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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Nov 21. 2020

편집자의 쓸모에 관하여

주위 동료의 다음 발걸음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내게 잘 어울리는지 여전히 의문이 드는 '편집자'라는 직함을 단 후, 출판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고 그 속에서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나의 쓸모에 관해 늘 고민했다. 책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행위이며 그 속에서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좀처럼 답하기 어려운 의문이 늘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곤 했다. 회사에 들어온 지 만으로 3년이 되었지만, 우연한 기회로 두 권의 책을 만든 후 무려 2년간 책을 기획하지 못했다. 패기나 열정, 의욕만으로 책을 만들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비참함이 순식간에 나를 뒤덮었다. 자신이 만든 책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내야 하는 편집자가 책을 기획하지 못하니, 나의 쓸모에 관한 고민은 늘 부정적인 방향으로 귀결되곤 했다.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저 먼 곳이 아닌 내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2016년 중순, 청년 문화 활동을 하며 시작된 저자와의 인연은 서먹서먹하게 몇 년을 이어갔고, 마침내 2018년 말 <생각하는 바다>에 이르러 다시금 만나게 되었다. 여러모로 공통분모가 많아 금방 가까워졌다. 다만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많이 조심스러워 하는 저자의 모습은 나에겐 낯설게 다가왔다. 저자는 실력이 있음에도 늘 한 걸음 뒤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을 이어주고 커뮤니티를 만들며 민락동의 외진 공간을 북적이게 했다. 작년 여름, 첫 단행본을 내고 한창 구름에 들떠 있었던 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저자에게 연재를 제안한 건,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크게 한몫했다. 많이 부족하고 서투른 나도 책을 쓰고 무대 위에 서는데, 정작 세상 밖에 자신을 드러내야 할 사람이 자신을 숨기며 침묵하는 모습은 많이 불편했고, 부끄러웠고, 또 못마땅했다.


그렇게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고, 약 1년간의 과정을 거쳐 <오늘도 만나는 중입니다>라는 한 권의 책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두 번째 책임편집 책을 기획한 이후 오랜 침묵을 깨고 선보이는 책이자, 내가 사회를 향해 내는 세 번째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작업은 시작부터 끝까지 저자와 붙어서 함께 만든 첫 번째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렇게 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편집자 직함을 단 지 한참이 지나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이 책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면, 어느 편집자가 환상에 빠진 채 저 멀리만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주위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주위 동료의 다음 발걸음에 미약하게나마 응원하며 더 나아가 자그마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혹시라도 누군가 나의 쓸모에 관해 묻는다면, 어설프게나마 대답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가 생겼다.

"이번 작업은 자신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커뮤니티 매니저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길어 올리는 일이었다. 원고를 모으는 과정은 늘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애잔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픔에 공감해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던 존재에게 질문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당신에겐 어떤 아픔과 이야기가 있나요. 그동안 저자가 우리 이야기를 들어줬으니, 이번엔 우리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차례다." - 편집후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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