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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게뭐람 Jun 26. 2020

여자 나이 28.9의 결혼식.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우리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다.

그때는 막연하게 너 결혼하면 가야지 라는 말은 늘어놓으면서도, 결혼할 때까지 인연이 이어진다는 것이 어려운 줄은 몰랐던 나이였다.

평생을 헤어지지 않고 그 장난치던 모습과 얄궂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관계를 이어갈 줄 알았던 우리는

중학교 졸업을 기점으로 다른 고등학교와 다른 대학교, 그리고 다른 취업준비와 다른 직장으로 관심사가 멀어져 갔고, 1-2년에 한 번을 겨우 보는 사이가 됨과 동시에 그렇게라도 만남을 유지했을 경우, 친한 사이가 되고 마는 관계가 되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1년 반 남짓 만나온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축하한다"는 말과 동시에 "어색하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일전에 고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을 참석했는데, 고등학교 친구가 나 포함 두 명뿐이었던지라, 상당히 뻘쭘했던 기억이 있었다.)

심지어 중학교 졸업을 하고 나서 얘기로만 들었지 한 번도 연락이라던지 개인적인 만남을 갖지 않았던 친구도 있던 터라, 뻘쭘하지 않기 위해 남자 친구를 데려가야 하나 싶기도 할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결혼식 당일이 되고 나니, 문제는 오래전에 만난 친구와의 어색한 관계가 아니었다.

오랜 정이 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는 직장 얘기, 남자 친구 얘기, 일 얘기 등등으로 비워졌던 시간을 채워나갔고, 오히려 내가 왜 연락을 안 하고 지냈을까 하는 후회까지 들게 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나이는 친구가 어떤 가방을 들었는지, 어떤 립스틱을 쓰는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구두를 신었는지를 신경 쓰게 했다.

친구의 예쁜 가방에 그 가방이 얼마인지, 어느 제품인지, 얼마를 주고 샀는지를 물어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값이 나가는 그 물건을 보고 그 친구의 감각이나 생활을 평가하는 나의 모습까지.

밥을 다 먹고 립스틱을 바르는데, 얼마 전의 산 로드샵의 립 틴트 통이 얼마나 신경이 쓰이던지.

'백화점 브랜드 립스틱 가지고 올 걸.' 하는 후회가 아직도 든다.


물론, 어리다고 물질적인 것에 무감각하다고 치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중학교 시절을 같이 보냈던 우리들은, 그리고 그 친구들과 함께 있었던 나는 그 친구의 가방 브랜드나 신발이 뭔지, 학용품이 어떤 건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어떠한 것이 그 친구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를 신경 쓰게 하지도 않았다.




나는 나이를 먹어버렸다.


28.9살이자 곧 29가 되는 흔한 여자사람인 나는 이제 결혼식을 위한 가방과 결혼식을 위한 구두, 밥을 먹고 모두의 앞에 꺼내어 입술을 바르기 위한 백화점 화장품 립스틱을 신경 써야 할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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