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 고민해볼 일
법과 원칙이라는 미명 하에 안타까운 현실과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재개발을 위해 살던 집에서 강제로 끌려 나오는 철거민, 회사 사정이 나빠져서 가장 먼저 정리해고당하는 계약직 직원, 가정 형편으로 제대로 된 교육받지 못한 청소년, 능력이 아니라 불편한 몸으로 기회의 차별을 겪는 장애우 등 심심치 않게 그들의 사연을 전해 듣게 됩니다. 그때마다 우리 사회가 말하는 공정한 원칙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그 성장을 이끄는 주요한 원동력은 '경쟁'입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은 필수적이고, 그 노력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경쟁'에서 이겼느냐 졌느냐로 결정짓게 됩니다. '경쟁'은 법과 원칙이라는 규칙을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자유를 행함에 있어서 다른 이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이상 나의 자유를 제한하지 말라'는 대원칙만 지켜진다면 이 경쟁은 거의 무한에 가깝습니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전부를 얻고 진 사람은 전부를 잃게 되어 그 결과가 너무 극명합니다. 그리고 한번 경쟁에서 진 사람은 또 다른 경쟁에서 이길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더 나은 조건에서 임하게 될 테니까요. 과연 이것이 우리 사회를 보다 인간적이고 함께 사는데 옳은 방법일까요?
어릴 적 동네에서 친구들과 술래잡기나 말뚝박기를 하며 놀게 되면 초등학교 고학년 형들부터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까지 다 같이 어울리게 됩니다. 가위 바위 보로 편을 나누거나 술래를 정하고 나면 이내 왁자지껄 동네가 떠나가라 놀이는 시작됩니다. 나름의 규칙에 따라 즐겁게 몇 번의 놀이가 반복이 되고 나면 계속 지는 편이 나오거나 술래에 걸리는 친구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편을 다시 나누던지 규칙을 조금 바꾸기도 합니다. 우리는 즐거운 놀이를 해야 하니까요. 놀이를 즐겁게 하기 위한 방편인 거죠. 그리고 또 하나의 방편이 있는데 그것이 '깍두기'입니다. 친구 중에 나이가 너무 어리거나 몸이 약해서 똑같은 규칙을 적용하면 그 친구가 속한 편이 불리하게 되거나 그 친구만 계속 술래에 걸리기 때문에 깍두기인 친구가 술래에게 붙잡히거나 금을 밟아도 이해하고 배려를 해주는 겁니다.
만약 규칙에 따라 경쟁만을 강요한다면 힘이 센 고학년 형들이 항상 이길 겁니다. 경쟁에서 자꾸 지는 아이들은 점점 놀이에 흥미를 잃게 되고 빠지게 되겠죠.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놀이를 통해서 즐겁지 않게 될 겁니다. 모두가 어울려 행복하려면 규칙에 따라 승패를 정하고 많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즐겁게 놀이에 참여할 수 있게 배려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 시절의 어린아이들도 알았던 겁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버리고 나서 이미 경쟁에 익숙해져 버려서 일까요 아니면 알고는 있지만 더 이상 어쩌지 못해서일까요? 집값이 떨어진다며 내가 사는 동네에 임대 주택이 들어오거나 장애학교가 건립되는 것을 반대하고, 일자리를 잃은 계약직 노조의 농성을 보며 밥그릇 싸움을 한다고 냉소적인 눈빛을 보내기도 합니다.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지원 정책들에 세수 낭비라며 비난을 일삼습니다. 배려가 필요한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너무 가혹하기만 한 것은 아닐까요? 어린 시절에 잘 알고 있던 배려라는 소중한 가치를 정말 잊어버린 걸까요?
지금 우리에게 그 시절의 '깍두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