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드래곤, 한국 영상의 새로운 신호탄을 쏘다
‘용’ 비어천가다.
존재하지 않았던 사업자가 등장했다. 그것도 방송제작사도 협상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업자다. 2018년 6월 18일 현재 시가총액이 2조 9천억 원에 이른다. 창립시점으로 따지면 2년 남짓, 기업공개 시점으로 보면 대략 1년 남짓 만에 300% 넘게 시가총액이 올랐다.
동종업계 대표 사업자인 삼화네트웍스의 시가총액이 700억 원 내외인 것과 비교하면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더구나 SBS가 4천4백억 원, SBS미디어홀딩스 4천억 원, SBS콘텐츠허브 등 상장된 SBS 방송그룹의 시가총액이 대략 1조 원 내외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기업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기도 한다. 전체 주식 중 시중에 유통되는 양이 25% 내외에 불과하고 유통되지 않은 주식의 총량이 75%에 가까워 일부 세력이 손쉽게 주가를 부양 할 수 있는게 아닌가라고 의심을 한다. PER가 134.61배에 이른다는 이야기는 의심에 확신을 더하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2017년 300억 원 내외의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의 시가총액으로는 너무 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관련 업계에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가 흘러 나온다. 독립제작사들은 애써 키워놓은 인력을 뺏어간다고 뒷담화고, 규모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주장도 나온다. 제작인력에 대한 처우개선이 척박한 동네에서 ‘기업’이라 불릴만한 제작사가 나오다 보니 이래저래 요구사항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산업’과 ‘사업’이란 전제 조건이 붙는다면, 그 어떤 의심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방송시장에 미래의 성장가치로 평가받는 사업자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도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다소 성급할 순 있지만, 한국 방송 역사상 의미있는 한 획을 긋는 기업을 제대로 평가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업자들도 ‘스튜디오 드래곤’이 그린 그림을 발판삼아 도약할 수 있다면 한국 방송시장에 더욱 큰 의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만에 의미있는 채널 사업자로 성장한 tvN이 방송시장의 기존 문법을 그대로 준수하면서 성장했다면, ‘스튜디오 드래곤’은 국내 시장에 없는 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역설적으로 ‘스튜디오 드래곤’에 대한 이런 저런 요구 역시 없던 모델에 대한 부러움과 희망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모델은 한국 제작시장의 척박함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다양한 이해들이 서로 상충한다. 그 이해가 부딪치고 상쇄되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 균형에 도달한다. 다만 이 때의 시장 균형은 도덕적 가치를 담고 있지는 않다. 선악이 아니라 작동방식일 뿐이다. 바름과 그름의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이 균형 상태라 하더라도 시장을 흔들어서 옳지 않은 것들을 걸러내는 작업은 필요하다.
방송 제작 시장은 나름 시장의 균형에는 도달했으나, 아쉬움이 많았다. 이 시장은 정책 개입을 통해 균형이 맞추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외주제작 정책이다. 정책 당국자들은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의 시장 권력이 너무 강하다고 판단했다. 시장이 다양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위해서는 지상파 방송사업자의 손과 발을 묶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제작할 수 있는 권한을 제한했다.
외주정책의 등장이다. 제한의 크기만큼 새로운 사업자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장의 반응을 기대하면서 정책 당국자는 수 십 차례에 걸쳐 재개정을 반복해 외주제작 편성비율을 조정했다. 지상파의 제작능력은 감소했고, 시간이 흘러 기획 능력도 줄어들었다. 그 사이에 경쟁채널들이 등장하면서 외주정책을 도입할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상파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의도했던 것만큼 지상파와 맞짱을 뜰만한 방송제작업자가 등장하지는 않았다고, 기존 제작업자의 경쟁력도 강화되지도 못했다. 여러 제작사업자가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30여년 동안 방송제작시장의 풍파를 겪으면서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삼화네트웍스의 규모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상파의 힘은 빠졌으나, 제작사의 힘을 키우지는 못한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글로벌 마켓에서 소위 한류 콘텐츠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영상산업이 활력을 띄고 있는 것처럼보이기도 한다. 해외 수출 편수는 늘어났고, 전체 수익 규모도 늘었다. 일본 총무성의 자료이긴 하지만, 2015년 기준 한국 방송 콘텐츠 수출 규모는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그러나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는 제작사업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아쉬워했지만, 대응을 하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방송사의 선택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는 변함이 없다.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유명 연예인을 불러와야 했고, 그만큼 높은 개런티를 지불하고 남은 제작비용은 부족했고, 스태프들의 처우는 악화되었다. 선택받지 못한 중소규모의 영상 제작사들은 수익성이 낮은 모바일 시장 진출을 탐색할 정도다. 국내 자본시장도 국내 제작사를 외면했다.
그 와중에 자국 콘텐츠 제작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중국 자본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초록뱀과 같은 대형 제작자들이 하나둘씩 중국 자본에 인수되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시장은 나름의 해법을 내 놓는다. 대표적인 것이 합종연횡이다. 글로벌 시장이 그랬다. 북미시장만을 놓고 보면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1차 M&A 열풍 이후, 2010년대에는 2차 M&A 열풍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국내 시장은 그렇지 못했다. 감독 혹은 작가 중심의 제작시장은 이 흐름을 외면했다. 합종연횡은 감독과 작가의 색깔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카드다. 설사 부도가 나더라도 자존심, 이른바 ‘가오’는 지켜야 했다. 사실 합종연횡을 논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작았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합쳐서 얻을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탓이다.
정책 당국은 방송이 문화산업이란 이유로 다양한 지원 정책을 추진했고, 허울뿐인 영광일망정 사업자는 그렇게 연명해 갔다. 그래서 지상파의 힘이 약화된 상황에서도 제작사는 협상을 주도할 수 없었다. 협상력이 없는데, 저작권(IP: Intellectual Property)을 가져온다는 건 불가능하다. 저작권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만은 컸으나 스스로 저작권을 가져올 힘을 키우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거슬러서도 안 되고, 소비자를 가르치려 해서도 안 된다. 시장의 도도한 흐름을 역행해서 사업을 발전시킬 수도 없고, 소비자의 오랜 관행과 습관이 자연스럽게 변화하도록 흐름을 만드는 것은 가능해도, 소비자를 가르치고 설득해서 습관을 바꾸려는 행위는 언제나 실패를 가져왔다.
이들과 연대하고 합종해서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면 작가주의와 감독주의란 한국 영상 제작시장의 특성을 유지하고 포용하되, 규모의 경제를 만들고 해외 진출 등 시장의 성장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 ‘스튜디오 드래곤’ 사업 모델이 의미가 있는 건 이 어려운 문제를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무리하지 않았다. 일단 박지윤 작가의 <문화창고>와 김은숙 작가의 <화앤담픽쳐스> 지분을 각 30% 정도 취득하면서 그 가능성을 테스트했다. 그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시도라는 판단이 들고서야 자회사를 포용할 수 있는 중간지주회사의 성격을 띤 ‘스튜디오 드래곤’을 설립했고, 남은 지분도 인수했다. 대표적인 사업자가 동참 한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KPJ를 인수하는 건 상대적으로 쉬웠다.
합병은 구매자와 판매자의 이해가 일치해야 가능하다. 인수를 단행한 舊 CJ E&M (現 CJ ENM)은 그림을 그릴 이유가 분명하다. CJ헬로비전(現 CJ헬로)를 매각하려고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향후 미디어 시장의 성패를 플랫폼이 아니라 콘텐츠에서 찾고자 했다. 이 좁은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탐하는 사업자라면 당연히 선택해야 할 지점이다. HOW에 대한 고민은 있을망정 방향성은 명확하다. 구매자의 입장은 분명하다.
그러나 판매자가 구매자와 같은 의도일 수는 없다. 김은숙 작가나 박지은 작가는 그 자체로 브랜드다. ‘김은숙’과 ‘박지은’은 해외시장에서도 통한다. 그들 앞에는 돈뭉치를 들고 선택을 갈망하는 사업자들이 줄을 서 있다.적어도 당장의 위기감은 없다. 이들의 마음을 사려면 미래의 두려움을 나누되, 성장의 방향성은 같아야 한다.
어쩌면 한계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지 못한 생존 기반 탓에 한국의 제작사들은 악마의 유혹을 거부할 수가 없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제작단가가 낮은 영상물도 제작해야 한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생존을 담보로 작업을 하다 보면 수준 높은 작품을 제대로 제작할 수 없는 구조가 되기 십상이다. 자신의 자율성을 침해당하지 않으면서도 생존을 위한 최소 규모를 담보할 수 있다면 최선일 수 있다. 일정 정도 구조적인 안전망이 있다면, 기꺼이 손을 잡고 같이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기에 자본의 규모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총 자본금이 140억 원에 불과했던 ‘스튜디오 드래곤’이었으니, 초기에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고 자회사의 틀을 만들었을 개연성은 떨어진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자금이 오고 갔는지는 확인할 순 없었으나,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개별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거인의 품속으로 들어가 제작상의 안전을 보장받고, 덧붙여서 상호 시너지와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이를 해당 사업자들의 꿈이라고 설명했다.
<미스터 선샤인>(tvN)은 400억 원짜리 프로젝트다. 개별 제작사가 저작권을 방송사에 넘기지 않으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방영권 판매 수익 정도다. 대부분의 제작사들이 저작권을 넘기면서까지 제작비용을 보전받고 싶어하는 것에 비하면, 그나마 방영권만을 판매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른 산수가 필요하다.
저작권을 넘기는 것에 비해 방영권 판매 가격은 낮다. 방영권을 구매하는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지불 가능한 최대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대략 20%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한다고 했을 때 방송사가 벌어들일 수 있는 총 수익은 해당 프로그램 광고 시간의 완판과 재방송 광고 시간의 완판 등을 합쳐서 대략 200억 원 내외다. 그러나 성공가능성이 도박에 비견되는 콘텐츠 시장을 감안하면 최대 지불 금액은 대략 100억 원 미만일 가능성이 높다.
김은숙 작가 정도가 그나마 이정도의 예상 금액을 상상할 수 있을 뿐, 다른 작가라면 지불 가능 금액이 더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방송사의 기본적인 이익금과 혹시도 모를 실패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스터 선샤인>(tvN)은 SBS와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tvN으로 방송사가 바뀌었다. SBS는 방영권만을 기준으로 회당 3~5억 원을 제시(20부작일 경우 60억~100억 원)했다. 통상적인 수준의 드라마였다면 계약이 체결되었을지도 모른다. 김은숙 작가의 <태양의 후예>(KBS)는 초기에 200억 원 예산 규모를 넘는 실적을 얻어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400억 원 대작일 경우에는 힘들다. 다른 연쇄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SBS로서는 제작사의 기대만큼 지불할 수가 없었다. 반면에 tvN은 수년간에 걸친 광고 역량을 발휘해서 다양한 협찬 및 간접 광고를 붙이고, CJ의 요식업 등과 연결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위험도는 높지만 상대적으로 SBS 대비 위험도를 낮출 수 있는 구조를 가졌다. 단순히 같은 계열사라서가 아니라, 고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업 구조를 갖춘 탓이다.
제작사가 부담할 수 있는 위험도는 방송사로부터 지불받는 선판매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제작비용의 크기다. 금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위험도도 높아진다. 그래서 해외 시장 판매 수익이 중요해진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면,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넓히기만 하면 된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CJ는 판권 사업이나, 기타 부가적인 사업도 같이 한다. 만약 깐깐하게 모든 것을 간섭하려고 한다면 제작사들은 거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율성을 최대한 인정해 준다면 금상첨화다. 이는 각 회사별로 운영 방식이 차별화되어 있다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화담>은 비교적 독자적으로 사업을 개척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KPJ>는 기획쪽에 강화되어 있어서 ‘스튜디오 드래곤’과 협력 비중이 높다. 즉, 개별 자회사의 선택에 따라서 협력 비중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개별 자회사들의 자율성이 인정받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율성도 인정받고, 꿈을 꿀 수 있는 규모가 있으며, 해외 판매 등 금전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면, 기꺼이 CJ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400억 원이 들어간 <미스터 선샤인>(tvN)은 그 자체로 상징이고 중요한 이정표다. 콘텐츠 시장의 위험도를 감안한다면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도박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 영화가 이제 겨우 200억 원 언저리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광고 서비스에 의존하는 드라마가 최고가의 영화 두 편을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산업적 측면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이것이 가능한 것은 ‘스튜디오 드래곤’이 위험을 감당할 수준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규모는 결정적이다. 2018년 현재 ‘스튜디오 드래곤’은 대략 25편 정도의 프로젝트를 제작 중이다. 대부분의 제작사들이 1년에 2~3편 정도 만드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획기적이다. 국내에서 연간 소비되는 드라마가 대략 총 80~100여 편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스튜디오 드래곤’이 25~30% 정도 시장을 점유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이 중에는 제작 전체를 감당하는 프로젝트도 있고, 기획만 하고 다른 사업자와 제휴를 하는 모델도 있다. 하지만 제작 편 수는 그 자체로 규모다.
제작편수는 수익성은 물론 위기관리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제작 편 수가 많으면 그만큼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파산이 일상적인 국내 제작 시장에서 자리를 지켜왔던 <삼화 프로덕션>의 예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화와 달리 방송은 미리 방송사 등과의 협의를 통해서 영상 제작을 하고 일부의 경우에는 해외 사전 판매까지 이루어지는 시장인데도 불구하고, 수익성의 위험은 있다.
영화시장에서 평균적으로 10편을 제작해 1편이 성공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면, 방송시장은 대략 6편중 1편이 성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튜디오 드래곤’은 제작 편 수를 늘리면서 그 위험도를 낮추었다. 위험도가 낮아지니 자연스럽게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규모의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스튜디오 드래곤’으로 인해 제작사가 방송사에 얽매이지 않고 드라마 콘텐츠 그 자체로써 사업을 확장할 수있는 구조가 생겼다. 이전의 제작사의 사업모델이 가내수공업의 성격이 강하고, 사실상 하청업체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방송사와 힘을 겨룰 수 있고, 덕분에 저작권을 확보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프로덕션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늘어난 제작 편수를 온전히 감당하려면 자사 채널만 고집해서는 안된다.
다른 채널에도 방송 프로그램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몬스터 유니온>(KBS)이 여전히 자기 채널을 고집하는 것과는 다르다. ‘스튜디오 드래곤’이 다양한 채널과의 교류로 보편적인 영상물 제작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것에 비해서, <몬스터 유니온>(KBS)은 근친으로 인한 기형이 발생할 위험 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타 채널 사업자가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스튜디오 드래곤’의 도전적 운명인 반면에, 내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택해 주는 자사의 채널이 있기에 안주할 수 있는 <몬스터 유니온>의 안정적 운명은 결과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파생상품을 상상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단기간에 의미있는 머천다이즈(Merchandise) 사업을 하긴 어렵다. 현재 대부분의 머천다이즈는 애니메이션에 기반한 캐릭터 사업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드라마 제작에 최적화되어 있는 현 시점에서 ‘스튜디오 드래곤’에게 머천다이즈는 당장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머천다이즈를 제외한 파생상품의 경우 미디어의 힘을 커머스로 확장시키는 그림은 상상해 볼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PPL 협찬 규모를 글로벌 영역까지 확장시키는 방법도 그 중의 하나일 수 있다. 아직까지 국내 시장의 광고주들은 해외 시장까지 염두에 두고 PPL을 하지는 않는다. 해외에서 반응이 있다고 해도 그 효과는 그냥 덤일 뿐 PPL 정산 시에 그 부분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해외 시장을 겨냥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고, 의미를 가지게 되면 그 때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소니(Sony)가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PPL을 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 드라마 시장에서도 열릴 수 있다고 ‘스튜디오 드래곤’은 보고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글로벌은 상수여야 한다. 이 대목에서 최진희 대표는 일본 사례에 빗대어 국내 시장의 한계를 명확히 짚어내고 있다.
그에게 글로벌은 단순히 동남아 시장을 의미하진 않는다. 국내 제작 시장에서는 <로맨틱>물이 아니면 글로벌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이때의 글로벌의 의미는 동남아 정도다. 동남아 시장은 상대적으로 지불 능력이 낮기 때문에 고비용의 드라마를 만들 여지가 낮고, 일과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 드라마를 시청하기 때문에 가벼운 내용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로맨틱 코미디 정도가 수용될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일부 국가에서 한류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곤 하지만, 개별 드라마의 특성에 기인할 뿐 구조적이지 않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게 되면 대작물을 기획, 제작한다는 건 불가능해지고, 결국 북미의 영상 콘텐츠와는 경쟁이 불가능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스튜디오 드래곤’이 그리는 글로벌은 중국과 동남아를 넘어선 시장이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보고 있는 것이 바로 장르물이다. 지금은 넷플릭스와 제휴해서 글로벌 시장 진입을 꾀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장르물과 같이 특화된 콘텐츠로 글로벌 시장과 직접 맞짱을 뜨고 싶다는 생각을 감추지 않았다.
제작시장에서도 나름의 상식이 있다. 그 상식을 거스르는 사업자가 ‘스튜디오 드래곤’이다. 국내 시장이 아닌 글로벌을 지향하고, 동남아가 아닌 세계를 지향한다. ABC나 디즈니가 ‘스튜디오 드래곤’이 제작한 드라마를 상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발칙한’ 사업자다. 그렇게 한국 시장에 새로운 모델이 등장했다.
‘용’은 승천해야 한다.
* 이 글을 다 써서 보내고 난 뒤에 <스튜디오 드래곤>의 '미스터 션사인'이 넷플릭스에 총 300억원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tvn의 방영권과 넷플릭스 공급 계약만으로도 제작비의 대부분을 회수했다. 400억 규모에 걸맞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하는 <방송트렌드&인사이트> 2018년 1월호(Vol. 14)호에 게재된 것을, 관계자의 허락을 받아 브런치에 올린다. 해당 사이트에서 PDF 파일을 받으실 수 있으니 참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