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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May 11. 2022

이야기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Thi Bui's The Best We Could Do를 읽고

Thi Bui's The Best We Could Do

두 학기에 걸쳐 Granville 교수로부터 ASTU(Arts Studies)⁠—사회과학과 인문학 연구에 대한 글쓰기 수업—강의를 들었다. 수업 첫날 난민(Refugee) 문제를 다룰 거라는 수업 개요를 읽으며 내가 했던 걱정을 기억한다. '난민 이야기라고? 얼마나 무거울까.' 한국 사람인 내게 난민이라는 대상은 대상으로서만 존재했다. 난민이 아닌 내게 난민들의 존재는 내가 사는 세상 밖의 보이지 않는 세계였다.


그의 수업에서 나를 가장 크게 움직였던 이야기는 Thi Bui의 <The Best We Could Do(TBWCD)>다. <TBWCD>는 작가 부이의 그래픽 회고록으로 미국에서 베트남으로 건너온 난민-이민자인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갓난아기일 때 베트남을 떠난 이후로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자란 부이는 부모님을 인터뷰하며 베트남을 알고 싶다. 부모님이 겪었던 역사와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을 이해하고 싶다.


부이의 아빠, Bố 는 전쟁 속에서 부모를 잃고 배고픔과 공포를 견뎌야 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베트남이 독립했던 해인 1975년, 나라에서 벌어지던 정치적인 폭압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Má(부이의 엄마)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보트를 타는 난민이 된다. 난민 캠프에서의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Bố가 미국 땅을 밟았을 때 부이는 아빠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의 배는 비어 있었다, 그의 용기가 닳아버린 것과 같이(his belly was as empty as his morale was low)". 미국에 가서 프랑스어 교사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건너온 Bố의 기대와 달리 새로운 나라에서 그의 가족이 마주한 현실은 이민자에 대한 멸시였다. 이후로 Bố 는 현실을 살기보다 삶을 떠나고 싶어 한다. 세상과 동떨어진 채 몸을 떠날 수 있다는 초자연적인 상상력 속에 자신을 가둔 채 산다. 전쟁에 대한 기억, 죽음을 무릅썼던 보트행, 오직 생존하기 위해 버텼던 난민 캠프에서의 경험, 이민자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 속에서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Bố 는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사는 게 버겁다. Bố가 겪는 트라우마를 로렌 벌란트는 느린 죽음("slow death")이라고도 말했다. 부이는 아버지가 전하는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와 담배 연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난민의 시각으로 쓰인 난민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내가 걱정했던 것처럼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했다. 나는 부이가 그리는 Bố 를 읽으며 내 아빠를 생각했다. 나 또한 아빠가 폈던 담배 연기와 그가 풍겼던 진득한 술냄새에 둘러싸인 어린 시절을 났기 때문이다. Bố가 주술을 빌려 몸을 떠나고 싶어 했던 것처럼 내 아빠는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잊고 싶어 했다. 나는 아빠의 우울과 알코올 중독이 그가 겪었던 시대가 그에게 물려준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우울 뒤에 내가 보지 못한 그의 시간을 상상할 때에만 나는 조금이라도 내 아빠의 불행을 이해할 힘을 얻는다.


인류애를 홍보하는 정권 및 단체들은 난민들을 평범한 일상을 한 번도 소유해보지 못한 사람들처럼 그린다. 그들이 각색하는 난민 이미지란 천막 아래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목소리 없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에 반하는 대안적인 이야기로써 <TBWCD>가 가지는 가치는 난민의 시각으로 쓰인 개인적인 가족사를 통해 난민들에게도 존재하는 일상적인 삶의 모습—예를 들면, 부모와 갈등하는 자식, 자식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 자라나는 자식, 부모의 슬픔을 바라보게 되는 자식의 모습 같은 것—을 그린다. 부이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내러티브 속에서 나는 Bố 되거나 Ma가 되거나 Bui가 됐다. 내 마음이 발견한 연결지점을 통해 나는 이야기 속에 마음을 담그는 나를 발견했다. 난민을 단순한 대상으로 관찰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난민, 그 미신을 뒤집는 대안적 이야기.

유발 노아 하라리는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인간들이 집단적으로 살아남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로서 이야기 힘에 대해 말했다. 그는 많이 사람들이 함께 하나의 미신(이야기)을 공유할 때에 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집단이 믿는 이야기가 곧잘 정답이 되어버리는 인간 사회에서 난민에 대해 우리가 주로 전해 듣는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UNHCR(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의 내러티브를 생각해보자. 난민들을 지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그들마저 난민을 비정치화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非)난민들의 동정심을 자극할 목적으로 그들은 난민들을 정치적인 목소리를 가질 수 없는 의존적이고 나약한 존재로 그린다. 그들이 쓰는 기사 속에서 난민들은 머릿속에서 선뜻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수가 되어 파도처럼 밀려오는 존재들이다.


난민을 목소리 없는 침입자로 만드는 내러티브에 맞서, Bui는 난민을 묘사하는 파도의 이미지를 역전시킨다. 먼저 부이는 그가 태어난 나라 베트남을 이해하기 위해 '기억의 파도'를 타고 시공간을 건넌다. 그리하여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Bố 와 Ma가 겪어야 했던 역사를 바탕으로 그들의 삶을 다시 이해하는—방식으로 그의 부모에게 가닿는다. 여기서 파도는 난민 이민자가 되기 이전의 Bố 와 Ma가 가졌던 삶의 배경을 보여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파도를 타고 그들의 과거를 되돌아봄으로써 비(非)난민이 난민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은 넓어진다. <TBWCD>에서 파도는 난민을 집단화하는 대신 자세히 들여다보자는 초대의 신호다. 파도를 타고 시작된 이야기는 부이의 아들이 파도의 물결 속에서 자유를 향해 헤엄쳐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파도는 비(非)난민들의 관심을 초대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난민이 가질 수 있는 자유로운 미래를 상징한다.

난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난민은 단지 수적인 밀려옴이 아니다. 난민의 시각에서 난민을 이해하는 일은 한 개인들이 가진 고유한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이고 그들이 나아갈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상상하는 일이다. Nguyen과 Phu가 말한 것처럼 비주류적 글쓰기—힘을 가진 단체에 의해 쓰인 이야기가 아닌 당사자의 시각에서 당사자가 쓴 이야기—는 난민을 '문제'로 규정하는 사회의 만연한 고정관념을 부수고 난민들이 스스로를 '해결책'이라고 바로 보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덧붙여 Sigona는 비주류적 글쓰기란 텅 빈 백지에서 창작되는 이야기이기보다는 절대적으로 읽혀오는 이야기를 뒤집는 방식을 통해 기존의 고정관념을 부수며 대안적인 시각을 불러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난민 침입자의 이미지를 전복하여 자유를 향해 헤엄쳐가는 해방적 미래의 이미지를 재창작한 부이의 <TBWCD>가 그에 대한 적절한 예다.

 

우리에게 난민에 관한 대안적인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개인적인 공감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공감하는 개인들이 사는 공동체에서는 경쟁과 혐오가 이기는 대신 이해와 친절이 기준이 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법적/사회적/문화적/정치적으로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공생이 가능하고, 공생을 보고 배우며 자라는 어린아이들은 건강한 어른들로 자라날 수 있지 않을까.


체스판 위의 개미들과 보트 위의 우리들

부이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자행했던 강대국들을 체스판 위의 거대한 체스 피스로, 거인들을 피해서 도피하는 베트남 서민들을 개미로 그렸다. 열강의 힘센 사람들이 놓는 수에 의해 좌우되는 역사 속에서 개인들은 목소리 없이 죽어가거나 가까스로 생존을 모색할 뿐이다. 부이네 가족도 생존하기 위해 배를 타고 베트남을 떠난 수많은 난민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그들을 '보트피플'이라고 부르며, 불쌍해하거나 불쾌해한다. 난민이라는 단어는 이미 너무 가난하고 불쌍해야 마땅한 이미지로 우리 뇌리에 자리 잡았고 우리는 그들을 다루는 인류애적 뉴스 기사를 보면서 그들이 난민이라는 사실과 나는 난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자각한다.

 


구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난민과 난민 아님이 아니라, 권력과 권력 아닌 것들의 세계에 살고 있다. 난민이 처한 상황의 한계를 동정하기 이전에, 난민을 도피하는 개미로 만든, 체스판 위에서 대결하는 소수 권력자들의 욕망에 하이라이트를 비춰야 한다. 난민을 보트피플로 분류하고 그들이 건널 수 없는 벽을 쌓기 이전에 어쩌면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세계 자체가 거대하고 위태로운 보트 위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지금 디디고 있는 이 땅이 절대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기반이라고 얼마나 확신할 수 있는가. 무엇이, 누가 그들을 보트 위로 내몰았는지 생각해보는 일이 그들에게 난민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놓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보트 피플을 만드는 시스템과 그 안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고 불리는 권력자들의 만행을 고개를 들고 쳐다봐야 한다. 비(非)난민과 난민이 그릇된 혐오 대신 상호 호혜적인 관계로 서로를 마주할 때에야 권력이 권력 아닌 것들을 두려워하는 드문 일이 가능하다.  


이야기와 시스템

세상에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한 목소리—더 정확하게는 가장 소외받는 목소리—를 듣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다. 난민의 시각에서 쓰인 난민에 관한 대안적인 이야기를 읽는 일은 그들의 불쌍함을 듣고 내가 쥐고 있는 운에 감사하는 한계를 넘어서게 만든다. 나는 <TBWCD>를 읽으며 부이 가족의 슬픔과 희망과 욕망과 갈등을 들었다. 나와 그들 모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혹은 권력자들의 게임 속에서 살 길을 모색하는 인간 개미 들일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리고 나는 난민이 처해있는 현실의 부정의에 대해 의문을 던진지기로 한다. 부정의를 재생산하는 시스템에 반하는 나의 개미 목소리를 다른 개미들의 편에 더한다.


Ella Saltmarshe가 <Using Story to Change Systems>에서 말한 것처럼 나 또한 이야기가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읽은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일으킨 인식의 변화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읽는 일,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 언제는 공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공감을 만드는 이야기는 언제나 존재하고 나는 그런 이야기들의 힘을 믿기로 한다. 전쟁으로 사람들이 삶을 잃어가고 있고, 낙태를 금지하자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전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우경화가 만연하다. 희망에 대해 말하는 일이 점점 더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 나는 이야기들에 기대서 내가 사는 보트 위의 시간을 견뎌내려고 애쓴다. 힘에 의해 쓰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시선에서 쓰인 그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삶을 살아내는 모든 존재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나는 내가 나일 수밖에 없어서 가지는 한계를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서 가도록 한다. 부이가 밝히듯 역사란 다름 아닌 개인들의 이야기여야 할 때, <TBWCD>는 난민의 시각에서 쓰인 난민의 이야기로서 이야기가 전해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을 내게 줬다. 작은 개인의 목소리가 다른 작은 개인의 마음을 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함께 이어질 때에만 정의를 모르는 권력의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다. Bui의 이야기가 작은 파도 물결처럼 나에게 와닿은 것처럼 그의 이야기에 대한 나의 이야기도 내 옆사람들에게 작은 찰싹임으로 가닿길 바란다.



인용

Bui, Thi. The Best We Could Do. Abrams ComicArts, 2018. 

Nguyen, Vinh, and Thy Phu. “Introduction: Critical Refugee Studies in Canada.” Refugee States: CriticalRefugee Studies in Canada. University of Toronto Press, 2021. 

Sigona, Nando. “The Politics of Refugee Voices: Representations, Narratives, and Memories.” The OxfordHandbook Handbooks Online, 1 June 2014, p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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