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탄생
1989년 타임워너(Time - Warner)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당시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출현이다. 출판-케이블-영화-TV제작-음악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미디어란 이름의 모든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기업이 되었다.
Time-Warner는 하이폰이 의미하는 것처럼 특정 주체가 인수 혹은 매각한 것은 딜은 아니다. 50:50의 주식 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진 대등한 합병이었다. 출판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였고 재무적으로 탄탄한 Time과 영상 제작 시장에서는 굳건한 위치를 기록하고 있으나, 비디오 게임 진출로 인한 손실과 제작 산업의 불안전성으로 고민하는 Warner 간에 상호 보완적 관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번 합병으로 타임은 출판을 넘어선 종합 미디어 사업자로 도약할 수 있게 되었고, 워너는 재무 안정성을 얻을 수 있었다.
합병 법인인 Time Warner의 CEO 자리는 스티븐 로스(Steven Ross)에게 돌아갔다. 재무 안정성은 뛰어나지만, 지는 사업이었던 출판 산업과 HBO를 비롯 영상 시장의 성장이 돋보이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영상 제작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스티븐 로스가 가장 적합한 탓이었다. 스티븐 로스의 CEO 취임에 대해서 합병 법인 간 이견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티븐 로스의 타임 워너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92년 스티븐 로스가 전립선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스티븐 로스(1927~1992)의 사망과 제럴드 레빈(Gerald Levin)의 등장
주차장, 청소업, 장의사 사업을 하며 성장했지만, 워너 브라더스를 인수한 뒤, 기존 사업을 정리했던 결단력과 과감성을 가지고 있었던 스티븐 로스다. 잭 워너가 워너 브라더스의 초석을 깔았다면, 스티븐 로스는 워너의 정체성을 확립한 사업가다. 인수합병을 이끌었고, 노트를 들고 다니며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경창하는 등 화합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인물이다. 비록 아타리를 인수하면서 힘든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타임과의 합병을 이끌어 내면서 워너를 글로벌 1위 미디어 회사로 만들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반면에 레빈은 조용하고 신중한 리더로 평가받는다. 전략적 사고와 계획을 중시했고, 기업의 구조와 방향성을 체계화시키는데 능숙했다. 소위 창업가들이 특유의 직감과 촉으로 시장을 판단했다면, 레빈은 구조를 짜고 운영 구조를 만들었다. 원래 타임의 법무팀에서 시작한 레빈은 돌란(Charles Dolan)이 구상하고 주도한 HBO(Home Box Office)의 사업 모델을 만들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HBO 개국이 조력하고, 초기 운영을 이끈 레빈은 나중에 HBO가 케이블 대표 프리미엄 채널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실상 돌란이 Time의 투자를 받아 HBO의 콘셉트를 잡고 구체화시켰다면, 레빈은 이를 실체화하고 성장시킨 사람인 셈이다.
따라서 로스가 사망하고 난 뒤, 레빈이 그 뒤를 이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워너의 로스가 타임 HBO의 레빈을 눈여겨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1990년대는 케이블의 시대였다. ABC, NBC, CBS와 같은 전통의 지상파들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미국의 대표 채널은 HBO와 CNN이었다. 이런 HBO의 수장인 레빈이 타임-워너의 간판이 되기에 충분했다.
레빈, CNN을 품다
타임워너는 미국의 대표 놀이동산(amusement park)인 SIX Flags를 인수한다. 디즈니의 디즈니월드, 유니버설의 유니버셜 스튜디오(Universal Studio)처럼 영화사업은 놀이동산과 궁합이 맞았다. 디즈니는 1955년 캘리포니아에 디즈니랜드를 건립하고, 1971년 플로리다에 디즈니월드를 세웠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방문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스튜디오를 관광사업화 시켰지만, 디즈니랜드를 목도하고 난 한참 뒤인 1964년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를 건립했다. 그리고 1990년 유니버설 스튜디오 플로리다를 개장했다. 영화판의 경쟁자들이 앞다투어 제작과 theme park를 연결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 시장 초창기부터 경쟁해 왔던 타임워너가 1990년 식스 플래그를 인수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다만 디즈니와 유니버설이 영화자산을 기반으로 놀이동산인 Theme park를 연결시켰던 반면에 식스 플래그와 타임워너는 그다지 궁합이 맞는 조합이긴 했다. 결국 1998년 타임워너는 비핵심 자산 정리의 일환으로 식스 플래그를 매각했다.
레빈의 이름은 1996년 CNN으로 대표되는 Turner Broadcasting System(TBS)을 인수하면서 높아졌다.
1980년 '24시간 뉴스'를 표방하며 등장한 CNN(Cable News Network)이다. 걸프전과 천안문 사태 등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면서 뉴스 시장의 새로운 이정표를 찍었다. 그러나 사업을 확장하면서 엄청난 부채를 짊어진 테드 터너는 글로벌 확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 큰 미디어 기업과의 결합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당시 상황에서 테드 터너의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이 타임워너 밖에는 없었다. 디즈니는 ABC를 인수한 상태였기도 했지만, 가족 친화적인 콘텐츠의 성격상 24시간 뉴스 채널은 부담이었다. 당시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의 News Corporation은 이미 FOX NEWS를 시작한 상황이기 때문에 굳이 CNN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고, Viacom은 Paramount Pictures와 같이 영화 제작 등에 집중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테드 터너를 껴안을 수 있는 사업자는 타임 워너뿐이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40613058000009 총 75억 달러 규모의 딜이었다. 다만 이번에도 주식 교환 방식으로 거래는 이루어졌다. 이로써 타임 워너는 케이블 시장의 상징적인 존재인 HBO와 CNN을 모두 소유한 기업이 되었다. 또한 사실상 미국 케이블 시장에서 우리나라식의 종편에 가까운 TBS를 보유함으로써 케이블 라인업이 가장 탄탄한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이미 Comcast에 이어서 2위 케이블 사업자이기도 했던 상황에서 케이블 시대의 핵심 세력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다만 테드 터너와 레빈은 그다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진 못했다. 창립자는 그 특유의 직감이 있다. 그것이 자신이 사업을 이끌어 성공했던 방식이었기 때문에 이를 버리지 못한다. 반면에 레빈은 타임의 직원으로 들어와 타임워너의 CEO가 된 사람이다. 창업자와 경영자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터너는 CNN 등을 타임 워너에 넘긴 후에 타임워너의 부회장으로 합류했고, 그 직위에 맞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으나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터너가 회의 중에 종종 '우리는 너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는 등 자신의 계획이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화를 시키면 창업자는 터너는 과감하고 진취적이었던 반면 타임워너의 현 경영진은 보수적이었다. 흥미로운 건 세기의 합병 실패로 기록된 AOL-TimeWarner 합병은 레빈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데 비해서 터너는 이를 가장 격렬하게 반대했었다. AOL이 상징성도 없고, 오히려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모든 부문이 안정적인 성과 기록
합병을 통해 타임 워너는 영화, TV, 케이블, 출판, 음악을 모두 소유한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가장 안정적인 성과를 기록한 시기였다. 영화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좋은 친구들>(1990), <JFK>(1991), <매트릭스>(1999) 같은 작품들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성장세를 이끌었고, TV 제작에서도 <Friends> (1994~2004)와 <ER> (1994~2009) 등의 인기 시리즈가 터지면서 시청률과 수익 모두를 확보할 수 있었다. Time Warner Cable은 미국 2위 케이블 사업자로 성장하고 있었고, HBO는 <The Sopranos> (1999~2007), <Sex and the City>(1998~2004)를 터트리며 프리미엄 채널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출판 역시 Time, Fortune, Sports Illustrated가 여전히 각 영역에서 영향력 있는 매체로 자리 잡고 있으면서 안정적인 재무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음악 역시 마찬 가지였다.
불안이 발목을 잡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1990년대 후반부터 뭔가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타임과 워너의 합병 때만 하더라도 글로벌 1위 미디어 기업의 지위를 유지했다. 남들도 이를 따랐다. 미디어 기업 간 합종연횡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때가 아마도 가장 미디어 집중(media concentration) 이슈가 강하게 시장을 지배하던 시점이지 않았나 싶다. 지금의 구글 등이 세계시장에서 가지고 있는 규모에 비하면 별게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의견을 전하는 미디어가 특정 사업자의 손안에 들어간다는 발상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온갖 자료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Big 6 기업들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하면서 미디어 시장 내 '글로벌'이 화두가 되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디지털 콘텐츠와 온라인 서비스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출판 시장이 먼저 철퇴를 맞았다. 세상은 다들 디지털 전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오늘날 AI 물결에 버금갈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던 변수였다. 마치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기도 했다.
지나가는 시간의 속도를 자생적으로 따라가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한 레빈은 인터넷 및 디지털 시장에서 성장하고 있는 사업자와의 합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당시 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사업자였던 AOL은 역설적으로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있는 업체가 파이프라인에 올라탈 수 있는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AOL은 타임워너를 지목, 합병을 제안했다.
디지털 시대에 뒤처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레빈은 이를 수락했다. 이것이 레빈의 오점이 될지 그때는 몰랐다.
가장 멋진 합병이라고 세인의 평가를 받았던 Time - Warner 간 합병이었다면
가장 실패한 합병으로 평가받은 AOL -TimeWarner 간의 합병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5. 슈퍼맨으로 흥하고, 아타리로 망하다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