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극장다울 때 사람들은 극장에 온다는 그 단순한 명제
일본 애니가 한국 박스 오피스를 점령했다는 기사들이 하나둘씩 등장한다.
다양한 분석들이 등장한다. 한국 영화계가 팬데믹으로 멈춰 섰을 때 일본 애니를 접해서 팬층이 넓어졌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금번 일본 애니의 성공은 팬덤 사업에 기반하고 있다는 공통점에 기인한다며 한국 영화도 팬덤기반이 미래라는 주장도 한다. 심지어 일본 애니가 한국 영화 시장을 삼켜서 위기가 심화되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내가 궁금한 건 그 주장의 근거다. ChatGPT를 돌린 듯한 비슷한 분석은 반복적으로 나오지만 명확한 숫자와 근거를 제시한 글을 아직까진 찾지 못했다.
숫자와 근거로 이야기하면 좋을 법 한데 말이다, 20대의 주장은 보편성을 확보하지는 못했을 망정 자기 경험치에 근거하고 있기라도 하지만, 기성세대의 분석은 그마저도 없다. 살면서 <귀멸의 칼날>이나 <주술회전>을 보았을 것 싶기까지 하다. 아는 숫자는 귀멸의 칼날과 주술회전의 관람객 숫자뿐이다.
나라고 별 순 없다.
그러나 몇 가지 박스 오피스 자료를 뒤져보면 몇 가지 신기한 것들이 나오긴 한다. 우선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 박스 오피스에서 한국 영화 TOP 5와 일본 애니메이션 TOP 5를 보자. 한국 영화의 경우 2020년에 팬데믹의 영향을 받으면서 천만 영화가 사라졌다. 일본 애니는 <나의 이름은>이 360만 관람객을 동원한 것을 제외하고, 명탐정 코난이 대략 3~40만의 고정 관람객을, <짱구는 못 말려>가 2~30만 고정 관람객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괸점에서 보면 <나의 이름은>이 예외다.
2021년부터 2025년의 성적도 보자. 한국 극장은 팬데믹 이후에 다시 천만 관객 동원 작품이 생기긴 했지만, 5위권 영화의 관람객 수가 4백만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팬데믹 이전에는 5위권 영화면 대략 7백만 관객 동원).
반면에 일본 애니는 고정 관람객을 가지고 있던 <명탐정 코난>은 70만 선으로 늘어났고, <짱구는 못 말려>도 5~70만 선으로 늘어났다. 소위 영유아 및 초등학생의 절대 규모가 감소한 상황에서 동일한 품질의 작품들이 승수 효과를 발생하면서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다. 고정 관람객층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통계적으로 검증되지도 않 않았고 인과적 관계도 아니겠지만 한국 영화 관람객 수 감소할 때 일본 애니 관람객 수는 늘었다는 가설은 세울법하다.
이 대목에서 <귀멸의 칼날>을 다시 보자. 21년에 등장한 무한열차는 2백만 정도의 관람객을 동원했고, 25년 무한성편은 6백만 명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23년에 등장한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와 24년에 나온 <귀멸의 칼날: 인연의 기적, 그리고 합동 강화 훈련으로>은 50만 내외의 관람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동일한 팬덤의 영향력 있는 작품치곤 격차가 너무 크다. 따라서 영화의 흥행을 팬덤의 영향으로만 설명하는 건 무리다. 대신에 무한열차편과 무한성편이 각잡고 극장용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고, 상현집결과 합동강화훈련은 TV판을 모아서 극장용으로 재구성한 총집편이기 때문일 거라는 게 내 판단이다. 극장다움과 TV다움이라고나 할까. 팬덤은 알리고 이끌뿐 극장 좌석에 앉히는 건 극장다움이지 않을까
<귀멸의 칼날>만 그런 게 아니다. 주술회전의 경우에도 22년 <극장판 주술회전 0>의 경우에는 60만 정도의 관객만을 동원했다. 25년 <주술회전: 회옥, 옥절>도 겨우 18만 정도의 관람객을 확보한 뒤에 이젠 순위가 떨어지고 있어 20만을 겨우 채우지 싶다.
반면에 <극장판 체인소맨>은 250만 명을 향해 달려간다.
이 역시 팬덤으로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30년이 된 명탐정 코난은 2억 7000만 부가 팔렸고, 귀멸의 칼날도 2억 3천만 부가 팔린 작품이다. 주술회전도 1억 부를 넘겼고, 체인소맨은 이제 겨우 3천만 부를 넘긴 작품이다. 하이큐는 또 어떠한가?
특히 주술회전과 체인소맨이 둘 다 2018년에 시작한 작품이라고 친다면 팬덤의 규모 차원에선 주술회전이 체인소맨보다 많으면 많았지 작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극장 영화 성적은 체인소맨이 압도적이다.
그래서 팬덤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지나친 억측이다. 자료는 팬덤의 규모가 극장 영화의 흥행성적을 절대 지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
난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다. 극장에서 보기에 아깝지 않은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체인소맨과 귀멸의 칼날을 보시라. 거기에 보이는 애니는 우리가 지면으로 TV로 상상하지 못했던 압도적인 장면들이 나온다는 것을.. <체인소맨>은 극장용으로 만든 것이지만, <주술회전>은 외전이거나 TV판의 총집편이니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극장은 그 재미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장 극장다운 작품을 만들었기에 갈 뿐이다.
그러기에 오히려 영화인들은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극장다운 작품을 만들기만 하면 우리도 관객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설사 좀 못 만들면 일본 애니가 자리를 채워주어서 극장이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봄직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