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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게뭐람 Jul 09. 2020

감리 실수, 내 인생이 망한 것 같다.

마음에 들지않는데, 사인을 해버리고 왔습니다.

나는 중소기업의 디자이너다.

그리고 제목 그대로 오늘, 주 업무인 감리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책임감을 가지고 혼자 보러갔던 감리,

모든 것을 내가 컨트롤 하고 진두지휘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일이었다.

디자인도 큰 잡음없이 감리 잘 보고 오겠다며 통과했고,

심지어 오늘 아침 공장을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감리를 잘 보고 오겠다고 팀원들한테 통보를 했던 터이였다.


막상 도착해서 결과물을 확인했을때,

나는 첫 눈에 내가 생각했던 색상과 프린트 되어있는 색상이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다.


분명 내가 요청했던 팬톤색을 정확히 구현해 주셨는데,

전체적인 컨셉마저 흔들릴수 있을 정도의 다른 색상이 되어 나왔다.


내가 요청한 팬톤 색이 아니라는걸 알았는데,

팬톤색을 변경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별색을 제외한 cmyk값을 계속 바꿔달라고 요청드렸고,

결국 4-5번정도 수정을 거쳐서, 그나마 내가 지정한 팬톤컬러와 비슷한 느낌으로 나머지 톤을 맞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근본이 되는 팬톤 컬러가 애초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근본이 이상했는데,

근본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한체,

곁다리만 잔뜩 수정을 요청하고서는 이정도면 충분히 했다는 식의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태도로

나는 날짜와 이름을 적고 그 자리를 나와버렸다.






마음속에 가시같은 찝찝함이 남았었다면, 나는 계속 불편함을 요청했었어야 했다.


결국 나는 그곳에서 회사로 오는 2시간 여 남짓한 시간속을 계속 나의 눈을 의심하며, 또 괜찮은 것 같아 보여서 안도하다가 다시 내가 왜그랬을까 하는 자책감으로 끝없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중간에 심지어 업체에 전화를 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걸까 싶은 마음에,

인쇄업무가 다 끝난거냐고 되물어봤다.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보여주기도 전에, 스스로 지쳐버리고 스스로 자신감없는 상태로 모두를 마주했고,

역시 모두의 반응은 생각했던 색과 달라서 당혹스럽다는 의견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 폐기를 하고 다른 팬톤으로 재작업한다. (약 150만원의 폐기비용 + 더 많은 작업기간 소요)

2) 그대로 간다(내 색상에 대한 논리가 부족해짐)

단 두가지의 선택지밖에 없고, 둘 다 유쾌하지 않은 선택지이다.





결국 모든 것은, 가시같은 찝찝함을 뒤로하고 바보같이 OK사인을 해버렸던 나의 잘못이었다.

누구의 탓을 할 수도 없는 명백한 나의 잘못이다.


다른이들은 괜찮다고 말할 수는 있겠고,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몫을 못했다는 죄책감에 아직까지도 너무 괴롭다.






후의 일을 책임질 수 없는 상태에서 내가 무엇을 믿고 OK 사인을 했던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내가 이대로 해주세요 라고 말하기 전까지, 그 찰나의 순간에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분명히 나는 하고있었다.


그 기회가 자꾸 생각이나서 너무 괴롭다.

"사장님, 잠시만요" 라고 한마디만 했었더라면, 그냥 진상이 되고 말았더라면, 조금 깐깐해 보이는 업체가 되고 말았더라면, 나는 조금 더 어깨필 수 있었을텐데.




나는 내 생각보다 더 경험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는 듯 하다.

백번을 말해도 그걸 까먹고 꼭 한 번의 경험을 통해 실수를 체화한다.


오늘은 나의 사인의 무게에 대해 배웠다.


내가 나의 회사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그걸 넘어 나의 주변인들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나의 가족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가시를 품고 어영부영한 태도로 OK 사인을 했을때 그것이 얼마나 나를 괴롭게 하는가.






나는 너무 괴로운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도록 하지 말아야지.


뼈저리게 깨닫는다는 말이 정말이지 마음에 사무친다.


괴로운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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