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L, 타임워너를 인수하고 무너지다 (~2009)(7)
AOL (America Online), 인터넷 시대의 상징이 되다
1985년 비디오 게임용 온라인 서비스를 하던 회사가 있었다. Control Video Corporation이다. 이 회사가 1989년 피봇팅을 한다. 대중 인터넷 서비스 제공사업자인 AOL의 탄생이다. 당시 인터넷 서비스는 기술적으로 복잡했다. 전문가나 기관들 정도만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일반인들은 인터넷을 접하기도 어려웠고, 설사 접하더라도 재미나 효용을 느끼지 못하던 시절이다. 모자익이나 넷스케이프 같은 인터넷 브라우저가 등장하기 전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때 하이텔 등 PC 통신서비스가 시작되었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최초의 PC 통신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컴퓨서브(CompuServe)는 복잡한 명령 기반의 인터페이스와 가격이 높아서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1984년에 등장한 프로디지(Prodigy)는 그래픽 UI를 도입해서 관심을 끌었으나 콘텐츠와 서비스가 단조로웠다. 이런 상황에서 AOL이 등장했다.
1989년 10만 명 정도의 가입자로 시작한 AOL은 1991년에도 고작 15만 명 정도의 가입자를 모을 정도로 고전했다. 그러다 1993년 GUI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무료 체험용 CD 등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1993년 100만 명을 넘어서더니, 1995년에 500만 명을 넘어섰다. 윈도우 95 등장과 함께 넷스케이프 같은 인터넷 전용 브라우저가 등장하면서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해 1997년 900만 명이 모였다. 이때 정액제 요금제를 출시했다. 정액제 요금제는 시장을 점화했다. 1998년 1,600만 명, 그리고 2000년에는 2,6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회사가 되었다. 미국 내 제1의 ISP 사업자가 된 것이다. 오늘날 카톡이 있다면 그때는 AIM(AOL Instant Messenger)가 있었고, 채팅방, 게시판, 뉴스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 명실상부 최대 인터넷 기업이었다.
1위 사업자가 된 AOL은 그해 파격적인 합병을 단행했다. 그 규모만 하더라도 1850억 달러다. 당시로서는 최고, 최대의 합병이었다. 인터넷 붐의 아이콘이자 이메일과 채팅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던 선두기업인 AOL이 영화, 출판, 음악 등 독보적인 콘텐츠를 보유한 기업 간의 합병이었다. 이를 두고 "디지털 혁명의 정점"이라고 묘사할 정도였다.
AOL이 주도한 이 합병은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담대한 계획이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기술과 콘텐츠의 결합을 통해 "미래 미디어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야심 찬 시도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고, 그 플랫폼에서 세계 최고의 콘텐츠를 제공하며, 개인화된 광고로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이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인터넷 중심의 미디어 제국이 바로 AOL의 꿈이었다.
그들의 비전은 매우 분명했다. AOL의 플랫폼은 Time Warner 콘텐츠의 새로운 배급망이 될 것이었고, Time Warner는 AOL 가입자를 대상으로 광고와 구독 기반의 수익 구조를 만들 생각이었다. Time Warner의 영화와 TV 콘텐츠를 AOL 플랫폼에서 스트리밍 제공하고, AOL의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광고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더구나 지금은 D2C로 알려진 그 모델, AOL 가입자를 Time Warner 콘텐츠의 직판 대상으로 삼아 중간 유통 단계를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디지털 혁명의 리더가 되기에 충분했다. 사실상 오늘날 넷플릭스, 유튜브가 바로 그들이 상상하던 그 모습이었다.
이 당시 타임워너의 테드 터너(Ted Turner)는 이 합병을 강력히 비난했었다. 그러나 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타임워너의 CEO였던 Levin은 합병을 강행했다. 결과적으로 이 합병으로 인해 AOL 타임워너의 주식을 대량 보유하게 된 테드 터너는 합병 실패로 인해서 무려 80억 달러의 손실을 보게 된다.
합병 직후, 닷컴 버블이 붕괴되었다. AOL의 비즈니스 모델도 같이 무너졌다. 광대역 인터넷(broadband)이 보급되면서 다이얼업 인터넷이 시장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2,600만 명에 이르던 가입자 수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료 검색 서비스인 구글 등이 광고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입자 기반의 AOL 광고 시장 역시 주도권을 잃기 시작했다. 2002년 AOL 타임워너는 990억 달러의 영업권 상각을 기록했다. 미국 기업 역사상 최대 손실이었다.
그렇다고 야심 차게 스트리밍 서비스를 할 수도 없었다. 동영상이 돌아갈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구현하기엔 AOL의 기술력은 미흡했고, 세상의 기술도 부족해 가져올 수도 없었다. 당시 인터넷 속도와 시장 인프라로는 현대적 의미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불가능했다.
반면에 워너는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2001년에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가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기록했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연작물로 평가받는 해리포터 시리즈는 2011년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를 마지막으로 10년의 여정을 끝냈다. 총 제작비 16억 달러의 이 시리즈는 무려 91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다. 2001년 시작해 2003년 마무리를 한 3부작 <반지의 제왕> 역시 약 2억 8,100만 달러의 제작비로 총 29억 1,749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제작비 대비 10배의 수익을 거둔 작품이다.
TV에서의 성과도 만만치 않다. 1999년 첫 방송을 시작으로 2007년까지 이어졌던 <소프라노스>는 HBO의 시대를 과시했고,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방송된 <섹스 앤 더 시티>는 사회적 금기를 깨, HBO가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1년에 방영된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전쟁 드라마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 작품들은 모두 에미상과 골든 글로브상을 휩쓸었다.
으스대며 인수한 AOL은 실적이 곧두박질치고, 절치부심하며 인수당했던 타임워너는 역사상 최고의 성과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감정 골이 터지기 시작했다. AOL의 자유로운 인터넷 문화와 Time Warner의 전통적 대기업 문화가 끊임없이 충돌했다. 서로의 강점을 조화롭게 활용하기에는 실적 악화가 너무 심했다. 칭찬보다는 비난이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기업인 AOL가 높은 주가를 무기로 타임워너를 인수했지만, 닷컴 버블이 난 현 상황에선 타임워너가 훨씬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으니 너무도 당연한 상황이었다. AOL의 심각한 사업 악화는 타임워너의 발목을 잡았다. 타임워너의 콘텐츠 사업은 AOL의 인터넷 모델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했다. 서로의 비난이 정점을 이루었다.
2009년 AOL-타임워너는 AOL을 분리, 독립 기업화 했다. 더 이상 AOL 때문에 타임워너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던 탓이다. 분리할 때의 기업가치는 합병당시의 기업 가치 대비 93% 감소한 상황이었다. 역사상 이렇게 주목을 받았던 합병도 없었고, 역사상 이렇게 처참하게 실패한 사례도 없었다. 시작과 끝이 모두 역사의 페이지였다.
이후 AOL은 Verizon의 손에, 그리고 타임워너는 AT&T와 결합을 한다. 전 세계 통신사업자들의 새로운 BM을 모색하던 바로 그때였다.
AOL과 Time Warner의 합병은 시대적 상징이자 조급한 통합의 교훈으로 박제화되었다. 이들은 디지털 시대의 선구자가 되고자 했지만, 기술적 한계, 시장 변화의 속도, 조직 간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상상했던 많은 비전은 이후에 넷플릭스, 유튜브, 디즈니+와 같은 기업들이 실현했다.
5. 슈퍼맨으로 흥하고, 아타리로 망하다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