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한옥촌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은 홍상수의 영화 세계
삶이란, 서로 같은 듯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지식인의 위선과 풍자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때론 너무 솔직하게 때론 너무 사실적으로 조명해 온 홍상수 감독의 열 두 번째 장편영화 <북촌방향>은 경상남도 통영을 배경으로 펼쳐진 영화 <하하하>에서 옮겨와 서울 종로의 북촌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동안 영화 연출을 쉬고 지방대에서 교수로 지내는 영화감독이 서울에 사는 영화평론가 영호(김상중 분)를 만나러 북촌 마을에 머물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는데, 조용히 사람만 만나고 가겠다던 남자의 결심은 시간의 흐름과 반복되는 우연으로 벌어지는 사건으로 인해 뜻대로 이뤄지지 않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 마치 이 이야기가 성준처럼 한 여름 밤의 백일몽을 꾸고 난 듯한 여운이 든다.
지식인이란 가면을 쓰고 여자를 유혹하고 남의 얘기를 멋대로 떠드는 속물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영화 속 캐릭터들은 홍 감독의 전작 <생활의 발견><해변의 여인><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에서 익숙히 봐 왔던 동물적인 본능으로 그럴 듯한 이야기로 처음 만난 사람에게 호감을 사고 자신의 허세를 내보이면서 욕망을 쿨(?)하게 해결하려 든다.
그들의 이러한 행동과 생각은 주변인물을 통해 묘사되는데, 북촌은 국내에서는 한옥들이 보존된 곳으로 여러 갈래의 골목길과 흡사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서울에 사는 시민조차도 길을 잃고 헤매는 대표적인 거리로, 감독은 반복된 장소를 배경으로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마치 관객들이 '미로'를 찾아가듯 몇일 동안의 '천일야화'를 그려내고 있다.
다만, 극중 영화감독인 성준(유준상 분)이 북촌에 몇 일 동안 머물렀는지 또한 영화 속 에피소드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 것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에피소드를 시간의 배열을 뒤바꾼 것인지 모호해지는 것은 홍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던져주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수 많은 오해와 우연으로 일어난 인생에 채울 답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김기덕 감독과 함께 가장 짧은 시간에 영화 찍기로 유명한 홍 감독은 그냥 보여지는 그대로 찍는다고 하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난 평단과 관객들은 다소 불편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위선, 그리고 지극히 적나라하면서 유쾌하게 인간의 심리를 풍자해내는 그의 영화세계에 감탄하게 된다.
이번 작품은 그 동안 대중성과 먼 것처럼 느껴졌던 그의 영화가 최근작 <하하하>나 <옥희의 영화>보다 더욱 더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규모 스크린에서 1만 7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도 이 영화가 아트버스터라 불리울 수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관객들은 있는 그대로의 영화를 즐기면 된다.
감독은 극중 성준을 통해 우리의 일상이 같은 상황을 서로 다르게 해석함으로 해서 생겨나는 수 많은 오해와 실체에서 포착할 수 없는 우연들이 겹쳐져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전하는 듯하다.
이러한 일상은 매번 시간의 흐름과 주변 상황에 따라 조금씩 틀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일생 일대의 큰 사건을 치르기도 한다.
마치 일주일 동안 직장과 집을 오가는 샐러리맨들이 주중에 친구들과 모임을 갖거나 초상집에 들르거나 혹은 특별한 계기의 사건을 마주치는 것처럼 감독은 술집에 앉아 같은 듯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삶의 답을 애써 채우려는 것을 거부한다.
네 편의 영화를 찍으며 몇몇 사람이 알아보는 정도의 영화감독 성준은 북촌을 배회하다가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를 만나고 영화학과 학생들과 술자리를 갖고 술에 잔뜩 취해 과거의 애인 경진(김보경 분)의 집으로 달아나면서 후배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
그에게 미련이 남은 경진에게 "너 밖에 없었어, 너였어야 해"라고 속물 근성을 발휘해 잠자리를 하고 나선 다시는 오지 않겠으며 절대 연락하지 말라는 당부와 그 것이 그녀에게도 좋다는 것을 다짐시키고는 그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풀려는 듯 그에게 담배를 달라고 한다.
욕망 앞에 위선적인 인간들의 질펀한 수다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영화감독 경남(김태우 분)이 노화가의 아내가 된 대학후배 고순(고현정 분)과 하룻밤을 위해 갖가지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성준은 예전(김보경 분)을 유혹하기 위해 식재료를 사러가는 그녀를 뒤따라가서 기습 키스를 하고 앞서 경진과 대할 때완 상반되게 찬구들을 돌려보내고 꼭 돌아올테니 기다려 달라는 것.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위선적인 성준의 모습에 박장대소를 치게 되는데, 예전과의 이후 애정행각에 대한 일종의 복선으로 자리 잡는다.
이후 영화 속에서는 담배와 술은 성준이나 보람(송선미 분) 등 등장인물들의 잠재된 욕망을 표출하는 소도구가 되어 같은 공간에서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모르는 성준의 '킬링타임'은 계속된다.
그러는 가운데, 영호의 대학후배 보람과 영화배우 중원(김의성 분)이 대화에 참여하고 성준의 옛 애인과 자주 술집을 비우는 마담 예전 등의 에피소드를 겪으며 영화 속에서 그가 '소설'이란 술집에서 지인들에게 삶의 인과관계을 설명하는 것처럼 자신이 판단하고 한 행동들이 뭔가 항상 완전하지 않아 외적인 모습과 다른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게 된다.
"이유없이 일어난 일들이 모여서 우리의 삶을 이루는건데 그 중에서 우리가 이유라는 생각의 라인을 만들고 있잖아요" - 성준의 대사 중에서
앞서 지인들 앞이나 경진을 떼어놓기 위해 성준이 늘어놓는 대사는 영화 <해변의 여인>에서 영화감독 중래가 문숙(고현정 분)에게 형이상학적인 궤변으로 늘어놓는 '꼭짓점 이미지론'을 떠올린다.
즉, 영화 속 친구의 연인과 하룻밤을 치른 중래가 사람의 욕망에 해당되는 꼭지점으로 이뤄진 삼각형의 이미지는 본래 모습이 아닌 이미지만 남는 것이고 그러한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다각형에 가까운 실체를 봐야 한다는 것.
더욱이 성준은 자신이 떼어 놓으려는 경진으로부터 핸드폰 문자 메시지가 올 때마다 보람, 예전 등과 차례로 작업을 거는가 하면, 기습키스했던 것에 대해 술에 취해 착각을 했던 것으로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반색을 하는 예전에게 거리에서 다시 포옹과 키스를 통해 위선적인 행각을 계속한다.
특히 그의 욕망은 "오빠"라는 호칭으로 발전해 다가서는 경진에 의해 해소되지만, 잠자리를 하고 난 후 절대 연락하지 말고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지라는 말로 비겁하고도 쿨한 서울에서 그의 애정행각은 마무리 된다.
하지만, 관객들은 문자 연락 하면 안되냐는 등 익숙한 경진의 말투를 답습하는 예전을 통해 그녀가 경진의 과거인지, 아니면 성준에 의해 만들어진 상상속의 이미지인지 혼란에 빠질 수도 있겠다.
홍상수도 영화 속 대사를 통해 김기덕에 이어 한국 영화계에 일침
"길에서 우연히 네 사람을 만났어요..근데 그게 다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이 잖아요. 그리고 그게 다 20분만에 일어난 일이거든요. 사실은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난게 아닐까" - 보람의 대사 중에서
이러한 보람의 대사는 성준이 이들과 만나기 전에 두번이나 북촌 거리에서 마주친 여배우와 한번 더 마주치게 되고 영화제작자, 낯 모르는 영화음악가 등과 마주치는 에피소드의 전개와 영화 속 주제의식을 위해 감독이 사전에 깔아놓은 복선이다.
전작에 이어 스크린을 흑백모드를 채우고 시간 관념에서 자유로운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듯하며, 같은 장소의 반복과 같은 듯 다른 패널들의 만남은 관객들에게 극적인 긴장감과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특히, 영화 <아리랑>에서 자본과 권력의 헤게모니에 의해 상처받은 영화감독이 한국 영화계를 비판해 화제가 됐던 김기덕 감독의 오마쥬가 영화 속 성준을 바라보는 외부인의 시선을 묘사한 중원의 대사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너는 이기적이야, 물어봐 다들.. 너는 너 밖에 몰라.
너 저번에 나랑 영화하자고 그렇게 해놓고 어떻게 했어? 돈 때문에 딴 새끼랑 했잖아" - 중원의 대사 중에서
영화 속 보람이 영호에게 건네는 대사처럼 감독은 같은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떠한 심리로 변화해 가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보람에 대해 잘 안다는 듯 얘기하다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영호의 에피소드나 가게를 자주 비우는 술집 '소설'의 마담 예전에 대해 잘 안다는 듯 떠들어대는 영호를 통해 지식인의 위선과 완악함을 비판하고 있다.
시간과 반복에 따라 변하는 인간의 심리, 신 앞에선 유약한 존재
처음에 주인이 없는 술집에서 유쾌하게 술을 마시며 수다를 늘어놓는 이들은 그 전인지, 후인지 명확치 않지만 같은 술집을 두 세번째 방문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뱉는 말로 인해 서로 반목과 갈등 그리고 화해를 하게 된다.
보람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표시하는 영호는 그녀가 다른 여자와 다르며 특별하다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러면 그렇게 알면 돼. 괜히 그런거 의심하지말구. 그런거 하지 좀 마, 이제 그만해" 섬세하고 너그럽지만 남을 자기 기준에 판단하는 인간 유형을 대변하는 영호의 이런 태도는 사랑이 결핍된 채 가족과 떨어져 사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 분)나 영화 <용서는 없다>의 강민호 교수(설경구 분) 그리고 영화 <심야의 FM>의 고선정 아나운서(수애 분)가 사건에 개입되는 공통적인 이유는 자신과 상관없다는 식으로 무심코 내뱉은 말인데, 작가는 이러한 말과 우연적인 만남으로 인해 자신이 의도하지 않는 삶에 이끌리는 인간의 유약한 모습까지 조명하고 있다.
극중 보람이 잃어버린 강아지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며 내뱉는 "얼마나 집에 돌아오고 싶을까"란 대사에는 집을 떠나 서울을 배회하면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성준이나 부인과 별거중인 영호를 풍자하는 작가의 상징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북촌은 '소설'이란 술집이 위치한 막다른 골목과 방향을 구분할 수 없는 유사한 가옥들이 모여있는 곳인데, 북촌에 사진기를 들고 깜짝 등장하는 고현정의 사진 속에 '북촌' 간판 앞에 선 성준은 정체성을 잃은 나그네나 마치 꿈을 꾸고 난 후의 허탈한 표정으로 박제된 모습을 띠고 있어 이채로왔다.
그가 북촌에 머물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수 많은 우연이 겹쳐져 자신의 일상이 되고 인생이 됨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영화 초반부에 북촌 거리를 누비던 성준이 엔딩 장면에서도 똑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북촌에서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과 함께 같은 장소 속에 다른 생각 또한 '동상이몽(同相異夢)'이 아닐지...
/시크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