 언니들도 혹시 한국 음식이 그립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조금은 언니들이 좋아해주지 않을까라는 들뜬 마음과 언니들에게 전화를 해야한다는 두려움이 섞인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언니 제가 오늘 아주머니께서 도와주셔서 한국 요리를 만들어서 지금 기숙사에 갖고 가려고 하는데 혹시 같이 드시러 오실래요? 애들도 다 휴게실로 모이기로 했어요."
"나 지금 드라마 보는 중인데 내가 전화 가능한지 아닌지 먼저 물어봐야 되는거 아니니? 너 때문에 집중이 안되잖아."
라며 전화가 끊겼다.
어렵게 낸 용기가 다시 한 번 외면 당했고 나는 그것에 또한 번 상처를 받았다.
나는 결국 무거운 마음을 안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일본 친구들과 함께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다른 한국 언니가 왔다.
그리고 나를 부르더니 방으로 오라고 했다.
두려운 마음으로 나는 언니들의 방으로 갔다.
내가 방에 들어서자 언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향해 날카로운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니가 지금 하는 행동들 하나하나 모두에게 피해주는거야. 아주머니한테도 애들한테도 우리한테도."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도저히 어떤 대답을 해야지 언니들이 날 이해해 줄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언니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바보처럼 울기만 했다.
너무나 억울했고 속상했고 왜 내가 이렇게 미움을 받아야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런식으로 언니들은 빈번하게 나를 본인들의 방으로 불러댔다.
내가 친한 남자 아이와 단 둘이서 어딘가를 놀러가거나, 친구들이 날 위해 무언가를 사다주거나, 일본 친구들과 어울려 다같이 모여서 술을 마시거나, 하는 일들이 있을 때마다 언니들은 나를 괴롭혔고 나는 스트레스 때문에 방에 있는 걸 감추기 위해 방에 있을 때는 대부분 불을 끄고 지냈다.
어차피 룸메이트 동생은 남자친구와 컴퓨터로 대화하기에 바빠 늘 귀가가 늦었다.
혼자 있을 때는 늘 방에서 조용히 있었다.
그 땐 스마트폰도 출시된 지 얼마되지 않아 난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불을 끄고 있으면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창 밖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너무나 조용한 그 정적과 고요함이 못 견디게 외로웠다.
그리고 어떻게해야 나는 이 새로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답이 없는 물음만 더해갔다.
그 때, 그가 나에게 다가왔다. 거짓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