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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Jul 13. 2022

오로지 연결과 성장만 있을 뿐이다

돈을 얼마 벌었든 판매량이 어떻든, 그 공통의 경험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던 모습이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질 만큼 ‘지옥’의 세계적인 히트는 강렬하게 다가온다. ‘지옥’이 ‘오징어 게임’을 누르고 전 세계 1위를 빠르게 달성했다는 사실에 K-콘텐츠의 위상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도 그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엄청난 속도감이다. 다음번에는 무엇에 열광할까 궁금해지다가도, 아무리 재미있는 콘텐츠도 금방 소비되고 대체되는 현실이 꽤나 무섭고 서늘하게 다가온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모든 콘텐츠가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과 같은 인기를 얻을 순 없다. 숨 돌릴 새도 없이 빠르게만 흘러가는 세상 속, 단기간에 큰 인기를 얻지 못한 콘텐츠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책 출간 후 처음으로 작가님과 만난 자리, 책이 세상 밖에 나온 지 정확히 한 달이 흘렀다. 처음 책을 기획할 때의 기대와 설렘은 사라지고 허탈함만이 가득하다. 한창 뜨거웠던 책의 온도는 금세 싸늘하게 식어있다. 책이 나오면 보통 6개월은 신간이라 부른다고 하지만, 책을 비롯해 다양한 콘텐츠가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출간 후 한 달이면 책의 운명이 결정되는 분위기다. 각종 매체에 소개되고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아도 좀처럼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 그 문턱마저도 넘지 못한 책은 너무나도 빨리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진다.


책 반응은 어때요, 작가님의 질문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어느 날 눈 뜨고 일어나니 갑자기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언론기사나 강연 요청이 쏟아지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애써 만든 책이 왜 더 많은 독자에게 닿지 못할까, 고민과 아쉬움만이 가득하다. 요즘 출판 시장이 너무 안 좋다며 작가님께 변명도 해보고 넋두리도 내뱉어보지만, 결국 책을 좀 더 잘 만들지 못한,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한 편집자의 탓이다.


식어버린 책을 감싸 안으며, 허탈함에 몸부림친다. 효율로 따지면 책을 쓰고 만드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이 없다. 책 소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지만, 간신히 찾았다 해도 원고를 쓰는 데만 최소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씩 걸린다. 애써 만들어도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출판 시장에서 책 한 권 팔기도 쉽지 않다. 파는 것도 어려운데 책을 통해 유명해지거나 돈을 번다는 건 정말 꿈과 같은 일이다. 인간의 노동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지 헷갈리는 요즘, 노력은 많이 드는 데 반해 성과는 늘 저조한 출판은 더더욱 의미와 가치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편집자님!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작가님의 사인 문구를 보자 맨땅에 헤딩하듯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판매량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처음 책을 기획했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기 위함이었다면 굳이 책을 선택했을 리 없다. 그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당연한 아픔은 결코 없다는 걸 알리기 위해, 글로 남기지 않으면 힘없이 흩어지고 말았을 삶의 치열한 언어를 세상 밖에 내놓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돈을 얼마 벌었든 판매량이 어떻든, 그 공통의 경험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경제적인 것과 연결되지 않으면 그 무엇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해진 요즘, 책은 현실의 문법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수단이자, 물질 만능시대에 맞서 우리가 스스로를 잃지 않도록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그렇기에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여정의 끝은 인생 역전이나 일확천금이 될 수 없다. 일반 상품이라면 판매량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적어도 책만은 그런 현실의 논법에서 멀어질 수 있고, 어쩌면 멀어져야만 하는 상품일지도 모른다.


작가든 출판사든 책을 판 수익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존재이지만, 그것이 책이 가지는 의미의 전부라 할 수 없다. 책은 어디까지나 매개의 역할이다. 책을 통해 작가와 편집자는 서로를 믿고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하며,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해 발맞춰 걸어 나간다. 그렇게 세상 밖에 나온 책을 통해 독자는 자신이 접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관심 가지게 되며, 얼굴도 모르는 어느 작가와 연결된다. 이러한 과정에 있어 성공과 실패는 없다. 오로지 연결과 성장만이 있을 뿐이다.


<국제신문> 청년의 소리 원문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11201.22021009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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