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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Aug 29. 2022

밴쿠버 렌트비가 또 올랐다

우리는 알콩달콩 살 수 있을까

집주인 디보가 렌트비를 올렸다. 식을 줄 모르는 인플레이션에 밴쿠버의 렌트 대란까지 겹쳐져 어쩌면 착한 디보도 렌트비를 올릴지 모를 일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의 통보를 마주하고 나니 가난한 우리 두 사람이 계속해서 밴쿠버에 사는 건 무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식으로 렌트가 착실히 오를 예정이라면 우리 둘은 조만간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좀 더 동쪽으로, 캘거리로 되돌아갈까 생각 중이다. 캘거리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었음에도 밴쿠버로 옮겨왔던 건 밴쿠버에는 바다가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던 것만큼이나 밴쿠버에서 다시 캘거리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 이유 또한 그만큼 단순하다. 캘거리 렌트는 그나마 이렇게 미치지 않았으니까. 밴쿠버를 이야기할 때 이곳의 렌트비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계획이라면 그건 반틈 짜리 이야기가 될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밴쿠버에 사는 사람들의 태반이 수입의 반 이상을 렌트에 받치며 산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곳의 비싼 렌트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건 분명 반 어치의 핵심을 놓치고 떠드는 일이 될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하기 전까지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니며 렌트를 찾아 헤매던 8월의 어느 날들을 나는 괴롭고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직 여름 해가 쨍쨍한 날들에 겨드랑이와 등판을 땀으로 적신 채로 10개가 넘는 집들을 차례차례 돌아다니면서, 나는 나 자신을 증오해야 했다. 바다가 있는 밴쿠버에서 살고 싶다는 애초의 내 소망이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과욕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비싸 봤자 얼마나 비싸겠냐며, 한 달에 1000불이면 살만한 집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세상 물정 모르는 내 어리석음이었다. 한 달에 천불짜리 렌트를 검색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1000불과 가장 가까운, 햇빛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곧 쥐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작고 음침한 방을 실제로 마주하는 건 더 힘든 일이었다. 절망에 빠져 있던 내게 한 줄의 빛처럼 나타난 값싸고 정상적인(?) 렌트마저 사기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나는 그때지 내가 붙잡고 있었던 '바다 있는 밴쿠버'에 대한 모든 희망을 접을 수 있었다. 그래 될 대로 되라지, 이도 저도 안되면 캠핑 사이트에 텐트라도 치고 살겠다고 침을 삼키며 마지막으로 찾은 집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1000불에서 딱 100불만 더 더하면 되는, 청소만 좀 빡세게 하면 충분히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집. 고개를 갸우뚱하는 영학이를 뒤로하고 무심하게 집을 소개하는 집주인 디보의 말을 끊으며 나는 지금 당장 bank statement를 뽑아 오겠다고 급한 약속을 했다. 마음을 바꾸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영학이가 되물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밴쿠버에서 이보다 더 바랄 수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나처럼 밴쿠버가 본거지가 아니라 렌트를 구해 사는 주변 친구들에게 내가 내는 렌트비를 알려줬을 때 그들은 놀란 눈으로, 도대체 어떤 곳에서 사는 거냐고 물었다. 어떤 곳이라니? 방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주방과 연결된 거실도 있는, 그 거실에 공짜로 얻은 꽤 큼지막한 나무 테이블도 둘 수 있는 꽤 실용적인 집이라고 말해주면 그들은 정말 싸다는 말을 연신 되풀이하며 나는 절대 감당할 수 없을 자신들의 렌트비에 대해서 넋두리한다. 친구들처럼 1300불짜리 방 하나를 온전히 혼자서 부담해야 하는 경우는 렌트비에 대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뛰어넘은 탓에 상상해본 적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방 건너편에 화장실이 있는 탓에 옆 방 거주자 디보의 밤늦은 샤워 소리와 환풍기 소리를 20분쯤 견뎌야 한다는 것과 세탁기를 쓸 때 싱크대에 호스를 연결해야 하는데 호스가 빠지면 물 홍수가 난다는 불편함을 빼고는 영학이와 나는 우리가 사는 공간에 그저 만족한다. 여름에는 햇빛이 잘 들고 난방이 가능한 겨울에는 따뜻하게 몸을 뉘일 수 있어서 좋다. 양 옆의 이웃들은 눈이 마주치면 웃는 사람들이라서 좋고 디보는 쓸데없는 질문을 묻지 않은 예의 바른 집주인이라서 좋다. 매주 금요일에 장을 보기 위해 찾는 superstore는 차로 5분 거리에 있고 매주 달리기를 위해 찾는 공원들은 10분이면 닿을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카페를 가려면 15분은 걸어 나가야 하지만 그것도 뭐, 나가는 게 귀찮아서 집에서 커피를 끓여먹다 보니 커피값을 아끼게 된다는 장점이 된다. 해가 뜰 때마다 기다란 빨랫줄에 이불을 널고 바스락거릴 만큼 햇볕에 말릴 수 있다는 것도 내겐 기쁨이다. 이곳에 살면 살수록 이만한 가격에 우리 두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 같아서 더 바랄 게 없었다. 이렇게 안분지족 하려고 애쓰는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렌트비가 오른다니. 렌트가 인상되지 않아도 충분히 불안정한 학생 신분인 나는 렌트비 인상 덕분에 또다시 이주를 생각한다. 4년 동안 주 40시간의 최저시급 노동을 하며 꼬박꼬박 모아둔 돈이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저금통일 때 나는 렌트비 인상에 휘청거리며 또다시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한다. 대학 생활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까 그나마 조금 덜 비싼 캘거리로 옮겨가는 게 지금의 내 분수에 맞는 일이라고 되뇐다. 이보다 더 바랄 수도, 좋을 수도 없는 곳이 너무 비싼 곳이 되어버리면 놓아줄 수밖에. 1년 동안의 밴쿠버 생활 이후에 이곳에 대한 내 감상평이 아무나 바다가 있는 밴쿠버를 꿈꿀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좌절이라는 데에 나는 4일간 우울했고 이제 막 우울에서 깨어났다.


며칠 전 CBC 뉴스에서 이스트 밴쿠버에 텐트를 치고 사는 홈리스들의 삶이 조만간 철거될 거라는 뉴스를 전해 들었다. 지금 사는 렌트를 구하기 전에 한 달간 헤이스팅 거리에 살며 14번 버스를 타고 통근해야 했던 때에 나는 아침마다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홈리스들의 텐트촌을 마주했다. 바다 있는 밴쿠버가 밴쿠버에 대해 내가 가졌던 로망이라면 헤이스팅 거리의 홈리스는 밴쿠버의 또 다른 현실이었다. 디스토피안 소설을 닮은 현실. 졸린 눈을 감고 뜨며 이스트의 텐트촌을 지나 한참 뒤에 눈을 떴을 때 버스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이는 웨스트 대저택들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부를 볼 때면 이토록 극적인 가난과 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게 진짜 세상이라면 그게 바로 디스토피아 아닐까 생각했다. 더 이상 14번 버스를 타지 않게 되었을 때, 그래서 헤이스팅 거리의 노숙자들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 나도 더 이상 홈리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14번 버스 대신 R4 버스를 타게 된 덕에 이스트의 텐트촌은 더 이상 마주하지 않아도 됐고 여전히 웨스트의 부촌을 지나치는 중이다. UBC 캠퍼스에 다다르려면 어떤 버스를 타더라도 웨스트 밴쿠버를 지나쳐야 하는데, 서쪽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거대해지고 고급스러워지는 그 집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하는 생각이란 이런 식이다;  내가 사는, 또한 살고 싶은 삶은 세상의 가장 강력한 질서에서 너무 멀리 어긋나 버린 채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그들이 사는 삶이 그들만의 동화 속 세상이진 않을까.


서쪽 끝의 어떤 삶은 더욱더 튼튼하고 공고해지는 것만 같고 동쪽에 있는 어떤 삶들은 계속해서 철거되고 지워지는 것만 같다. 이번 텐트촌의 철거를 두고 BC 주에서는 방화의 위험을 이유로 들지만, 그들이 좀 더 솔직해질 것을 용인하면, 그들은 아무래도 땅값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까. 홈리스들과 그들의 텐트촌을 치우고 나서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들. 돈이 돈을 부르는 세상에서 돈을 가진 자들이 부풀려야 할 이익을 위하여 홈리스들이 치워지고 나면 치워진 그들은 이제 어디서 살 수 있을까. 내가 좀 더 동쪽으로 옮겨가는 걸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도 그들이 옮겨가야 할 좀 더 동쪽을 생각하려나. 언제까지나 동쪽이 있을까.


그러나 나는 홈리스들을 위해서 싸우지는 않는다. 나 아닌 다른 누구를 위해서 싸워본 적이 없고 언제나 싸우지 않을 것처럼. 그들이 어디에 가서 살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내 도덕적 양심을 달래면서 나는 내가 마주한 렌트비 상승의 불안정에 대해서 토로한다.  


정말 캘거리로 옮겨 가서 살아도 괜찮겠냐고 영학이가 내게 묻는다. 너 바다가 있어서 밴쿠버가 좋다고 했잖아. 나는 지금 바다 따위가 문제냐고, 일단 먹고살아야 되지 않겠냐고 대답한다. 먹고살자고 말하는 내 목소리에 힘이 없어서였는지, 자신은 어디에 살든 우리 둘이서 지금처럼 알콩달콩 살 수만 있으면 된다고 영학이가 나를 달랜다.  렌트비가 있어야지 알콩 달콩을 지켜줄 수 있을 텐데, 나는 밥알을 씹으면서 알콩 달콩 과 렌트비를 번갈아가며 되뇌었다. 알콩달콩한다고 렌트비가 오르지 않는 게 아니고, 수입의 반이 넘는 렌트비를 내고도 밥도 먹고 치약도 사쓸 수 있어야 그나마 알콩달콩하게 살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지만 그에게 무슨 말을 더 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알콩 달콩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밥 한 그릇을 비웠다.


다시 이주를 생각하는 나의 고민은 단지 집 없는 자의 불행으로 읽히고 말까. 아무렴 좋다. 두 개의 부동산 투자가 곧 대박 날 것 같다는 친구가 어디 자랑할 데가 없어서 내게 자랑을 좀 해도 되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왔을 때 조만간 이루어질 그의 꿈(파이어족)을 축하하면서 그의 자랑을 집 많은 자의 행복으로는 읽지 못한 것처럼, 아무렴 좋다. 마흔이 되어서도 내가 여전히 철거될 홈리스의 텐트촌과 동화처럼 빛나는 웨스트 부촌이 공존하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 골몰하고 있을 거라면, 그때는 내 가난이나 알콩 달콩에 대해서 쓰는 것보다 이스트의 홈리스든 웨스트의 부촌이든 그들의 이야기를 위해 더 많은 글자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웨스트의 부촌과 이스트의 철거될 홈리스들이 14번 버스 라인을 따라 한 세상에 공존하는 다른 이야기라는 사실을 무감각하게 수용하지 않길 바라면서.  가난이 가져다주는 불행과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은 희망이 단지 내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이스트에 사는 모든 인간들이 공유하는 서사라는 것을 인식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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